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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용사여! (삿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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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용사여!  (삿 6:11~18)


■ 사사기 6장 11절~18절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절)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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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자기 아들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사연인즉 지난 2월 5일, 점심시간을 틈타 한 청년이 본당에 들어와 악기를 훔쳐가려는 과정에서 차량 번호가 노출되어 결국 붙잡혔습니다. 취조결과 그동안 그는 무려 일산 지역의 20개 이상 교회들을 돌면서 악기를 훔쳐온 전과 6범으로 보호관찰 중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악기들이 눈에 들어오며 “우리 아들, 원래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 하는 그 어머니의 음성이 계속 귓전을 때렸습니다. 탄원서를 써줘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우여곡절 끝에 그 어머니를 만나 정성을 들여 판사 앞으로 보내는 탄원서를 작성하여 그 손에 들려 돌려보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전과6범의 범죄자였지만, 그 어머니의 눈에는 더 없이 착하고, 여린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하고 터진 악독한 죄인들입니다(사1:5; 롬3:10-15).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사43:4), 흠 없는 비둘기 같이 보십니다(아4:1, 7).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시2:7; 사1:2; 마5:48; 6:6; 롬8:16).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기뻐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소두증(小頭症, microcephaly)이라는 병은 뇌가 크지 않고 퇴행성(退行性)이 되어가는 특이한 질병으로 보통 생후 9개월 아이의 뇌로 성장이 멈추어 버립니다. 그래서 젖꼭지를 입에 물고, 기저귀를 차고 지내며, 경련을 억제하는 약을 매일같이 먹여야 합니다. 언젠가 이런 남매를 키우는 부모의 영상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의 부모는 너무나 밝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세 살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여덟 살이 넘도록 살아주니 너무 감사하고, 어쩌다 나오는 ‘엄마’라는 말 한 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하십니다(렘3:4, 19; 마6:9).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關係)를 늘 인식(認識)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여기 사방으로 에워싼 대적들을 피해 산속 토굴에 머물며 두려움에 벌벌 떨며, 그곳에서 한줌의 식량마저 빼앗길까봐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할 정도로 소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삿6:15). 이렇듯 그저 자기 한 목숨 보존하기에 급급한 그를 향하여 여호와께서(삿6:11, 14) 나타나 '기드온(보리이삭 베는 자, 농사꾼)’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삿6:12). '큰 용사'는 '강한 남자', '전쟁에 능한 자' 외에 '맏아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長子)의 위치는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창25:26, 31; 48:8-15; 눅15:31). 하나님은 지금 기드온을 향해 자신이 맏아들이고, 큰 용사라는 사실을 각인(刻印)시켜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기 때문입니다(창1:3, 9). 하나님은 식언(食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민23:19). 이 하나님이 기드온을 향하여 ‘큰 용사’라고 불러주시자, 그는 실제로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번만 생각해주시고, 한 번만 불러주시면 우리 삶의 현장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오직 기드온에게만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하고 말씀하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준비된 인물이거나 무슨 가능성이 있거나 잘나고 똑똑해서도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恩惠)였습니다(삿6:17; 출33:19). 그러면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사사기 6장의 시대, 대단히 어렵고 힘든 그 때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 기억마저 아득한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삿6:8-10), 이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하나님과 그 하신 일들에 대해 깊이 묵상합니다(삿6:13). 구체적으로 그것은 애굽에서 조상들을 이끌어내셨던 유월절(踰月節)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는데(삿6:8, 13),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건의 예표, 즉 복음(福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피 묻는 복음이 메말라갈 때 하나님의 은혜도 메말라갑니다. 복음이 진부하게 들릴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다시 내 심령을 뒤흔들 때 은혜 역시 충만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생각하시고, 그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말씀하시니, 그는 정말로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고난이라는 이름의 사막을 건널 때, 하나님과 십자가(十字架) 사건을 마음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생각하시고 우리를 ‘큰 용사’라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의 큰 용사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能力者)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15장)’를 아십니까?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그가 조금 배고팠을 때는 쥐엄열매를 생각했으나, 배가 아주 고프기 시작하자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를 생각한 그때부터 그에게 아버지의 은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고 말씀하시니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사래에게 ‘사라’라고 말씀하시니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시니 정말로 하나님을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니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시몬에게 ‘베드로’라고 말씀하시니 반석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 1절)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2절)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바다가 잔잔해졌네 후렴)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주소서 ♬ ...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있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십자가의 복음을 떠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생각해주실 것입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오늘 이 음성이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요, ‘큰 용사’가 내 이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큰 용사로 재창조(再創造)되어 힘차게 일어서서 주님 주시는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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