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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하시는 분 (삼하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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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시는 분 (삼하 15:30~37)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아름다운 용서’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나와서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하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훈훈한 사랑과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저도 종종 시청을 하는데, 가만히 보면 어머니가 아들과 딸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버려두고 집을 나갔다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자녀를 찾아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처럼 집을 나가게 된 배경에는 대부분 아버지가 원인제공을 한 것이 또한 많습니다.  아버지의 폭력, 주정, 탈선, 실패 등으로 빚어진 가정불화가 어머니로 하여금 집을 나가게 하고, 그것이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입니다.  1970년, 80년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산업일선에서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가정은 좀 소홀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참 잘해야 합니다.  어쨌든 갈등과 상처로 마음이 아픈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성경에도 마음의 상처와 고통으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다윗’입니다.  대부분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상처가 많지만, 다윗의 경우는 반대로 자녀가 부모에게 준 상처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왕권의 위기를 맞았고, 살얼음판을 걷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다윗은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나 비록 마음이 아플지라도 믿음의 사람 다윗은 위기를 극복해 갑니다.  우리 삶에 종종 찾아오는 마음이 아플 때, 어떻게 극복해야할까요?  당시 다윗은 마음이 아플 때 과연 어떻게 해결해 나갔을까요?


첫째는 도피를 택합니다. 

본문은 다윗의 인생에 가장 참담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던 다윗은 안정된 나라와 번영의 이스라엘을 위해 온갖 힘을 기울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이방인의 침입을 막았고,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바르고 고른 인사정책을 통해 나라를 안정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인정하는 뛰어난 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에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것도 반란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친구였고, 또한 아들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여러 아들 가운데 가장 왕권에 근접한 아들이고, 다윗이 어려서부터 눈여겨보았던 자녀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갖춰진 아들이어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었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눈 것입니다.  참 가슴 아픈 사연이고, 슬픈 현실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저리고 아팠겠습니까?  이런 위기 상황에 다윗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2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대결이요, 다른 하나는 도피입니다.  당시 다윗의 충신과 군사들은 모두 반란군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반란이기에 어차피 둘 중의 하나는 죽는 상황이어서 싸우려 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대결을 원했지만 다윗은 도피를 선택합니다.  본문은 바로 다윗의 결단에 따라 당시 충신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다윗은 마음이 아플 때, 대결보다 도피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마음이 아플지라도 잊어버리고, 그냥 털어버리겠다는 자기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배반해도,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겠다는 행동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로 다윗은 지금 도피를 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부스 사람에게서 빼앗아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의 재임 중에 왕궁을 건축하여 당시 웅대한 도시를 이루었던 곳, 바로 그곳을 지금 떠납니다.  그가 성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많은 수모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피합니다.  마음이 아파도 잊겠다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친구를 끝까지 사랑하고, 아프게 하는 아들을 한없이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인생의 참담했던 상황을 이겨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속상하여 울분이 터져 나올 때 어떤 마음을 품으십니까?  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의 사람 다윗의 해법을 배워야 합니다.  대결보다 도피를 선택해야 합니다.  잊어야 하고, 놓아야 하고, 버려야 하고, 끝까지 사랑하고, 한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한을 품고 속에 응어리가 남으면 반드시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듭니다.  그래서 내가 풀어야 합니다.  내가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다윗의 이런 해법으로 극복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위로를 받습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너무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런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위로’입니다.  상처에는 위로밖에 약이 없습니다.  다윗이 지금 그 위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도피를 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는 길에 ‘후새’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바르면서 다윗을 맞이합니다.  다윗의 참담한 심경을 자기도 함께 짊어지겠다는 표시입니다.  후새는 원래 베냐민 지파의 한 씨족인 아렉 사람으로서, 다윗왕의 고문이며 절친한 친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친구가 몇 명이 나옵니다.  왕이 되기 이전에 요나단이 있었고, 왕이 된 이후에 가까이 했던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후새이고, 또 한사람이 아히도벨입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이란 친구는 압살롬 편에 가담하여 반역에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중으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로도 힘들었지만, 친구로도 힘들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측근입니다.  왕의 모사로서 다윗이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을 만큼 두터운 신임을 얻은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이 성에 있었기에 후새는 성 밖에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아히도벨, 밖에서는 후새의 도움으로 다윗은 든든한 왕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있던 친구가 배신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는 길에 아히도벨이 반란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에서는 짤막하지만, 시편에서는 자세하게 그의 심경을 토로합니다.  

시편 55편이 바로 그 때 지었던 시입니다.  거기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이처럼 친구에게서 배신당한 참담한 심경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 후새에게서는 위로를 받습니다.  한 친구에게서 버림받은 아픔을, 다른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 다윗은 후새의 위로로 큰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결국 후새의 도움으로 압살롬과 아히도벨은 무너집니다.  친구의 위로와 도움으로 다윗은 다시 일어납니다.  이처럼 마음이 아플 때 다윗에게 위로가 임합니다.  터질 것 같은 마음에 깊은 사랑이 전해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비슷한 경우가 나옵니다.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드리는 악한 자의 최전방에서 무차별 사람들을 옥에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새사람이 된  이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에게 용서를 빌고, 성도들에게 사랑을 주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의 변화를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생애가운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때 그를 위로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친구로서 그를 대변해 주었습니다.  후에도 바울이 쓸쓸히 고향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외롭게 지낼 때 그를 찾아가 위로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와 함께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 두 사람의 협력과 사역으로 사도행전의 중심적인 교회로 세워집니다.  이처럼 바울의 인생에 마음이 아플 때 위로가 있었습니다.  친구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아플 때는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을 보면 무엇보다도 위로와 격려부터 해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이기에 사람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친구에게 받은 상처이기에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아픔이기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삭막합니다.  그래서 많은 아픔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이 몹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픈 곳에 다시 망치로 때리고 못을 칩니다.  그래서 견디기가 더 힘듭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이 가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살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 주변에는 악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의 천사와 위로자가 언제나 내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으로 힘을 얻으시고 아픔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이 선택한 길은 감람산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는 여러 길 가운데 다윗은 그곳으로 나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감람산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곳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땅에는 이런 예배처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여기 감람산 꼭대기에도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이전에 이곳은 가나안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지만, 후에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지방 성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곳,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은 분명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모두 싸우자고 할 때 다윗은 신앙의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다윗은 무엇을 했을까요?   먼저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지금 반역의 중심에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반역의 원인이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가정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압살롬의 동생인 다말을 강간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일로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외가로 도망을 갑니다.  

가정에 이런 문제가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니 이런 일이 생겼는데도 다윗은 아들들을 제지할 힘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압니다.  바로 다윗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가정에 똑같이 반복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범죄이후에 눈물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 앞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하나님의 하신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삼하7:8-15) 

결국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칙이었습니다.  아들이 범죄하고, 백성이 잘못할 때, 특히 다윗 자신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칙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야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아들의 반역은 다윗을 치는 사람막대기였습니다.  친구의 배신은 그에게 임한 인생채칙이었습니다.  지금 모든 문제의 배경에 자기 잘못이 컸음을 깨달은 그가 선택한 것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을 찾는 길뿐입니다.  그런 다윗의 심정을 고스란히 성경은 담고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날 때의 장면을 기록한 30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한 백성들도 각각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그토록 당당했던 다윗이 이제 머리를 가리웁니다.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왕이 노예처럼, 종처럼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펑펑 울면서 걸어갑니다.  그것은 진정 서러움과 비통함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통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자복하고, 통회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다윗이 한 일은 회개와 함께 치유의 기도였습니다.  다윗은 많은 상처가 받았습니다.  성경에 등장할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아픔가운데 지금처럼 아픈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가슴을 부여잡고 울고, 울면서도 치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셔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엎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가 아프다고, 힘들다고, 괴롭다고 눈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주의 크신 은혜로 상처와 아픔을 치유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아플 때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며, 자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만져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처럼 내 마음을 만지는 분이 없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강같이 흘러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이 임해야 합니다.  고통 받는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이 품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때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부르소서,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주소서,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 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 하소서, 만복근원 예수시여 위로하소서 우리 주와 같으신 이 어디 있을까, 주여, 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여러분, 마음이 아플 때는 도피를 택하십시오.  도피는 잊어버리겠다는 노력이고,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겠다는 나의 다짐입니다.  또한 이제 위로를 받으십시오.  사람으로 받은 아픔이기에 사람을 통해 먼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아가십시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나를 돌아보며 자복하고 통회하고, 내 마음 만져달라고, 상한마음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 주님은 마음이 아플 때 나를 위로하고, 주님의 은혜가 강같이 흘러 나를 치료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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