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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보기도의 특성 (엡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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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이중섭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중섭이 친구 문병을 갔습니다. 이미 친구가 아픈 지 오래 됐기 때문에 문병이 늦은 것을 미안해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작은 도화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주려고 가지고 왔네. 이걸 가지고 오느라 늦었네. 자네가 좋아하는 복숭아라네”

이중섭은 너무 가난해서 친구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대신 직접 복숭아를 그려서 선물한 것입니다. 친구는 그 선물을 받아들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복숭아 그림이 자기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복숭아 그림이 최고의 선물이 됐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그림 안에는 화가 이중섭의 마음이 진하게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그 선물은 이중섭만이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3년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교회입니다. 아마도 바울의 체취가 가장 깊게 남아있던 교회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이제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에베소 교회에 몇 가지 꼭 필요한 교훈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내진 편지가 오늘의 본문 에베소서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함께 읽은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특히 스승이요 영적 아비인 노사도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바울은 인편으로 이 편지를 보내며 어떤 선물을 함께 보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습니다. 옥중에 갇힌 터라 보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어서 에베소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를 편지에 담아서 보냈습니다. 

이 기도가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그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도 안에는 스승이요 영적 아비인 바울의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거인인 바울만이 할 수 있는 중보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에겐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안에 우리의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가 최고의 선물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출 17장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아말렉과 출애굽 이후 첫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됐습니다. 아말렉은 이곳이 홈그라운드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사막 전투에 잔뼈가 굵은 전사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노예로 부역만 하던 사람들입니다.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전쟁을 해 본 경험도 없습니다. 게다가 사막에서의 전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도자 모세는 이런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앞장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전쟁에 내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르비딤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모세가 두 손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에게 밀립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힘 있게 중보기도하면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모세가 중보기도를 쉬면 전쟁에서 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중보기도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의 승리는 바로 중보기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우리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도록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보다 귀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최고의 선물인 중보기도를 제대로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중보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남을 위해 기도한다고 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중보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중보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한마디로 중보기도의 특성을 잘 알고 그 특성에 맞게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중보기도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특성을 살려서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근원이 있는 기도

본문 15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말은 앞 단락과 이제 하게 될 에베소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를 연결짓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앞 단락에서 밝힌 내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 단락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엡 1:3-14절입니다. 원어성경을 보면 이 긴 내용은 한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3절에 나타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한 마디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4절은 그 신령한 복의 내용을 말씀합니다. 즉 신령한 복이란 구속 곧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놀라운 영광과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중보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령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령께서 자기 안에 거하시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중보기도인 것입니다.

강원도 강촌에 구곡폭포가 있습니다. 이 폭포는 아홉 구비를 돌아서 떨어지는 50미터 높이의 물줄기가 장관을 이룹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빙벽등반으로 유명합니다. 대학시절부터 여러 차례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장마철 막 지나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워낙 폭포에서 쏟어지는 수량이 풍부해서 물줄기의 파편들이 안개처럼 계곡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은 가을 단풍철에 이곳을 찾았습니다. 마침 가뭄이 극심했던 때였습니다. 큰 기대를 하고 폭포 가까이 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폭포의 수량이 거의 끊어져 병아리 오줌처럼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폭포는 근원이 있습니다. 바로 폭포 위의 강이나 호수가 그 근원입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물을 내려 보내느냐에 따라 폭포의 수량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중보기도도 근원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신령한 복을 얼마나 받고 있느냐에 따라 중보기도가 달라집니다. 하늘에서부터 임하는 은혜의 소낙비를 풍성하게 받아 누릴 때 중보기도는 힘차게 뿜어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갈수기를 경험하게 될 때 중보기도는 거의 명맥을 잇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을 받아본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는 아무나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고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령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해서 그 신령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오늘도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2. 동기가 확실한 기도

본문 1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이 말씀은 유대인으로서 바울의 기도 습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정해 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니 더 철저했습니다. 저녁 해질 무렵, 아침, 그리고 점심시간에 정기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루에 세 번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에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실천으로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 그 감사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에베소 교인들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먼발치에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뿐입니다. 저들과 헤어진지가 벌써 오래됐습니다. 늘 염려가 됐습니다. 여러 해 전에 말씀을 가르치고 떠나왔는데 지금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에베소 교인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믿음에 부응한 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사랑 때문에 하게 되는 기도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동기가 확실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결혼하고 싶어 애가 타던 노처녀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나이 벌써 40을 바라봅니다. 금년에는 꼭 시집가게 해 주세요” 그런데 도대체 응답이 없습니다.

친구가 조언을 했습니다. “원래 자신을 위한 기도는 응답이 잘 안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는 응답이 잘 된데...”

그래서 이 노처녀가 중보기도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우리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제발 금년에는 그 딸 시집보내게 사위감을 보내주세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중보기도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늘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제대로 드리려면 우선 우리의 사고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타적인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남들을 생각하는 마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보기도는 동기가 확실한 기도입니다. 사랑 때문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선순위가 명확한 기도

본문 17절 이하를 보면 중보기도의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한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깊이 더 바로 잘 알게 해 달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신앙인이라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일이 우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결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받은 복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한 두 번째 내용은 그들이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받은 축복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세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르심의 소망입니다.(18) 둘은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18) 그리고 셋은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19) 모두가 다 영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축복을 받고도 축복 받은 지를 모릅니다. 또한 알았어도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것을 계속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의 중보기도는 철저하게 영적 축복에 초점이 맞춰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도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영적 축복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그 나머지 여력이 있으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중보기도는 우선순위가 명확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영적 축복을 우선해야 합니다. 중보기도의 무게중심이 영적 축복에 두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기도가 대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우선합니다. 중보기도의 무게 중심이 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에 두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보기도가 힘이 없습니다. 응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중보기도에서 기복주의를 물리쳐야 합니다. 기복주의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수적 선물에 초점을 맞추는 행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변화해 가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신앙행태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보기도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축복에 우선순위를 두고 무게중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보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중보기도의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최고의 선물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중보기도의 특성을 잘 알고 중보기도답게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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