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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하시는 하나님 (시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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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시는 하나님 (시 18:1~6)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나누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찬양으로 삶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찬양대에서 먼저 그런 의미의 찬양을 해주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하나님이 유럽 선교를 여실 때에 찬양으로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니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리는 일이 일어났다. 계시록에는 장차 일어날 엄청난 핍박 속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였으니 너희도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계시록의 주된 내용이다. 특별히 4, 5장에서는 천국을 보여주시며 너희도 찬양하고 예배하며 승리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다.

침체된 이 때에도 우리는 찬양하며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본문은 참으로 큰 힘이 되는 찬양이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그리고 나를 건지시는 자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번 주에 말씀은 준비하면서 우리도 이 찬양을 부르며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두움을 깨뜨리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문은 다윗이 나이가 들은 후에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부른 찬양이다. 특히, 삼상 22장에서 그가 한 고백을 그대로 찬양으로 옮긴 내용이다. 그의 인생에는 승리도 있었고 축복도 있었지만 역경도 아주 많았다. 그러나 모든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울은 그의 모든 부대를 동원하여 오랜동안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FBI, CIA, INS, IRS등의 조직을 모두 동원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은 다윗을 10년 이상 추적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요, 나의 산성이라고 찬양하였다. 그러니 사울의 부대가 그를 죽이려고 몰려와도 그를 해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다윗을 보호하셨다. 다윗은 나중에 왕이 된 후에도 많은 적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는 그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의 구원의 뿔이고 그의 요새이며 피할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그의 왕권이 견고히 세워지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에는 오히려 아들인 압살롬의 공격을 받게 되고 다윗은 맨발로 도망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압살롬이 죽은 후에는 그 소식을 접하고 큰 통곡을 하기도 하였다. 그와 같이 아픔과 수치가 있는 인생을 살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찬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윗 만의 찬양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찬양을 찾아야 한다. 이 찬양을 찾기 위해서 다윗의 찬양이 그의 생애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자.

1. 삶의 역경을 통해서 찾게 된 찬양이다.

4, 5절을 다시 보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인생의 파도가 요동칠 때에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리고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우리는 ‘God is enough’라고 고백할 수 있다. 이 때에 부르는 찬양이 바로 ‘한 밤 중에 올려드리는 찬양’이다. 

지금 다락방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출애굽기’의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홍해도 가르셨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셨나? 물이 없는 스루광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나중에 마라에서 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물은 쓴 물이었다. 백성은 황당했고 어려움은 가중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 물로 바꿀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모세로 하여금 한 나무를 던지게 하였고 마라의 물은 곧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다. 
그들은 성공적인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교만해져 있었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통해서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에 그들은 엘림을 거쳐 신광야 이르렀으나 그곳에는 먹을 것을 요구하며서 불평하고 원망하였다. 애굽에서는 고기도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였다. 원래 과거에 대하여는 과장이 많은 법이다. 
하나님은 그 불평을 들으시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리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그들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던 것이다. 만나는 말씀을 뜻하며 매일 내리는 만나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라는 하나님의 뜻과 같다. 
그들은 또 르비딤으로 인도되었지만 그곳도 물이 없는 지역이었다. 또 다시 불평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번에는 반석에서 물을 만드셨다. 그 물과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다시는 주리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게 될 것이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르비딤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다. 하지만 역경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는 뜻이 있고 우리에게 공급하시려는 은혜와 은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축복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 하신다. 이런 글이 있다. 
“Traveling in the desert, I will be more and more tired, but also nearer and nearer to Thee” (광야를 여행하면서 나는 조금씩 곤해지지만 동시에 나의 구주 앞으로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시나? 물론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있다. 그곳에 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광야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목적지 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 분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당신의 백성이 성숙해지고 그들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그 분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바로 ‘고통’으로부터 시작한다. 광야를 통해서 ‘walking with God’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다윗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찬양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전에 몰랐던 하나님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어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특권이 있다. 전에 몰랐던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같은 찬양 가사라도 지금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전에는 내려놓지 못하던 것을 지금은 다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역경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만의 특권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그러면 하늘의 만나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찾게 된 찬양이다.

1절을 보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4, 5절을 다시 보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그는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입술의 열매로 이러한 찬양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power가 되는가? 
고난 중에 올려 드리는 찬양에는 엄청난 power가 있다. 롬 8:28을 보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다. 아픔과 절망과 실패 등의 모든 힘든 상황들이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다. 엄청난 능력이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우리를 위한 약속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이런 능력의 약속이 주어진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마음으로 느끼고 입술로 고백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능력이다.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능력의 약속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합당할 때에 우리를 불러가시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하여도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절망하여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자.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우리의 사랑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미 세 차례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였기 때문에 또 다시 변절할 수 있다는 근심도 있었지만, 그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백만으로도 그를 축복하였고 그의 양을 맡기셨다. 사랑의 고백에는 이같이 엄청난 power가 있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여 주님이 주시는 축복과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3.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찾게 된 찬양이다.

6절을 보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실제로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도 부르짖는 고백을 많이 하였다. 

시 18:6을 보자 ‘시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 40:1을 보자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 145:19을 보자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있다. 부모는 많은 아이들 중에서 자신의 아이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렘 33:3을 보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즉시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그런 찬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이 있어야 한다. 확신을 가지고 부르짖어야 한다. 기도는 확신 가운데 부르짖는 것이라고 한다. 기도는 말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 자세와 가슴의 표현이다. 나의 문제 보다도 더욱 크신 아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부르짖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바로 열납되는 기도이다.

여러분은 기적을 믿는가? 부르짖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 물론 가장 큰 기적은 구원이다. 그리고 부르짖어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부르짖는 가운데 신실하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락방, 토요새벽기도, 목요연합기도 등의 자리에서 확신을 갖고 기도하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끝으로 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옛날에 어떤 황제와 그를 섬기던 왕이 있었다. 어떤 한 해에 농사한 곡식이 모두 오염되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곡식을 먹으면 누구든지 정신 병자가 될 것이었다.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고민만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한가지 지혜를 마련하였다. 올해의 곡식도 나누어주고 작년의 곡식도 함께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어떤 사람은 정신 병자가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면 비정상인들은 정상인들을 보고 희망과 비전을 갖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도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 만나와 말씀의 약속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 할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세상의 노래와 달라야 할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빛을 비출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 그 소수는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역경을 통해서 찬양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찬양을 찾아야 하며, 주님께 부르짖으며 찬양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노래와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찬양을 부르며 어려움과 어두움 속에서 도리어 찬양을 통해 부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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