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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자유케 하리라 (요 8: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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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케 하리라 (요 8:28~36)


헨리 하이드(Henry John Hyde) 미(美)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맥아더(D. McArthur)장군 동상에 헌화하며 연설한 내용입니다. "저는 맥아더 장군이 고별사를 했던 미국 의회에서 온 사람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위대한 군인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호주의 존 커틴(John Curtin)총리는 침략 위협에 직면하자 호주군의 작전통제권을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했습니다. 호주를 지킨 맥아더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필리핀 국민과의 약속도 지켰습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바로 이 맥아더 동상 뒤, 여기 이 항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은 높은 파고로 유명한 인천의 물살을 넘어 미국 연합군 및 한국군을 승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의 승리로 맥아더와 그가 지휘했던 군대는 한국을 악(惡)에서 구해냈습니다. 북으로 몇 마일만 가면 닿을 수 있는 북한의 압제 정권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굶주리고, 기독교인들이 다만 악에서 우리를 구하소서라는 말을 내뱉은 죄로 순교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는 전장에서 흘려진 피와 애국지사들의 피에 의해서 이뤄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동상은 단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충성심을 나타냅니다. 맥아더 장군의 업적은 순금입니다. 맥아더 장군처럼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 늙은 의원이 옛 지휘관에게 마지막 경례를 할 순간이 왔습니다. 이제 저는 맥아더 장군과 여러분께 고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16선의원인 그는 자유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로 얻어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 운동을 일으킨 뜻깊은 3.1절로서 90주년이 되는 날이며 기념주일입니다. 세계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쇄국 정책을 쓰고 사색 당쟁이나 일삼던 우리나라는 1910년 일본에게 주권과 영토와 말과 글까지 빼앗기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1919년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선생은 기독교 정신에 기초해서 독립 선언문을 기초했고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을 하고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생명력 있는 신앙이며 행동하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36절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믿는 것으로 전부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 진리를 모르면 자유자가 아니라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믿는다고 하지만 변한 것이 없고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자극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자유함이 있습니까? 본문의 '자유케 하리라' 는 말씀은 스스로 자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진리라 하시며 진리 가운데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케 되려면, 


첫째로 진리를 알아야 

존 아담스(John Adams)의 실화전기 '피케언 사람들'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영국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플래처 크리스찬(Fletcher Christian)을 중심으로 바운티(Bounty)라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남태평양 피케언(Pitcairn)섬에 들어가 인디언들을 설득하여 공동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9년 뒤 집단 공동 사회는 실패하였습니다. 보통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모두 발생한 것입니다. 1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폭력, 성도덕의 문란, 알콜 중독 등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지도자였던 플래쳐 역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존 아담스는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정리합니다. 

그러던 중 성경책을 발견합니다. 9년 동안 읽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던 책이었습니다. 아담스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두 달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된 그는 죄를 뉘우치고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아담스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경책을 들고 피케언 섬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섬은 새로운 세계가 되었습니다. 피케언 사람들은 영국인의 영향으로 불과 9년 사이에 술주정꾼이 되고 폭행자와 성적 문란자가 되었지만 아담스가 알게된 진리는 아담스 뿐 아니라 섬 전체를 소생시키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본문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는 내가 임의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할 때 비로소 자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리' 의 원어는 '텐 알레데이안' 인데 유일하신 진리를 의미합니다.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분명한 진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정도가 아닙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체험하며 교제하고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자유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속적으로 동행할 때 주어집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 우리 선조들은 미신의 얽매임 속에 살았습니다. 못도 함부로 박을 수 없었고 여행도 아무 날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사 가는 날도 정해져 있었고 결혼 날짜도, 결혼해야 할 상대방도 사주팔자로 계산해야 했습니다. 얽어매는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자유를 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하나님이 주관자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상과 잘못된 습관과 미신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초점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시계를 맞추듯 우리의 삶도 진리이신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진리로부터 주어지는 자유를 누리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죄의 종노릇하지 말아야

나치(Nazi) 시절 독일의 작곡가 리차드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음악국의 총재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나치정권을 돕는다는 이유로 늘 미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나치는 음악, 미술 분야까지 군인을 책임자로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트라우스는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소령으로부터 명령을 받게 됩니다. "선생, 여기 이 악보를 고쳐 우리 시대에 맞는 음악으로 다시 작곡을 해 주시오." 소령이 내민 악보를 받아든 스트라우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악보는 멘델스죤(F.Mendelssohn)의 '한 여름밤의 꿈' 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 아름다운 노래를 어떻게 고칠 수 있단 말이요." 스트라우스는 몹시 불쾌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령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화를 냅니다. "뭐라고 했소? 멘델스죤은 유태인이란 말이오. 유태인이 작곡한 노래가 아름답다고! 당장 고치시오." 그러자 스트라우스의 손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나치가 시키는 대로 일은 해왔지만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악보를 고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양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스트라우스는 죽음을 각오하고 소령에게 맞섰습니다. "난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없소!" 이 일로 스트라우스는 나치로부터 미움을 받아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총재직에서 쫓겨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라우스의 마음은 자유롭고 홀가분했습니다. '한 여름 밤의 꿈' 이 역사 속에 남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히랍어로 둘로스(doulos)로 노예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물건과 같은 존재로서 자유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니 죄의 노예가 된 사람은 죄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주인이 되면 헤어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그의 자녀가 됩니다. 그때 비로소 죄로부터 자유, 마귀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탐험가 봅 바틀렛(Bob Bartlett)의 이야기입니다. 외국을 여행하던 중 희귀한 새 몇 마리를 얻었습니다. 본국에 돌아오기 위해 새장에 가두고 항해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굽니다. 새장에 갇혀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새장을 발톱으로 할퀴고 머리를 찧고 몸부림을 칩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기에 그 새를 망망대해로 날려 보내주었습니다. 새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창공으로 높이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였습니다. 

새는 배로 돌아와 지친 몸으로 갑판 위에 떨어져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날아올랐지만 망망대해에 발붙일 곳이 없었고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틀렛은 지친 새를 다시 새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새장은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새장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끝없는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새장에 있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편안하게 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주 안에 거할 때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구속의 자유 또는 은총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내가 처한 처지와 형편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무슨 뜻이 있는지 깨달으면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증 받아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높이 날기 좋아했던 연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은 거센 바람을 받으며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행복을 느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불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더 높이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순 없을까!" 연은 높이 올라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붙들고 있는 연줄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연줄이 끊어진다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연줄을 당기고 또 당겼습니다. 그러자 연줄이 뚝 끊어집니다. 연은 하늘 높이 떠오르는 동안 황홀함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이내 뒤집히더니 빙빙 멋대로 돌다가 곧바로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자유를 찾으려고 하십니까? 진리의 줄을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 하십니까? 그러나 세상의 어떤 줄도 참된 자유를 주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주님의 줄만이 참된 자유를 얻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참된 자유를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주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음으로 자유케 되는 은총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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