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엇을 맡았든지 (민 4:21~28)

  • 잡초 잡초
  • 415
  • 0

첨부 1


무엇을 맡았든지 (민 4:21~28) 


지난 지방회에서 우리교회의 두 분 장로님- 왕종서 장로, 한수도 장로-이 명예롭게 은퇴하셨습니다. 

특히 두 분 장로님은 시무장로님으로 몇 년 더 사역하실 수 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로 자원은퇴 하셨습니다. 

장로라는 무거운 직분을 잘 마치고 여러 교우들 앞에서 명예롭게 은퇴하시는 두 분 장로님께 찬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로라는 직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부담이 많은 직분입니다. 
위로는 담임목사에게 책임적이 되어야 하지요, 아래로는 모든 교우들의 앞장을 서야 하지요. 
헌금하는 일에나 봉사하는 일에나 기도하는 일에나 장로님들이 앞장서야 하잖아요. 
그래서 부담이 많은 직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소임을 완수하고 앉았던 자리를 후배들에게 밀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존경하고 찬하를 드립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성경 한 곳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레위기 26:2-5절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너희가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공경하면 물질적인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성소를 공경하라!’ 
‘성소’란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물론 건물자체가 ‘하나님’이라거나 어떤 ‘신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뤄집니다. 그래서 이 성소는 공경 받아야 마땅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되신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교우들의 신앙을 지도하다보면,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첫 번째 표징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어디 하나님이 보여야지요,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장소를 사랑하게 됩니다. 
왠지 자꾸만 교회에 오고 싶고, 교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집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은혜를 받고, 교회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교회 화장실 청소를 참 많이 했습니다. 
지금 교회에 나오는 5,6학년짜리 어린이에게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시골 교회의 마당이 얼마나 넓습니까? 
싸리비로 그 마당을 쓸다보면 손바닥에 물집이 생깁니다. 
그래도 기뻤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옆에서 지켜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봐도 은혜받으면  그 표현이 교회사랑으로 나타나더라고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레위지파 중의 하나인 게르손 자손에게 광야생활 동안 해야 할 일을 명령하신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은 우리의 인생살이와 같고, 성막은 교회와 같은 것이고, 성막봉사는 교회봉사와 같은 것이고, 그들의 직분은 오늘 우리의 직분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봉사할 사람을 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민 4:21-22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게르손 자손도 그 종족과 가족을 따라 총계하되” 
민 4:24절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게르손 자손’이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일할 사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아무나 보이는 대로, 되는 대로, 급한 대로,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만 선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아주 작은 일을 감당할 게르손 자손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호렙산 산등성이에 있는 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타지 않습니다. 신비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참 장엄하지요?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니까 그렇게 부르셨지, 우리야 뭐 기껏해야 성막의 덮개, 휘장을 쳤던 줄을 운반하는 짐꾼에 불과한데, 하나님께서 부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뜰의 휘장과 그 줄들을 운반하는 일은 분명 사람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60만을 영도하는 지도자 모세의 역할에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선택하고 부르셨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모세가 없어서는 안 되지만, 게르손 자손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말씀을 선포하는 저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여러분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작은 직분이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네댓 명의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학교 교사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양할 찬양대원으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과 격려를 전달하는 1인1사역자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교우들의 마음을 열어 예배를 드리게 하는 안내위원으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 외에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작지만 필요한 소중한 직분들을 위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음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중한 직분들을 잘 감당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교회 직분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직업을 위해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나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소명의식’이라고 하지요! 
이런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도가 높습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이집트에 있을 때 성지순례가이드 일을 하는 분들에게 늘 도전했습니다. 
그 가이드 일을 하면서 두 가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등산 못해본 귀신이 붙었는지…. 내 팔자는 어떻게 되었길래 한라산보다 더 높은 시내산을 한 주에 한 번씩 올라가야할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참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성지순례 하는 성도들과 함께 보냅니다. 그들의 찬송을 들으면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내 믿음을 키우지요. 저의 영적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저는 아마 목사님 다음으로 좋은 직업을 가졌을 거예요. 저는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늘 하고 감사한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는 얼마나 책임감 있게 일을 하겠으며, 얼마나 일의 성취도가 높아질까요? 

둘째, 하나님은 짐을 멜 사람만 정하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멜 짐까지 정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까지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분문 민 4:25절-26절을 보십시오! 
“곧 그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문장을 메이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게르손 자손은 자기 마음대로 운반해야 할 짐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가볍다고 줄이나 거둬가고, 무거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일을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일이 적다 많다.’, ‘작다 크다.’, ‘무겁다 가볍다.’ 애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절대 순종이 있었을 뿐입니다. 

‘교회성장학’에서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하나님 말씀을 절대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사는 것이고, 못 지키면 죽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 받고, 불순종하면 벌 받는다’는 생각에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왜 초대교회가 무섭도록 부흥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성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는가요? 
행5장에 보면, 하나님을 우습게 알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현장에서 죽어나갔거든요. 
그들은 두 눈으로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았겠어요? 

크든 작든 교회 일을 맡으신 우리 교우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절대 순종’이란 단어를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막은 언제 옮겨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옮기라 하시면 새벽이건, 낮이건, 저녁이건, 언제든지 옮겨야 합니다. 
절대 순종! 
성막 위에 머무르던 구름기둥, 불기둥이 떠오르기만 하면 춥든 덮든 상관없이 떠나야 합니다. 
절대 순종! 
하루 종일 광야 길을 걸어와 이제 막 회막 치는 일을 마치고, ‘이제야 일이 끝났나보다’ 하고 다리 한번 편안히 쭉 뻗어보려고 할 때 불현듯 구름기둥이 움직입니다. 
그때에도 옮겨야 합니다. 절대 순종! 
하나님의 떠나라는 명령에 ‘안가겠소!’하고 버틴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짚고 가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명 받은 일이 무엇인가?’ 
‘나는 무슨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가?’ 
바울사도처럼, 마게도니아 사람이 손짓하는 환상을 본 것도 아니고, ‘너는 이 일을 위해 불렀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고....... 

자기 소명을 발견하는 방법 세 가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아픔’이 소명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특별한 아픔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손가정의 아픔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홀로됨의 아픔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난의 아픔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별한 질병의 아픔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2) ‘부담’이 소명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가는데, 유독 나만이 ‘부담’을 느낍니다. 
노인을 보면 부담이 됩니다. 거리의 부랑자를 보면 부담이 욉니다. 
신체장애자를 보면 부담이 됩니다. 병든 사람을 보면 부담이 됩니다. 
청년들을 보면 부담이 됩니다. 

3) ‘더 가짐’이 소명입니다. 

어떤 분야에 더 많은 재능이 있습니까? 
더 많이 배웠습니까? 더 많이 가졌습니까? 더 높은 지위에 있습니까? 

이렇게 3가지 기준으로 자신을 성찰해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무슨 일에 쓰시려고 계획하시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그 방향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그 방향으로 공부하시고, 그 방향으로 일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꼭 해야만 하는 소명입니다. 

복음성가-해같이 빛 나리 

세째, 하나님은 메는 사람을 정하시고, 메고 갈 짐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봉사할 때를 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지나기 전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지성으로 교회를 섬기는 교우들이 많아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면........’ ‘자식들 공부를 다 시키면........’ 
‘삼촌이 결혼해서 분가하면.........’ 심지어 ‘정신적인 여유를 찾으면.........’ 
참 아쉬움이 많은 대답이지요? 
축복의 기회는 게으른 사람, 핑계 대는 사람들까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한가하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교회는 많은 분들이 정말 지성스럽게 받들어왔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일할 사람도, 일할 것도, 일할 시간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줄 믿고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삶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태도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셨던 두 분 장로님의 은퇴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았을 때 교우들의 눈에 명예로운 자리로 보여야 할 텐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잘 했다고 칭찬받는 자리가 되어야할 텐데........ 이런 소원을 드려봅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