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님이 도우시는 종 (사 42:1~4)

  • 잡초 잡초
  • 211
  • 0

첨부 1


주님이 도우시는 종 (사 42:1~4)
 
 
세상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얽매여 사는 자입니다(롬 14:7-8). 곧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종은 자유도 권리도 없이 비참하게 살지만 그래도 여호와의 종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종된 신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본문말씀 1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입니다. 이토록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 3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사실상 상한 갈대처럼 연약한 자입니다.

1)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7). 갈대는 몸집이 가늘고 키가 커서 약간의 바람이 와도 잘 흔들립니다. 좀 심한 바람이 불면 완전히 다 쓰러지듯이 넘어가곤 합니다. 속이 비어 있고 재질이 약하기 때문에 조그만한 충격에도 꺾이거나 상하게 됩니다. 이것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의 인간성을 비유합니다. 겉으로는 훤칠하고 건강하게 보여도 실상은 매우 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간입니다. 인간의 지식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인간의 감정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합니다. 의지나 결심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을 티끌에다 비유했고(창 18:27), 욥은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욥 4:19).

2) 아름다운 특징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Pascal)은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고, 여류작가 펄벅(Pearl Buck)은 “살아있는 갈대”라고 하였습니다. 갈대는 약한 식물이지만  자랑스러운 특징이 있습니다. 가늘어도 곧게 자랍니다. 옆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만 올라갑니다. 바람이 불때마다 사방으로 흔들리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결국 제 자리에 바로서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종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6:9-10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3) 주님 손에 붙잡힌 갈대입니다.

1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기뻐하시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손이 붙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상한 갈대에 비유하신 것도 그럴만한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미련하고 약한 자를 택하사 지혜롭고 강한 자를 능가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1:27). 아무리 약한 자라도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2. 사명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3절에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은 밤의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강론하시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4).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하였습니다(요 8:1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빛의 사람입니다. 인간은 본래 흑암의 권세자인 마귀에게 속하여 어두움의 생활을 하였습니다(유 1:13).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빛의 자녀의 신분을 부여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후부터 우리는 빛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5에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빛의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빛의 역할은 어두움을 추방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요 1:4). 이 빛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생활을 통하여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여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6). “너희 착한 행실”이란 성도의 빛된 삶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빛으로 얻는 축복입니다.

본문말씀 4절에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죄와 마귀와 어둠의 세력에 깔려 있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음의 빛이 비춰져야 됩니다. 이사야 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절에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2:4에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목적 때문입니다.

종은 비록 비천한 신분이지만 그의 행동 여하에 주인의 명예가 달려 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명령만 해 놓고 감당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주지 못하면 오히려 주인의 명예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주인은 그의 목적을 위하여 종을 붙들어 주어야만 됩니다.

1)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이사야 42:8에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라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이 하나님만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마음을 두게 되면 그의 질투심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십니다(출 20:5).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그와 맺은 언약을 변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존심이요, 그의 영광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14에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약하고 비천한 자라도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사람을 능력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1절에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 3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상한 갈대처럼 연약한 자라도 붙잡아 주시고, 꺼져가는 등불이라도 기름을 부어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여기 “진실과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에 요구하시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입니다(렘 5:1). ‘진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며, 정의는 그것이 실천되는 올바른 생활을 뜻합니다. 주의 종된 사람이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그 사명을 수행할 때 이 땅위에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4절에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섬들’은 세상과 모든 나라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신약 교회의 비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사 60:9).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편만해 지고 모든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이 땅에 하나님의 이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4에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진정한 평화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