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를 교회답게 (요 2:13~21)

  • 잡초 잡초
  • 206
  • 0

첨부 1


교회를 교회답게 (요한복음 2:13~21)



앞으로 꼭 열흘만 지나면, 2009년도 四旬節이 시작됩니다. 저는 사순절이, 영적종합검진을 받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 우리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진단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사무엘 목사님 셋째 따님 河民이는, 팔삭둥이입니다. 그나마 열흘 정도, 병원에서 많이 참다가 나왔습니다. 그 일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했는데, 그러나 팔삭둥이 河民이는 결국 孝女가 되었습니다. 河民이를 일찍 분만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몸에서 자라고 있던 경계성 癌(腫瘍)을 발견하게 되어 적기에 제거수술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이, 우리를 살리는 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 초기 사역의 행적이해]

복음서를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라는 순서대로만 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한데 (1) 시간적인 기준이고, (2) 공간적인 기준입니다. 시간적인 기준은 유월절이 그 기준이 됩니다. 공간적인 기준은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였던 갈릴리가 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기준에서 통합적으로 볼 때, 예수님 초기사역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①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내려오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심(마 3, 13).
② 유대광야로 가셔서 40일간 밤낮으로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받으심(마 4, 1-11). 그 후,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바다 위쪽에 있는, 
③ 벳새다에서 그 지방출신 사람 시몬(베드로) 안드레(시몬의 형제),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심(요 1, 35-51). 그리고는, 그 반대편지역인
④ 갈릴리 가나(나사렛 보다 북쪽)에서 첫 이적을 베푸심(요 2, 1-11). 그 후에,
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低地帶인 ‘가버나움’(갈릴리 바다 접경도시)으로 이사를 하십니다(요 2, 12).
⑥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시자마자, 여러 날 머무시지도 않고 곧바로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서 공생애 첫 예루살렘행차를 하십니다(13-16). 

오늘 본문은, 예수님 공생애 첫 예루살렘행차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애의 본격적인 초기사역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심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비중이 더 크다, cf.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본문 요한복음 2, 13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말씀합니다. 본격적인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막이 올라가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비장한 예수님의 행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말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먼저, 조금 더 초기 예수님 사역의 행보를 알아보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⑦ 첫 번 예루살렘 방문기간에, 갑자기 등장한 혜성 같은 존재인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사람, 니고데모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⑧ 예루살렘 방문이 끝난 다음, 예수님은 유대지방에서 머무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⑨ 예루살렘과 유대지방 사역을 마치시고는, 어디로 가십니까? 북부지방인 갈릴리로 가십니다. 가시는 길 중간에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여 지나가시지 않습니까? 바로 거기서, 사마리아 수가 성, 야곱의 우물 가에서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던 ‘사마리아 女人’을 만나십니다(初期事件). 
⑩ 그 이후, 예수님은 다시 첫 번째 이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가나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두 번째 이적, 병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십니다.
⑪ 그때부터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십니다. 

[예수님 초기 공생애 사역의 핵심 중의 핵심 사건?]

좀 길다 싶을 정도로, 예수님의 초기사역의 행보를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차와 성전청결사건이, 예수님 초기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예수님 공생 초기사역은, 갈릴리지방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복음서를 시간과 공간적으로 통합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가장 마음 두셨던 사역은, 당시 유대종교의 본거지였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을 밝히시는 데 있었습니다.

만일, 오늘날 예수님께서 한국 땅에 오신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한국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다 아시는 이 땅의 바로 그 교회들이 아니겠습니까? 이 땅의 교회들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셔서, 이 땅의 교회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지? 아닌지? 예수님의 시각으로, 복음으로, 진단하시고 평가를 내리실 것입니다. 

인터넷 ‘아고라 광장’에 가면 종교토론방이 있습니다. 거기에, 오늘의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사회의 다양한 생각들이 표출되어 있습니다. 글쓴이들 대다수가 안티 기독교인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한국기독교를 가리켜서 ‘개독교’라고 폄하합니다. 또 개신교 성직자를 가리켜서 ‘먹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혹자는 한국교회를 가리켜서 예수 없는 예수교회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실 때는 어떻겠습니까?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God's Will)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는데, 오늘의 교회들이 과연 그렇습니까? 문제제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마 7, 21). 

본문 13을 보면, 범상치 않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에서 범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시지 않으신지요? 사도 요한은, 유월절을 무슨 유월절이라고 언급합니까?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출애굽기 12장에, 유월절의 유래가 나옵니다. 그 말씀을 유념해서 보십시오., 유월절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말씀합니다. 명하신 그 유월절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초기에 목격하신 유월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과 여호와의 유월절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라 할 때, “유대인”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적대자들을 가리킬 때 쓰인 말이, ‘유대인’입니다. (2) 유대인이라는 말은, 당시 유대종교의 당국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지키던 유월절은, 더 이상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바로 그 유대인들의 유월절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종교의 당국자들이었던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또 구약성경 열왕기하 23장에 나오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사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한 왕입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발견한 후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는데, 그 때 지킨 유월절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왕하 23, 21-23; 놀라운 말씀). 

“(요시야)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言約 冊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다음 말씀 중요합니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時代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북왕국 이스라엘)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남왕국 유다)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공생애 초기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終末的인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종말이 40여 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창세기 강해 때 말씀···, 하나님께서 보신 즉,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셨지요. 이 땅의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 ‘끝 날’ 「קץ, 케츠; 가장자리 테두리」, 120년 전에 하신 말씀).

예수님 보실 때,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유대종교의 율법주의, 世俗化, 경건의 모양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데만 관심을 가졌던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外飾은 이미 중병에 들어있었습니다. 공생애 초기 사역 때, 예수님께서 유대종교 당국자들에 의해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가장 먼저 청결케 하셨던 것입니다(예수님 공생애 성전 청결사건은 두 번).
예수님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있었던 두 번째 성전청결 때는, 유대종교 당국자들을 향해서 “만민이 기도하는 내 아버지의 집을, 너희는 强盜의 掘穴로 만드는도다” 하시면서 더 노골적으로 책망하셨습니다(마 21, 13).

유대당국자들의 이와 같은 타락상은,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그들은 성전을 장사 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권과 권력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유대인은 유월절에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 성전 세도 내어야 했습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에 의하면, 유월절 희생제사에 쓰일 짐승거래는 대제사장의 권한이었습니다. 독과점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유월절 순례자들이 희생 제물로 드릴 짐승을 끌고 오면, 제사의 적합성 유무를 검사한다는 빌미로, 까다로운 통관검사를 실시했습니다. 합격이 많았겠습니까? 불합격이 많았겠습니까? 불합격 사례가 非一非再했습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유월절 순례자들은, 아예 대제사장이 적합하다고 보장한 짐승을, 성전에 와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전 세를 내야 하는데, 성전 세는 두로의 동전(은화)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쓰던 로마 돈이나 이방나라의 돈은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전해야 했습니다. 환전 업무도, 산헤드린 당국이 직접 관리했습니다. 여기에는 대제사장은 물론 서기관과 장로들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환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환율폭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성전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종교의 타락상에 비하면 氷山의 一角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바로 그 타락한 유대종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때리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소와 양, 염소를 몰아내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다 가지고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곧바로 산헤드린 당국자들로부터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메시야 된 표적)을 보이겠느냐?” 예수님께서 일갈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참 성전인 나를 허물라. 너희가 나를 죽일 것이다는 말씀).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대종교 당국자들은 동문서답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성전 되신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던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반석 위에 더욱 든든하게 서야만 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거듭나고 또 거듭나야 합니다(日新又日新;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우리교회는, 유대당국자들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 성전 건축을 46년 동안이나 해 온 것을 자랑하는 교회 되지 말아야 합니다. 3일 만에 참 성전 된 자기 육체를 다시 일으키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분명하게 고백하는 교회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바리새적인 교권주의를 철저하게 버리십시다. 당회가 가장 앞장서서 교회와 교우들을 섬기십시다. 각 기관의 책임자, 남녀선교회 회장과 임원들은, 군림하거나 힘을 쓰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섬기는 자리입니다. 경력 쌓는 자리도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어찌 경력을 자랑하겠습니까? 傳統 자랑하지 맙시다. 낡은 가죽부대는, 새 포도와 같은 예수님의 복음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새 포도주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탄력이 좋고, 유연한 새 가죽부대에만 담겨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새 포도주와 부대가 둘이 다 保全됩니다. 

하나님 영광을 말하면서, 사람의 명예를 탐하는 교회 안에 뿌리박힌 因襲的인 慣行들, 이제는 과감하게 내어버리십시다. 회당의 상석을 좋아하는 일 더 이상 구하지 맙시다. 하나님만 섬기십시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다. 직분이나 직함에 연연하지 맙시다. 좀 더 부드러워지십시다.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제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추종하는 제자가 되십시다. 교회를 교회답게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 말씀에 날마다 順命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좋은 누룩’과 같은 교회로, 한국교회와 이 시대 가운데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순절을 앞두고 다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궤적을 추종하며, 우리믿음을 진단하고자 합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癌과 같은 靈的疾病들이 드러나게 하시고, 고침 받게 하시고, 새 생명이 약동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구원의 기쁨 회복되는 주의 백성과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