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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요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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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요 3:1~12)


신앙의 원리로 구분하자면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비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을 모른다. 먹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잘 먹고 잘 사는 게 성공이고 행복이다. 그런데 허무하다.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있다. 

둘째는 기독교 종교인이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다. 종교는 기독교인데, 확신은 없다. 천국은 가고 싶은데, 사는 것은 비 그리스도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셋째도 기독교인이다. 차이는 영에 속한 사람이다. 거듭난 기독교인이다. 이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간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사람인가?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 종교인. 

오늘 말씀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온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 같다. 어떤 사람인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다. 당시에 6000명 정도의 바리새인이 있었다고 한다. 매우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이다.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다. 당시 최고의 권력기관인 70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원이다. 상당한 권력자이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랍비이다. 당시 최고의 학문인 율법에 정통한 학자이다. 지성인이다. 
니고데모는 부자이다. 예수님 장례식 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이나 가지고 왔다. 상당한 부자이다. 존경받는 지도자이다. 굉장한 명예와 군력을 가졌다. 상당한 부자이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니고데모가 청년 예수가 행하는 표적을 보면서 신앙의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 종교인의 모습일 것이다. 교회는 다닌다. 예배도 참석한다. 성경도 가끔은 들춰본다. 봉사도 해 본다. 직분도 받았다. 그런데 뭔가 비어있음을 느낀다. 
기독교의 껍데기는 가지고 있는데,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중에도 이런 분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감사한 것은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신앙상담을 하려고 예수님께 온 것이다. 
우리 주변에 바리새인 같은 사람 중에도 마음이 열린 사람이 있다.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중에도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니고데모가 나중에는 변화된다. 예수님 장례식 때 앞장서서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낙심하지 마시라. 교회 안에, 셀 안에, 가족 안에 변하지 않는 기독교 종교인들이 있다. 낙심하지 마시라. 바리새인처럼 거부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포기하지 마시라. 
때가 되면 니고데모처럼 주님을 위해서 가장 앞장서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거듭남의 비밀을 알고 있는가?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왜 하필이면 밤에 찾아왔을까? 
어쩌면 동료 바리새인, 공회원들의 비난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 공회원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예수님을 거부했다. 배척했다.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법으로 제지했다. 
사람들 눈치 보느라 식당에서 식사기도 안하고 밥 먹지는 않는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혹시 성경책 감추고 오지는 않는가? 

좋게 보면, 낮에는 예수님이 바쁘시니까 좀 한가한 밤에 찾아왔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게 신앙상담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좋게 보자. 그런 점에서는 니고데모를 본받자. 

니고데모가 먼저 예수님께 고백한다. 2절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인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라고 말한다. 아직 ‘나’의 믿음은 아니다. 아직 나의 고백은 아닌 것이다. 
관심은 많은데 믿음의 고백은 못한다. 예수님을 인정은 하는데 아직 확신은 없다. 
아직은 믿음의 시작의 단계이다. 아직은 출발의 단계이다. 이것도 귀한 일이다. 
알파 참여하는 게스트 중에 이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예배 참석한 분 중에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말씀하신다. 신앙의 핵심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보통으로 말씀하실 때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강조하실 때는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진실로 라는 말씀을 하신다. 매우 강조하실 때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라고 ‘진실로’를 반복하신다. 

3절을 보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거듭남의 중요성 매우매우 강조하신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것이다. ”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이 어떻게 두 번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적인 지식으로는 대단한 지성인인데, 영적으로는 아주 무지하다. 세상지식으로는 영적지식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은 세상 지식이 많이 부족해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무식한 권사님의 박사님 전도법- 초등학교 안 나온 나도 아는 예수님을 아는데, 박사님이 그래 예수님도 모르시나? 그 박사님이 고민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고. 

어떻게 거듭나는가? 먼저 ‘거듭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거듭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노텐(anothen)이란 말이다. 
아노텐은 1)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새롭게. 2)다시- 두 번째로. 3)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듭난다는 말은 이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다시 근본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영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영적출생을 하는 것이다.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은 육을 낳지만, 성령은 영을 낳는다”(NIV). 육의 출생은 육의 출생으로 되고, 영의 출생은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느니라.” 

첫 번째 출생은 육체적 출생이다. 부모를 통해서 태어난다. 이 세상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다.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출생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는 출생이다. 전혀 비밀이 될 수 없다. 

거듭나는 두 번째 출생은 완전 비밀이다. 영적인 출생이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하게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 새롭게 태어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탄생이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탄생이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은 비밀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고전2:13-14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어떻게 거듭나는가? 

예수님이 다시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5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거듭남의 비밀을 밝혀 주신다. 거듭나는 일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물과 성령은 성령으로 거듭남을 강조하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요7:37-39). 

선행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종교생활 열심히 하면 거듭나는 것도 아니다. 성령님이 영을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남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첫 번째 출생도 내가 주체는 아니다. 내가 원해서 아들로 딸로 태어난 것 아니다. 부모가 낳아 주신 것이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 거듭나게 하신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성령님은 복음과 함께 거듭나게 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죽음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이 믿어지는 은혜를 주신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워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성령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게 하신다. 
엡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의 영을 다시 새롭게 살려주신다. 


거듭난 그리스도인 

거듭남은 신비한 일이다. 우리가 다 이해하기 어렵다. 다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람 부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 설명하진 못해도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안다. 

졸립기만 하던 설교가 어느 때부턴가 마음으로 들어온다. 찬양을 하는데 마음이 움직인다. 
성령님이 지금 내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계신 것이다. 거듭남의 시작이다. 

기도하고 싶어진다. 예배가 좋아진다. 성경을 읽으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고전1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마음의 소원이 달라진다. 욕심의 사람이 하나님의 소원을 품게 된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 때 새로운 생명의 욕구를 따라 행하라. 그럴 때 성장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이 분명하게 믿어진다. 고백할 수 있는 확신이 생긴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생겼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확신이 있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이 믿어진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이 분명하다. 틀림없이 거듭난 사람이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아니면 적당히 교회 다니고 있는 기독교 종교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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