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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조국을 사랑하자 (에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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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하자 (에 4:13~17)


에스더는 페르시아어로 ‘별(star)’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하닷사(ה󰘕󰕈󰕟)라고 한다. 화석류 나무(ס󰕈󰕟, 무성한 가지)의 여성형이다. 화석류 나무는 그 가지를 꺾어도, 이틀 정도는 싱싱하게 살아 있다. 죽었다 할지라도, 물에 꽂으면 다시 살아나기에, 유대인에게는 불멸과 영생을 상징하는 나무다. 

화석류는 초막을 지을 수 있는 재료 중 하나이며, 약간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며 꽃, 잎, 줄기에서 좋은 향이 나므로, 향수의 원료나 차(tea)로 이용된다. 유대 처녀들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신발 속에 이 잎을 넣어 갔다고 한다. 걸을 때마다 잎이 비벼져, 향기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화석류는 냄새를 맡거나 목욕을 시키면, 아이의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믿는 나무다. 유대인에게는, 성공을 상징한다. 에스더는 베냐민 자손, 아비하일의 딸(에2:15)로서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집에서 자랐다. 에스더는 자라면서, 용모는 물론 마음씨도 고왔다. 

그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환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끝내 왕후가 되고, 자기민족을 구하게 되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된 후에도,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변함없이 순종하였다. 비천한 신분에서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거만하고 우쭐함을 보인다. 

이에 비해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애정을 가지고, 언제나 변함없이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4년 후, 총리대신 격인 하만이,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분노하여, 모르드개만 죽이면 벌이 가볍다면서, 모르드개의 민족, 유대민족을 다 멸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 음모를 안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왕 앞에 나아가라고 권면하였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왕비라고 해도,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갈 수 없었다. 왕명을 어기면 죽어야 했다.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기도를 마친 후 ‘죽으면 죽으리라’(16)는 신앙결심으로, 왕에게 나아갔다. 

그녀는 자기 민족과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나아갔다. 이런 희생적 결단은 왕의 마음을 움직여, 도탄에 빠진 유대민족을 구원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 (1) 하나님이요, (2) 이웃이요, (3)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다. 우리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한반도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많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다고, 반드시 나라가 잘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말씀에 입각하여 올바로 이끌어 가야 한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고, 백성으로서 조국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거룩한 책임이 있다. 예수님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망해 가는 조국 이스라엘과 수도 예루살렘의 미래를 아시고, 탄식하며 기도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조국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나만 혼자 안전할 수 없다(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너만 홀로 왕궁에 있다고, 화를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언젠간 네가 유대인이란 신분도 발각 나고, 그러면 너도 안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한다. “당신이 잘 돼야, 나도 잘 될 수 있다!” 우리 조국이 잘 돼야, 우리가 잘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부분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 의식을 꼭 가져야 한다. 나와 남을 엄격히 구분하면 잘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잘 되어야, 우리도 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는, 3無가 있다고 한다.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무관심하다. 남이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책임감이 없다. 가정은 어찌 되든지, 상관이 없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무책임이 팽배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잘 감동받지 않는다. 무감동이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고 있다면, 이는 이기주의의 출발이다. 나만 잘되면 되고, 내 가족만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만 잘되는 일이 가능한가요? 그렇지 않다. 옆집에서 불이나면, 바람을 타고, 우리 집까지 불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면, 나도 전염될 수 있다. 

모두가 다 잘해야 한다. 나만 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나 하나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는 거지, 남이야 구원받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어?”하지 말라. 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도 잘 되지, 나라 없는 백성은 비참하다. 나라가 망했을 때의 비극을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 조국은 위기 가운데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IMF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고, 배운 사람들, 있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한다. 조국 대한민국이 없으면, 대한민국 사람으로 어디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외면하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조국 대한민국을 포기한다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설움은, 잃어본 사람만 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어떤 배고픈 노인이 길을 지나가다가, 주머니에 동전 한 푼이 없어서, 빵집에서 빵을 훔쳤다가 구속됐다.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판사가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 안 되었다. 그러나 남의 물건을 훔쳤으니, 절도죄에 해당하여, 50불의 벌금형에 처했다. 

그리곤 판사는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노인이 먹을 것이 없어, 남의 빵을 훔쳤다면, 그것은 이 사람만의 잘못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굶어 죽어가는 이웃이 있음에도 우린 배불렀다. 헐벗은 이웃이 있음에도, 우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 노인의 벌금 50불 중, 20불은 제가 내겠다. 그동안 남 생각 못하고, 호의호식해 온 나에 대한 벌금이오.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50센트씩 부과한다. 빵을 훔쳐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마을의 주민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판사의 모자를 벗어서, 참석한 온 배심원들에게 돌렸다. 

그 분들도 다 거기에 벌금을 냈다. 그 돈이 약 100불이 되었다. 그 중 50불은 벌금을 내고, 나머지 47불 50센트를 받아 주고, 이 노인은 법정을 나섰다. 뉴욕의 시장을, 3차례나 역임한, 라 가디아((F. La Guardia)판사의 이야기다. 이런 나라가 소망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예수님께서 (마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시자, 

의인들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라고 반문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40). 이웃에게 무관심하면 잘못이다.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좋은 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와주고 세워주려는 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끌어내리려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면, 나만 행복할 수 없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축복을 사명으로 아는, 인재를 키우자(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는 왕비라는, 높은 직위에 올랐다. 축복은 사명이다. 따라서 동족이 어려움 당하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 왕에게 나아가 구명운동을 벌여야 된다. 높은 지위에 올랐는데도, 네가 말이 없다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고 했다. 

이는 축복을 사명으로 여기지 않을 때, 심판이 있다는 경고이며, 나라와 민족을 올바로 이끌어갈,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지도자들을, 교회는 키워야 한다. 인재들이 교회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오늘날 교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인재를 키우면, 전 세계를 주도하는 부강한 나라가 된다. 덴마크는 낙농국가로 선진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보험 제도로, 누구든지 병이 나면 한 푼도 내지 않고, 입원해서 치료받고 약을 받을 수 있는 나라다. 덴마크에는 의료보험을 주도하는 회사가 없다. 나라에서 다 한다. 

병이 나면 즉각 병원에 입원하고, 정밀 진단을 받고, 최고급 의료기술을 통해서 병의 원인을 발견해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하는 나라가 바로 덴마크다. 덴마크 국민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직장에서 어떤 종류의 연금보험을 들었든 관계없이, 만 65세가 되면 연금을 받는다. 

보험료를 못낸 사람도 연금을 받는다. 교육 제도는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학교의 등록금과 수업료가 없어진지 오래다. 국가에서 모두 감당한다. 외국 유학생도 등록금이나 수업료를 안 낸다. 대학교부터는 한 달에 300달러씩 용돈을 준다. 

덴마크는 15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보다 못살던 나라다. 그런 덴마크가 우리나라보다 잘 살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덴마크는 여름 3달 동안은 해를 볼 수 있지만, 나머지 아홉 달 동안은 아침부터 밤까지,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덮여 있어서, 해를 구경할 수 없었다. 지하자원도 없고 땅도 황무지다. 

1864년 덴마크는, 지금의 독일인 프로이센과 전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덴마크가 이 전쟁에서 졌다. 그냥 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망해버린다. 현재 독일 북부에 슬레스벅 홀스타인이라는 아주 기름진 지역이 있는데, 이 땅은 원래 덴마크 영토였다. 전쟁에 지는 바람에, 독일에 넘겨주고 말았다. 

곡창지대는 독일에 넘겨주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고, 남은 땅은 황무지고, 지하자원도 없고, 덴마크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국립 은행이 파산했다. 국민들의 원성은 높아만 가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국가와 사회를 원망하는 일들이, 덴마크 안에 팽배해졌다. 

신앙도 잃어버리고 백성들은 날마다, 도박과 술 취하여 싸우며, 희망 없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제 덴마크는 끝났다고 했다. 이때 덴마크를 일으켜서, 오늘날의 덴마크가 있게 한 장본인이, ‘니콜라이 그룬트비’ 목사님이시다. 한분의 목사님 나라를 살렸다. 덴마크 역사를 바꾸고, 민족을 바꿨다. 

코펜하겐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목사님의 설교는 ‘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였다. 교만했기에 발령을 몇 년 동안 내주지 않다가, 몇 년 만에 조그만 섬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우울증에 걸려서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42세에 성령체험을 한다. 그리고 변화된다. 

우울증이 치료되고, 교만이 사라지고, 병이 완전히 나았다. 그리고 설교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있었다. 민족의 앞날이 밝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을 백성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민족은 살 수 있다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모든 청년들의 심장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심는 것이 소망이 되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그룬트비 목사님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내세운 표어가 ‘지옥문에서 돌아서자’였다. 돌아서는 방법이 바로 영적각성이다. 

그리고 세 가지를 사랑하자는 운동을 벌렸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자. 두 번째, 조국을 사랑하자. 셋째, 이웃을 사랑하자고 외쳤다. 기도하면서 민족을 향해 설교하니까, 사람들이 감동 받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돌아오고, 조국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큰 공을 세운 또 한 사람이 있다. ‘달가스’다. 공병대 대령이었는데,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 날마다 방황하고 있을 때,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무지를 비옥한 땅으로 개간하는 일에 헌신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황무지를 개척하여, 좋은 땅으로 만들자고 외쳤다. 

나무를 심어서 바람을 막기 시작했다.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새마을운동이 우리나라 농촌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아직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신앙운동에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룬트비 목사님은 나라를 살리는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했다. 3년, 5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인재를 키우자. 덴마크가 잘 살기 위해서는,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감동을 받은 크리스틴 콜이라는 분이, 교육운동을 일으키겠다, 국민정신을 깨워야 한다고 했다. 

시골로 가서 국민 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국민 고등학교는,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먹고 같이 자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새사람으로 변화시켰다. 대부분의 대안학교 모델이 바로, 덴마크의 국민 고등학교이다. 

현재 72개의 국민 고등학교가 있는데, 교과과정의 50%가 성경 교육이다.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도전이다. 말씀이 회복되고,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날 때, 청소년들이 살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성경 펴고, 기도하는 지도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결국 나라가 바뀌게 되었다. 국민들의 부패와 타락에 젖어 있을 때, 덴마크를 바로잡는 역할을 성경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까, 국민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 성도들이, 민족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시기 바란다. 어디로 가야 올바른 길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나라가 어려움 가운데, 민족이 어려움 가운데 있다. 이제 우리는 은혜 받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 그 곳에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자.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들, 특권들, 은사와 재물과 시간과 가정과 직장이, 모두 이때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닐까?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리의 특권들을 사용하라고, 그 자리에 세워주셨다. 이 일에 쓰임 받는다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3. 희생할 때, 열매가 있다(16). 

에스더 왕비는 이 이야기를 듣고, 3일간 금식하겠다고 한다. “내가 왕 앞에 기도하고, 나아가겠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는 이제 홀로, 안전하게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를 내어 던졌다. 

생명을 내어놓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죽을 각오를 했다. 그래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하고 나아갈 때, 자기 민족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위대한 일, 가치 있는 일에는 희생이 따른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게 됨은, 이 예배당을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다. 이 일을 위하여 귀한 재물을 드린 분, 매일 출근하며, 수고한 분들도 있다. 이 일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신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또 헌물이 있었기에, 오늘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예배할 수 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주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은 백성이 될 수 있었을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기에, 우리가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은 것에 비하면, 우리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희생 없이는 위대한 열매가 맺어질 수 없다. 왜 이 나라 이 민족이 힘들고 어려운가?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 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왜 시끄러운가? 희생이 없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내고, 물질을 투자해야 한다. 점심도 함께 드시고, 선물도 준비하라. 그런 희생 없이, 어찌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영혼을 구하는 일에, 우리의 돈을 투자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희생 없이는 열매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헌신으로, 우리 영혼들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이처럼 위대한 투자가 어디 있을까? 기도는 영적 전투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가 올바른 나라와 민족이 되도록, 위해서 기도하자.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기도 밖에 없다. 

조국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은, 조국이 잘 되고, 강한 나라가 되도록, 이 민족의 현실을 보면서, 고민하고 기도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에스더의 고백은 무엇인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말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오늘 에스더와 같이 고백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신다.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내 나라가 잘 되고, 강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민족의 죄악과 민족의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해야 한다. 성도들의 증가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책임도,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예배당도 많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말씀 위에 살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을 하는 것들을 보면, 불명예스러운 것들이 많다. 성형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다. 의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가, 성형외과다. 돈을 제일 많이 벌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흉부외과는 지원자가 없어서,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제왕절개 수술도 1위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배를 가르고 아이를 끄집어내는 제왕절개를 의사들이 권한다. 분명히 법으로 금지된 낙태율도 1위다. 매년 백만 건 이상의 낙태수술을 자행된다. 

화장품 사용빈도도, 세계 1위가 우리나라다. 외국 사람들은 화장을 거의 안 한다. 해도 살짝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을 보면, 화장이 아니라, 변장수준이다. 해외 입양 세계 1위도 우리나라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살만한데도 여전히 많은 고아들을, 수출하고 있다. 

술 소비량은 세계 2번째가 우리나라다. 1년에 국민 한 사람이 마시는 소주가 82병, 양주는 1.69병, 맥주는 118병이다. 이혼율 세계 2위, 뇌물공여지수 2위, 여성 흡연율 2위인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런 나라에 소망이 있다고 할 수 있나요?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는, 오래 전에 끊어졌다. 존경이 사랑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약천만 명이나 있는 나라의 모습이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을 붙들고,조국 대한민국의 죄악을 끓어 안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해답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할 때도, 가장 주요한 무기가 있다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벼랑 끝에 있을 때,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으셔야 한다. 

에스더는 전 민족이 몰살당하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했고, 결국 그는 응답 받을 수 있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님은, 매일 새벽 4시에 산 속에 있는 개인기도실에 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셨다. 

내 민족을 위해, 내 나라를 위해, 내가 무릎 꿇지 않으면, 내 조국은 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치셨다. 우리는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아도, 한 시대와 한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는 교회다. 그래도 이 나라가 유지되고 있음은, 이 나라가 이만큼 살 수 있음은, 이 시간에도 골방에서, 기도원에서, 교회에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8: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하였다. 이것이 지도자이다.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자. 나 혼자는 안전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다. 세상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를 키우자. 희생이 없이는 열매가 없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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