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의 사명 (고후 4:1~6)

  • 잡초 잡초
  • 516
  • 0

첨부 1


우리의 사명 (고후 4:1~6)

 
인생에는 세 번의 위대한 초청이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으로의 초청이고, 둘째는 사명으로의 초청이며, 셋째는 죽음을 통한 영원한 세계로의 초청입니다.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맡겨진 사명을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사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바로 우리라는 말입니다.

한때 교회 안팎에서 사명자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쓰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사명자라는 말이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명자라는 사람들 앞에 서면 괜히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사명자인 것입니다. 물론 하는 일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명자가 아닌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명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전도의 사명을 잊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아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그 어느 때보다 삶이 바쁘고 또 고달픈 것은 사실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전도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은 삶이 고달프다고 해서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고 보면 힘들어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쉽게 지치고 또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뚜렷한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분명 그들도 고난이 닥치면 두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묵묵히 견딥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뚜렷한 사명감에 붙잡힌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처음부터 고난이 예고된 길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 1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다메섹에 있던 제자 아니니아에게 주님이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과연 그는 숱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맡은 바 사명에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그는 오직 복음 전파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고달픈 길이었고 또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난이 얼마나 심했으면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합니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맡은 바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외부의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서도 그를 힘들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신 공격은 물론이고 그가 전한 복음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심할수록 그는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난 중에 그는 신약 성경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직접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숱한 고난 중에도 그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복음 전도의 사명을 끝까지 붙잡고 달려갈 수 있었습니까?

첫째, 사도 바울은 싸움의 상대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 요소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전도하다가 포기하게 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실패한 경험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고 거부하며 도리어 전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다시 또 전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적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3절, 4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신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마음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복음에 약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도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신, 즉 사탄이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서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구원으로 인도하지만 사탄은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자들로 하여금 절망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싸움의 대상과 그들의 전략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노라!"

전도하다 보면 나를 높이고 내 생각을 전하고 내 경험을 전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전도가 잘 되기라도 하면 마치 내가 이룬 것처럼 금방 교만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명자의 임무는 자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전하고 예수님만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명자는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나에게 사명을 주신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확신했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만이 참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 때문에 자신이 주님과 복음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은 철저히 주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그 숱한 고난 중에도 잘 참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의 종의 자세로 섬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일했기 때문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주님 안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았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똑똑히 체험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능력의 주님이 사명을 맡기셨다고 획실히 믿었기 때문에 그 숱한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봉독한 말씀에 이어지는 7절 말씀으로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 누구라도 주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으로 시작했다가도 지쳐서 곧 포기하게 됩니다. 다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오늘 우리도 사명자로서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숱한 고난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싸울 상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할 것이 무엇인지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고 나아가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할 것은 맡겨진 직분에 끝까지 충성하는 것뿐이라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7장 10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맡은 바 복음 전도의 귀한 사명에 충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어린 양 보좌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주님의 칭찬을 듣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