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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년정신 (레 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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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정신 (레 25:8~12)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 시인의 찬양시 중에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 모두 잘 아시는 찬양일 겁니다.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나로 시작하여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로 끝나는 찬양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송명희 시인의 이 찬양을 말씀하시면서 ‘송명희가 공평하시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실까요?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건강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지지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자랍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시라면 세상에 그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공평하신데 그와 같은 일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잘못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잘못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혹시 하나님은 꼭 공평하셔야만 된다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혹시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깊고 높으신 뜻과 의도가 있으신 것은 아닐까요?

불공평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으십니다. 그것은 흐름입니다. 모든 것이 평평하면 흐름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흐름은 생명입니다. 흐름이 멈추면 죽습니다. 혈관이 막히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피가 잘 돌지 않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해마다 태풍 때문에 피해가 많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의 피해가 생깁니다. 바다가 썩고 지구의 대부분의 사막화 됩니다. 태풍이 강력한 흐름을 일으키어 지구로 하여금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도 흘러야 하고 공기도 흘러야 하고 사람의 마음도 흘러야하고 돈도 흘러야만 합니다. 흐름이 막히면 죽습니다. 그런데 평평하면 흐름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지 않으신 것입니다.

흐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한데서 약한 데로 흐르고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연은 다 이 하나님이 정하신 흐름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런데 타락한 우리 인간은 이 흐름의 원칙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사회에서는 흐름이 거꾸로 흐릅니다.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약한 데서 강한 데로 흐릅니다. 사회주의는 흐름을 일으키는 동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자본주의는 흐름을 일으키는 데 아주 탁월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도 아주 위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흐름을 일으키는 데는 장점이 있지만 그 흐름이 역행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흐르기는 흐르는데 약한 데서 강한 데로, 가난한 데서 부한 데로 흐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버려두면 부익부 빈익빈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역류 현상을 바로 잡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공평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프리카 오지에 우물을 파주는 선교를 하시는 분이 쓰신 책을 읽었습니다. 물이 없어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오지에 우물을 파주기 위하여 밀림에 길을 내고 장비를 가지고 들어가 결국 저들의 물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4억 원 정도의 돈을 모금하고, 포클레인 기사를 비롯하여 전문가들이 몇 달 씩 단기선교사로 헌신해서 결국 그와 같은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며 참 감동했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가 이사야 11장에서 그렸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그렸던 하나님 나라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는 이사야 11장 6절에서 9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에는 강하고 부한 자들의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의무와 섬김에 대한 말씀이 참 많습니다. 레위기 19장에 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은 추수 할 때 다 거두면 안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일부러 네 귀퉁이를 남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실수로 곡식 단을 떨어트리게 되면 그것을 줍지 않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가난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이 강한 율법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묻는 율법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는데 머물지 말고 행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율법사에게 행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의무였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신에 관심을 가진 교회로 출발되었습니다. 2001년 10월 7일 높은 뜻 숭의교회로 시작할 때 예산의 최소한 30%는 밖을 위하여 쓴다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그와 같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을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 중에 하나로 삼았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한국은행은 자신의 은행을 위하여 존재하는 은행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에 있는 은행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은행이지 않습니까?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섬기다가 서울 역 앞의 쪽방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쪽방을 섬기다가 쪽방에 사시는 분들이 자기 이름의 통장에 300만 원을 저축하면 나라에서 700만 원 신용으로 대출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1,000 만 원으로 전세를 얻고 매일 지불하는 방세를 모아 융자를 갚게 되어 결국 그 돈이 자기 돈이 됩니다. 쪽방에 사는 분들에게는 정말 꿈과 같은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300만 원을 저축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150만 원을 저축한 분들에게 150만 원을 신용대출해 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교인들이 그것을 좋게 여기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헌금을 쪽방 탈출헌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와 같은 일로 말미암아 정말 쪽방에서 탈출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젖먹이 손녀를 쪽방에서 키우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가정을 저희 교회가 지원하여 쪽방에서 탈출시켰습니다. 그리고 분유와 기저귀를 대드렸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학습지도 지원하고 한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드디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열심히 교회가 지원한 빚을 다 갚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운 열매나눔재단에서 그 할머니가 열심히 갚으신 돈의 대부분을 다시 손녀 딸의 장학금으로 내 놓았습니다.

쪽방 탈출만으로 부족하여 밑천나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12명 씩 두 팀으로 나누어 6,000만 원씩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팀은 김밥천국을 운영하게 하였고 또 한 팀은 이동세차를 하게 하였습니다. 둘 다 다 성공하였습니다. 저들이 교회 빚을 다 갚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원한 자금이 씨드머니가 되어 지금은 사업이 확장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밑천나눔 운동이 마중물이 되어 생겨나게 된 중구자활 센터를 통하여 현재 백 몇 십 명에게 월급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국에 있는 자활 센터 중 제일 활발하고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자활센터가 되었습니다.

쪽방 탈출과 밑천나눔과 자활센터로 발전한 우리 교회의 사역은 본격적으로 이 일에 덤벼들게 됩니다. 그것은 2007년 1월 첫 주일에 시작한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운동입니다. 학교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우리 교회가 예배당 건축을 뒤로 미루고 그 돈 200억 원으로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과 통일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쓰기로 작정하고 그것을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 사역을 통하여 열매나눔재단이 세워져 탈북자를 위한 공장 두 개가 세워졌고, 탈북자 청소년들을 위한 여명학교와 평양과기대 건축과 평화통일을 연구하기 위하여 세워진 한반도 평화 연구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열매나눔 재단에는 70억 원을 약속하고 현재 절반 가량을 지원하였으며 여명학교는 일 년에 약 2억 원이 조금 넘는 재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평양과기대 건축에 10억 원 한반도 평화연구원에 2억 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올해는 장애인들과 탈북자를 함께 고용하는 보다 큰 공장이 세워 질 예정입니다.

이 사역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탄은 예배처소를 사용하던 숭의학원에서 떠나오게 하였지만,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교회를 넷으로 분립하는 강수를 두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분립하고 보니 결과적으로 더 좋아졌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 분립을 목적으로 하다가 한 분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을 고집하다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교회 분립이라고 하는 초강수를 두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분립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였던 것이 흐름에 대한 하나님의 높으신 뜻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희년제도는 흐름을 위한 하나님의 시스템의 절정입니다. 네 귀퉁이를 남기고 그래도 모자라는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위하여 삼년마다 또 소득의 십분의 일을 냈지만 그것만으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토지를 팔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을 종으로 팔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기가 막힌 제도를 우리 인간에게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판 토지와 사람을 영원히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희년의 법이었습니다. 50년 희년이 되는 해에 저들이 샀던 토지와 종들을 다 풀어 주라시는 것이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종들은 종에서 해방되고 다시 자기 토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아 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토지와 사람만큼은 공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힌 제도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절망에서부터 해방이 됩니다. 잠시는 어려울 수 있으나 몇 년 만 참고 견디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도 주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은 좋은 세상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이 없는 세상은 나쁜 세상입니다. 그리고 아주 위험한 세상입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강하고 부요한 사람들에게도 좋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희년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 그리고 강한 자와 약한 자 모두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세상이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안전해 질 것입니다. 정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딩구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재산을 가족의 수대로 1/n 로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식구가 여섯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내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고 아무리 내 이름의 통장에 저축이 되어 있다고 하여도 정말 내 재산과 돈은 그 중 1/6 뿐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몫이 빠진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1/7로 계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이시니 당연히 가족의 몫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최소한 재산의 1/7은 하나님의 몫으로 놓으려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더 발전하여 1/3을 드리려고 합니다. 1/3은 하나님 몫, 1/3은 자녀들의 몫, 1/3은 우리 부부의 몫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산도 1/3은 하나님을 위하여 상속할 작정이지만 한 달 수입의 최소한 1/3도 하나님을 위하여 최소한으로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도 하나님의 높으신 뜻인 건강한 흐름이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가족들에게 몫을 지어 상속하듯

하나님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그 몫을 유산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하면 그것이 나름대로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은 그와 같은 희년정신을 실천함으로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은 희년운동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높은 뜻 하늘 교회는 다른 높은 뜻 교회와는 달리 높은 뜻 숭의교회 출신이 비율적으로 적은 교회입니다. 때문에 높은 뜻 하늘 교회 교인이 되었지만 높은 뜻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을 무엇인지 희년운동은 무엇인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설명 드리기 위하여 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내 것을 흘려보내면 더 많은 것을 흘려 보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것을 내게도 흘려보내 주십니다. 큰 아이가 미국 유학을 가기 전 한 달 수입의 50% 이상을 쓰려고 노력하였었습니다. 큰 아이가 미국 유학을 간 후 부터는 수입의 40% 정도를 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올해부터는 그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가능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아이에게 학비와 생활비까지 다 커버가 되는 학교 최고의 장학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초신자들에게는 홍해의 기적이 자주 일어나지만 믿은 지 오래 된 사람들에게는 홍해의 기적보다는 요단강의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홍해는 갈라진 다음에 백성들이 들어갔지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요단강이 건너 진 다음에 백성들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제사장들을 따라 요단강에 들어가자 강의 갈라졌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욕심이 우리의 본능이 된 상황에서 희년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된 본능이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욕심이 우리의 삶을 이끌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높으 신 뜻과 의도가 우리의 삶을 이끌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하다가 복을 받는 교회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교회와 함께 이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년의 정신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에서 희년헌금을 작정하신 교우들은 계속해서 잘 감당해 주시고, 새로 오신 교우들은 한번 믿음으로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국 교회가 딱 세마디 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합니다. 그것은 ‘모여라, 돈내라, 집짓자’랍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높은 뜻 교회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조금 다릅니다. 모여라 돈내라 까지는 같지만 우리의 목적은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흐름을 위해서입니다.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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