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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원수를 갚으라! 그러나 (민 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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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 와의 원수를 갚 으라! 그러나 (민 31:1~12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 14-15)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했습니다(롬 5: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들입니다. 이 사랑은 원수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마 5:44). 
본문에 미디안을 쳐서 하나님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한 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원수는 즉시 갚아야 합니다. 

본문 31장 2절에 『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고 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입니다(창 25:1-4). 따라서 이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자기의 아내로 삼아 40년간 처가에서 살았습니다. 미디안을 징벌하는 일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미디안인들은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 오염시킨 주범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을 이스라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로 간주했습니다. 미디안을 진멸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오염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타락과 영적인 부패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의 의미가 단순히 영토확장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의 우상숭배의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미디안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이 무엇입니까? 

①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을 일삼도록 한 미디안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고 했습니다.

②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의 초청을 받아 그들의 신당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민수기 25장 2-3절에『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③ 미디안은 모압과 동맹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영토를 진입하는 이스라엘을 미신의 힘으로 패망케 하려고 했습니다. 민수기 25장 4-7절에『 …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미디안이 모압과 투합하여 선지자 발람의 꾀를 받아 행한 일을 말합니다(민 22:4; 25:18). 모세는 미디안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일천 명씩을 선발하여 12000명의 정예군대를 조직했습니다(31:4-6). 결과는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31:7-12). 미디안과의 전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전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모세는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이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 다섯 왕을 죽였습니다. 

본문 31장 7-8절에『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고 했습니다. 

본문 31장 15-16절에 『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도 모조리 죽였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훼방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가나안을 바로 눈앞에 둔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아 죄를 짓게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자기 백성을 타락케 하는 죄악의 근원을 제거하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미디안 족속을 징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사시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3절에 『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도록 명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8절에 『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수를 그냥 지나치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4절에 『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고 했습니다. 

계시록 19장 11절에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고 했습니다. 

공의로운 심판의 칼은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에 『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필경 죽음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산상보훈은 원수 갚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용하기 쉬운 성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에게 행한 일에 국한 됩니다. 

2.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을 일시적으로 유예(猶豫)시키기도 합니다. 

열왕기상 2장 8-9절에 『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고 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때 사울의 집 족속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신복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7-8절에 『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때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죽은 개가 감히 왕을 저주하니 저의 머리를 베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그들을 만류하면서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삼하 16:10). 

이때 다윗은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압살롬의 난은 평정되고 다윗이 환궁할 때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일 천명을 거느리고 다윗에게 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때 아비새가 다시 저를 죽이려고 하자 다시 다윗이 만류하면서 시므이에게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삼하 19:2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할 때 솔로몬에게 명했습니다. 그것은 시므이가 행한 일을 기억하고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등극한 후에 다윗의 유언을 어김없이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서 예루살렘 밖을 나가지 말라는 금족령을 내렸습니다. 예루살렘 밖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시므이도 이 약속에 찬성했습니다. 삼년이 지난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도망을 했습니다. 시므이는 두 종을 찾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이 사실을 고해 받은 솔로몬 왕은 시므이를 불러서 약속을 확인한 후에 브나야를 시켜 시므이를 쳐 죽였습니다(왕상 2:36-46). 

다윗의 유언 가운데 또 하나는 요압입니다. 왕상 2장 5-6절에 『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요압은 자기 지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윗이 아끼는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습니다. 그의 살해 행위는 다윗에게 행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둘째 삼인에 드는 장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자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요압의 이름이 다윗의 둘째 삼인의 이름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났을 때 다윗은 요압에게 명하여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요압은 자신이 은 천개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삼하 18:12). 결국 요압에 의해 압살롬은 죽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비보를 들은 다윗은 방성대곡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에 『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으로 인해 슬퍼한다는 소식을 들은 요압은 못마땅했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에게 압살롬과의 전투에 참여한 자들을 위로하라고 오히려 역공을 가해 왔습니다. 결국 요압은 다윗의 유언대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2장 32-33절에 『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3. 개인의 원수는 끝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미디안에 갚으라는 말과 상반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원수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을 욕되게 한 공동체적 차원의 원수이기 때문에 두 명령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따라서 미디안에 갚으라는 말은 감정적 보복 명령이 아니라 악인에 대한 합당한 공의의 집행명령입니다. 

미디안을 진멸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욕되게 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거룩과 성결을 위해서입니다. 미디안은 이웃나라 에돔, 모압, 압몬, 유대등과 가리지 않고 무역을 했습니다. 요셉이 미디안에게 팔렸습니다(창 37:28).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 여자와 행음(行淫)하였습니다. 이에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격분한 나머지 시므리와 고스비 두 남녀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염병을 내려서 이만 사천 명을 죽였습니다(민 25:6-15).이유는 미디안인들이 같은 혈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복수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통하여 미디안을 진멸하고 촌락을 불살랐습니다(민 31:7-10). 그로부터 미디안은 수백 년 간 미미하게 내려오다가 다시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7년간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삿 6:1). 하나님은 기드온을 시켜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과 싸워 승리케 했습니다(삿 7:11-25). 하나님은 인간대 인간의 개인적인 원수에 대해서는 용서의 원칙을 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4절에 『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고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 5: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했습니다(롬 12:19). 

마태복음 5장 39-40절에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성경적 원리는 개인 자격으로 형제끼리 불신법정에 송사하는 일을 처음부터 금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는 존재인데 도리어 세상에 의해 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객이 전도된 불합리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7절에 『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원수 갚는 일과 용서하는 일이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 모순 되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은 이곳에서 하신 말씀을 다른 곳에서는 반대로 말씀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구약의 윤리는 원수 갚는 것이고 신약의 윤리는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전쟁이 모두 하나님의 주관하신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만 기록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세례요한에게 찾아온 군인들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때 군대를 탈영하라고 하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선행을 하라는 의미에서,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눅 3:14)고 했습니다. 

바울 역시 자기의 군인 친구를 보고 군대를 즉시 떠나라고 하지 아니했습니다. 군 복무하는 자에게 오히려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행 10:1-6). 

구약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출 20:13). 이것은 모든 살인을 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 자격으로 지킬 계명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정부가 안식일을 범한 자와 기타 도덕법을 범한 자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원수 곧 아말렉과는 전쟁을 할 것을 명했습니다. 소년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을 무너뜨리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는 기독신자가 개인자격으로는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롬 12:19). 그 다음 장에는 정부를 가리켜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3장 4절에 『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갚아야 합니다. 

개인 개인의 원수는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즉시 갚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27절에 『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라도 유예시켜 나중에 갚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의 원수는 끝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0절에 『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 갚는 일이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오직 주님에게 있습니다. 시편 54편 5절에 『 주께서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원수 앞에 용서라는 무기 외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습니다. 용서는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용서의 무기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복음은 원수를 친구로 만듭니다. 원수를 혈육보다 더한 관계로 만든 것은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자기 검으로 사용하는 십자가의 용병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원수 된 자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용서하십시오.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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