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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을 내밀라 (막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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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내밀라 (막 3:1~12)


데일 카네기가 <웃음 예찬>이란 글에서 웃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웃음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넘치고, 짧은 인생으로부터 생겨나지만 그 기억은 길이 남는다. 웃음이 없이 참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없고, 웃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 가난한 사람도 없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친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고, 실망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고, 우는 자에게 위로가 되고,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그런데 웃음은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다.”

미국 스텐포드 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음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크게 웃을 때 평상시 움직이지 않던 근육 중 230개 이상이 움직인다. 사람이 1분 동안 마음껏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 조깅, 자전거를 탈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몸 안에 일으키게 된다.”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기쁘게 사십시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럴 수 없는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날마다 살아나간다면 어려운 때에 사회를 더욱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남의 아픔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자기의 이익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익과 즐거움을 빼앗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헤친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이기를 포기한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저 자기주장만 되풀이 합니다. 자기만이 옳습니다. 사실은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일 뿐이요 자기 입장에서 옳은 것이지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타당한 것도 같으면서도 모순이 함께 존재하는 궤변의 논리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의 고통을 이용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을 볼 때는 그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그게 어디 사람이냐 짐승이지 하는 탄식조차 나오겠습니까?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비록 지금이 안식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니 제발 이 사람을 고쳐주셨으면 좋겠다고 해야 그게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픈 사람을 동정하지는 못할망정 예수께서 그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안식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데서 시작해서 만약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친다면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 당연히 고발해야 한다고 그렇게 작정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살리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어 가는데 오늘은 안식일이니 내일까지만 참아라 내일은 꼭 병원에 데려다 줄게 라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일반 진료는 없지만 그래도 응급실로 자식을 데리고 달려가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아비의 마음으로 이 한편 손 마른 사람을 보았더라면 그들이 결코 예수를 고발하기 위해서 지켜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설사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고 하더라도 우선 고침 받은 사람에게 가서 정말 축하한다고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힘을 내어서 살아가라고 하면서 축복하며 손을 잡아 주어야 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관심은 그 사람에게 있지를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으니 당연히 계명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예수를 잡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가서 곧 바로 그걸 의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우는 다르다고 해도 이러한 마음이 우리들에게도 있지는 않은지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 됐다고 할 때 정말 내 일처럼 기뻐해줄 수 있어야 하고 남이 힘들어 할 때 내 일처럼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참 사랑일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마음 한 구석에는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축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다가도 그 사람이 잘 되고 나는 여전히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마음을 다해서 기뻐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속은 상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네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은 어떻게 되든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그런 마음이 내 안에도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이 나만 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사랑은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서 그 아픔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요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이웃은 그 사람을 조건 없이 여관으로 데려다가 시간과 돈을 다 들여 치료해주고 살려낸 그 사람이 진짜 이웃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시는 선입니다. 착한 일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기쁨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착한 일입니다. 
지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부축해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그것이 착한 일입니다. 그래서 굶주린 자가 있으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실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옷을 입혀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결코 선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엇을 하도록 명령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선을 베푸시는데 결코 남의 이목이나 그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관심은 그러한 사람을 풀어 자유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오늘 나는 다른 사람을 풀어 자유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꼼짝 못하도록 옭아매는 사람입니까?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이 손 마른 사람의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고 하신 다음 자기를 고소할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랬더니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선을 행하는 것이지만 그걸 빌미로 해서 고발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병을 고쳐주는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지금 너희들은 나를 죽일 기회만 찾고 있는데 그것이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 편 손 마른 사람은 그 몸의 병으로 인해서 올바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사람 역시 스스로도 나는 저주 받은 인생이라고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건 안식일에 회당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 신앙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저주가 변하여 복이 되기를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손 마른 사람의 믿음은 손을 내밀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손을 내미는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거 손 내미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느냐고 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이 사람은 그 손을 옷소매 속에 감춘 채 살았을 것입니다. 남에게 자기의 장애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떳떳하게 손을 내밀고 살 수 없는 자신을 탓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 날 이 모양으로 나으셨냐고 하면서 부모에게 대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그의 마른 손입니다. 결코 남들 눈에 띄게 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굴레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그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그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기의 감추고 싶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다 드러냅니다. 창피를 무릅씁니다. 단지 주님의 어떤 뜻이 있어서 자기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시니 그대로 순종할 따름입니다. 손을 내밀라 하실 때 내밀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믿음입니까? 순종이 곧 믿음입니다. 내말라 하실 때 그냥 내미는 것입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단순한 것입니다.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의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사실은 믿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요 그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더니 놀랍게도 그 순간 그의 손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온전해졌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주신 말씀대로 우리가 항상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주님 명령대로 하나님 앞에 우리 원하는 바를 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질병이 떠나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되고 우리 모두가 다 복된 자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와 대적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나가서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들이었습니다. 하나 같이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의 왕국을 회복하고자 하는 그런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만이 옳습니다. 자기들의 방식대로만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속이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열심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그들만큼 그렇게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마음을 지니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닌 완악한 마음으로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바로 잡아주려고 하기 보다는 비난을 먼저 앞세웠다는 것이 그들의 완악함이요 병든 자가 고침을 받은 것으로 먼저 기뻐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를 어떻게 하면 죽여 버릴 수 있을까를 모의한다는 데서 그들의 완악함을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과 같이 어려운 때에 남들 몰래 눈물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도움의 손길마저 거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경우라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만 살겠다고 혼자 도망치는 그런 어리석은 모습이야말로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완악함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내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할 때 그의 수고에 대해 우리는 칭찬하고 격려하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그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시던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마음에 담고 함께 울어줄 수 있어야 하고 힘들고 어렵기에 더욱 서로를 격려하고 붙들어주기 위해서 우리의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기 똑같이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다른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손 마른 사람을 함께 축하해 줄 뿐 아니라 동시에 아픈 자기 이웃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마을로 가서 그 소식을 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로부터 예수님께로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래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수님에게 손을 대고자 했습니다. 그게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손을 대기만 나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귀신 들린 자들도 예수를 보면 엎드리어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능가하는 권세를 지니고 계심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귀신 들린 자들이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요? 

그것 역시 사람들이 그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이 그러기에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 역시 날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주의 말씀으로 내 안에 거하게 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님께 구하여 다 이룸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어떤 농가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향계의 끝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집 주인인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풍향계처럼 변한다는 뜻입니까?" 그랬더니 그 농부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니고 바람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든지 간에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람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고난의 바람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부분을 표현할 때에 '하나님의 상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는 십자가의 사랑에 뿌리를 내려야 그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비난하고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곧 그 사람의 죄는 미워도 사람까지 미워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고통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아니 아무리 심정적으로 안다고 해도 그 본인만큼 그렇게 아픔을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고자 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찾아주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내밀라. 그 말씀에 부끄럽고 더럽고 추한 손을 내미는 그런 순종의 믿음으로 주님 앞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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