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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으켜 세우라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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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세우라 (행 3:1~10)


작년 12월 18일 뉴스에 ‘서글픈 죽음’이 보도 되었습니다.
중국집 배달원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살던 한 남자가 
월급만으로는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힘이 부친다며 로또 복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십 만원씩, 이십 만원씩, 혹은 수백만 원씩 복권을 사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어린 아이에게
4천만 원의 빚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복권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기대는 결국 허망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십니까? 
‘기대’라는 말은 미리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대’와 비슷한 말이 ‘예상’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예상’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상’은 단지 어떤 일이 되어져 갈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러나 ‘기대’(期:기약할 기 ,待: 기다릴 대)는
희망을 가지고 기약한 것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담겨 있는 기대는 어긋나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기대를 걸고 살아갑니다. 
-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 …
- 자녀가 훌륭하게 우뚝 설 것이라는 기대 …
-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칭찬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 저녁에 보기로 마음먹은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 …
- 예배를 마치고 먹을 음식이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 … 등 
사람들은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도 기대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모든 것이 잘 이뤄지지만은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 감격하고 감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구걸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에 자신이 기대했던 것 보다 
엄청나게 큰 것을 얻은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12시), 제 구시(오후 3시)
하루에 세 번 정해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가족끼리 의논하고 마음을 정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군대에 나간 자식과, 외국에 나가 일하거나 공부하는 가족들과
약속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낮 12시, 밤 10시 혹은 시차가 있는 곳은 시간을 정해놓고
서로 서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으신지요?
시간과 장소를 정해 어디서나 기도하십니까?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오후 3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행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 3:2) 

‘미문이라는 성전 문’은 일반적으로 ‘니카노르 문(Nicanor Gate)’으로 불렸습니다. 
그 문의 높이는 약 23m 너비는 약 18m로 
성전의 다른 문들에 비해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미문(美門, Beautiful gate)’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걷지 못하는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 날마다 성전 미문에 나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구걸하는 것 이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보조기구가 발달 되어 있지 못해서 기본적인 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며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우리 교회 성도들은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몸이 불편한 분들을 배려하고 
도우며 사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 저는 우리 교회에 농아교회/농아교회 성도들/농아 목사님/
통역 봉사하는 권사님이 계시고, 함께 한 건물을 사용하면서
서로 귀히 여기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언제/어디서나 … 몸이 불편하신 분들/
연세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들 … 배려하고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우리를 보라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이 
기도하러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구걸하였습니다. (구걸 = 돈이나 양식 따위를 거저 얻으려는 행위)
그러자 본문 4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 … ”(행 3:4)고 말했습니다. 
손을 들어 동전 몇 푼을 기대하는 사람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불쌍히 여기며 주목했습니다. 
(주목 = 한 곳에 주의를 집중하여 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핌)

그리고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면,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 … ”(행 3:5)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통 몇 푼 던져주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 
베드로와 요한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보라”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행 3:6) 
하며 그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7절) 
그러자 나면서부터 한 번도 서거나 걷지도 못했던 사람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동전 몇 푼 기대했던 사람에게 
은이나 금으로 비교할 수 없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해결 받아야하는 문제들이 …
고침 받아야 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고침 받고 해결 받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안되는 일이라고 … 하며 포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나는 원래 이래’,‘내가 하는 일이 뭐 이렇지’
‘내 남편은 원래 저래’
‘우리 애는 내가 알아. 안돼, 틀렸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어느 개그맨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식 얘기를 하면서‘우리 애는 텃어!’라고 하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자기 자식보고 틀렸다고, 안된다고 …
아무리 개그맨이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사십니까?
당연히 안될 것으로 단정 지어 말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실망이 크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으면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81편 10절에, 
“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 ”(시 81:10) 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도 열어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라고는 
기껏 동전 몇 푼 같은 사소한 것들뿐입니다. 

이제 입을 크게 여세요!
기도의 입을, 기도의 폭을 넓히고, 바라는 기대를 크게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고,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크게 구하시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구하고, 포기하지 말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 잡아 일으키니

7절에 보세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 ”(행 3:7) 얻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로만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거지의 손을 ‘잡아’일으켰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도 보면 너무 깔끔 떠는 이들이 있습니다.
잘났습니다. 
“난 그런 사람하고는 선교회 안해. 어울리고 싶지 않아.”
저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천국에 안갈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천국에는 별별 사람이 다 가는 곳인데 … 어떻게 하려는지. 
너무 깔끔 떨지 마세요. 요즘 너무 잘난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산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원이나 기도실에 가서 열정적으로 기도만 하고 일하지 않는 것 … 
그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만 해보겠다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 온전한 열정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내밀어 앉아 있는 사람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 마음에 들기 위해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땀 흘려야 합니다. 일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모든 일을 열정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두 가지만 골라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된 열정이 아닙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 어려움이 닥쳤을 때 …
실패하여 넘어졌을 때 …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열정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라! 
하지만 모든 것이 네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라!” 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지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열정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기 바랍니다.

- 지어져 가느니라

8절에 보면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 … ”(행 3:8) 했다고 했습니다. 
걷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걸을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여전히 거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 같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더럽고 추한 모습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 손잡고 함께 성전에 들어가고 
함께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교회는 공사 중’,‘공사 중인 교회’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22절에,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했습니다. 

거룩하게 변화되는 과정, 즉 공사 중입니다.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거룩한 장소(Sanctuary, 성역)를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이 내 속을 주관하시면 ‘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가정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실 때
여러분의 가정은 성전입니다.
교회 건물이 아름다워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창고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막을 쳤어도, 지하실에 있어도, 2층 건물에 있어도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곳이 성전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2절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지만 …
사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엡 2:3)
그래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롬 3:23)
죄 때문에 죽음으로 죄 값을 치러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롬 6:23)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믿음으로 
- 구원 받았습니다. (엡 2:8, 요 3:16)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 1:12)
-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빌 3:20) 믿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러나 완벽해 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 
투덜대고/질투하고/삐치고/미워하고/
얼굴 붉히고/싸우고/돌아서고 … 여전히 한심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구원 받았다고, 교회 다닌다고 … 직분 받았다고 … 
한 순간에 천사가 되거나 예수님 사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하나님이 계실만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지만, 아직 하는 말과 행동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지어져 가는 과정’이라 그렇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평가하고, 실망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성급하게 평가를 내립니다. 
그것은 현재 그 사람이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 남편이 / 아내가 … 예수 믿는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믿는 사람답지 못하고 부족해 보여도
‘이 사람은 가짜다, 틀렸다’하며 급하게 단정 짓지 마세요. 실망하지 마세요. 
속회에서 … 선교회에서 … 부서에서 …
속 썩이고 / 골치 아프게 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공사 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지금의 모습 정도로 변화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30여년 가까이 목회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많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책도 많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순간 순간 새로운 책을 볼 때마다 
‘아, 이거였구나. 왜 이걸 지금 알았을까 … !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 그때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안타까와 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지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교회에 장로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중에는 원래 착하고 좋은 분도 계시지만 …
진짜 참고 참고 참고 기다려줬더니 지금 장로가 되신 분들이 여럿입니다. 

우리 교회에 예전에 
‘최○○’라는 장로님이 계셨는데 오늘 그 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오래 된 분들은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공개된 자리라 실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금도 설교하려면 마음이 떨리고 
설교를 다 마치면 주일 오후에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일밤에 자고 월요일이 되는 순간부터 
또 설교에 대해 염려되고 근심이 됩니다.
설교는 그렇게 힘들고 조심스럽고 두렵고 떨림으로 합니다.
그러니 제가 교육전도사였을 때 설교 하려면 얼마나 떨었겠습니까!
어느 날, 새벽기도 설교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잠을 못자고 설교 준비를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새벽에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덩치가 큰 사람이 술을 먹고 교회 문 입구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교회가 아주 작은 건물에서 예배 드리던 초창기 때입니다)
예배는 드려야 하니까 여러 사람이 그 사람을 들어 교회 안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찬송하고 설교를 하는데 
그 술 취한 사람이 ‘옳소’, ‘아멘’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쫓아가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새벽기도회를 인도할 때마다 그 사람이 왔습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내가 술 먹고 가는 데가 어딘가’궁금해 지더랍니다. 
그래서 와보니까 우리 교회였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교회 식으로 장례를 치루며 하관을 하는데 
자기 아버지 춥다고 이불을 덮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장례 지내면서 관에 이불 덮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그러더니 세월이 지나 그분이 우리 교회 집사, 권사, 장로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부터 서울신학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목회를 하겠다고 수원에 교회를 설립한다고 했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우면서 창립예배를 드려야 한다며 제게 축사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의 옛날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에
제가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립예배에 가서 축사하며
그분이 술 먹고 교회 입구에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알았다’고 했지, 안한다고는 하지 않았잖습니까.

지금 우리교회 시무 장로님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이 좀 부족한 것 같아도 
인내하며 참아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도 교회에 나가는 것에 대해 핍박하고 
손가락질 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교회 나오면서 술 냄새 풍기고 나와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기다려 주세요. 참아 주세요.

- 인내는 열정이 있어야

성경에서 말하는‘인내’는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 
“ …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 
고 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믿음의 시련은‘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 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시련이 오더라도
하나님 끝까지 붙드는 것이 인내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마음 상하고 속상하고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아주고,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고 위하여 기도하는 것 그것이 인내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열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정은‘똑같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꾸준히, 변함없이, 계속 … 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열정으로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참으신다고 했습니다.(벧후 3:9)

여러분이 보시기에 부모가 / 남편이 / 아내가 / 자녀가 …
친구가 / 동료가 … 지역장이 / 선교회장이 / 회원이 / 속도원이 …
온전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에 안 들어도, 보기 싫어도 …
변화될 것을 믿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품고 2009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나 혼자 잘 나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나보다 뒤처져 가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옆에서 넘어지는 사람은 일으켜 세우고
더디게 오는 사람은 기다려주며 함께 가야하는 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을 향해 들어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거지입니다. 
여전히 더러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뛰며 
함께 성전을 향해 가고, 함께 찬양했던 그들의 모습을 본 받아야 합니다.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지만
이 세상 수많은 남자 중에/여자 중에 만나 부부가 되었으니 
가족이 되었으니 끝까지 참고 견디며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허물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난 모습을 으깨어 믿음으로 한 덩어리가 될 수는 없습니까?

우리 교회에 똑똑하고 잘난 콩들이 많습니다.
콩은 예쁘지만 콩자루에서 빠져 나오면 
데굴데굴 굴러 다녀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몸을 으깨어 옆에 있는 콩과 부딪혀 하나가 되어야
메주덩어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주 덩어리 같은 교회를 더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참고 기다려 주고, 기도해 주며, 
서로 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참아주고, 기다려 주고 기도해 주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럽고 추한 손이었지만 베드로가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들도 기꺼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 믿음의 행위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백성으로 살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며 
서로 귀히 여기며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사는 
믿음의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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