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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으로 가는길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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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으로 가는길 (창 12:1~4)

 
우리 모두는 때때로 삶의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지금처럼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고통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이때에는 어디에 우리의 이 조그마한 육신을 피할 곳이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쉴만한 곳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에 위로 받을 곳이 없을까?  위로를 받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친구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후배를 찾고 선배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셔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다시 찾은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표현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보화 중에 보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탕자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모두가 일어나서 아버지의 품으로 바싹 다가가십시오.  모두 일어나서 아버지의 품으로 바싹 들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이 적용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는 강한 자가 살아남습니다.  힘있는 자가 살아 남습니다.  약한 자는 더 약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설 곳이 있습니다.  힘이 없는 자가 기댈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 하나님의 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 삶의 터전을 흔들고, 갖은 방법으로 나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잊지 마십시오.  나에게는 반석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에게는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에게는 산성이시요,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경제가 힘들고, 삶이 어렵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도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앞에서 잠잠하십시오.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다 망한 것처럼 떠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의 처한 환경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을 믿고 그분만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면서 그분이 이루어주실 놀라운 역사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믿음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조금 나아졌다고 호들갑떨고, 조금 어렵다고 다 망한 것처럼 떠들어댄다면 그 신앙은 냄비 신앙입니다.  냄비를 가스 불에 올리면 금방 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냄비를 내려놓으면 금방 식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깨달음만 붙들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인간의 깨달음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깨달음,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운동은 깨달음의 운동이 아닙니다.  지식의 운동도 아닙니다.  바른 신앙운동은 그 깨달음을 통한 행동운동입니다.  더 큰 깨달음, 더 큰 지식만을 사모하면 인생을 낭비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종교를 잘못 받는 유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민족이 얼마나 많습니까?  산밑에서 깨닫는다고, 길가에서 깨닫는다고, 구정물 가운데서 깨닫는다고 앉아 있습니다.  물론 깨달음도 귀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귀한 것은 행동을 낳아서입니다.  깨달음 속에 영원한 자유와 행복은 없습니다.  행동 속에서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깨달음으로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문제는 행동에서 나옵니다.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시작을 해야 합니다.  아무런 행동도 일어나지 않는 깨달음은 사람을 더 공허하게 만들뿐입니다.  아무런 행동도 일어나지 않는 깨달음은 인간 사회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다시 시작하고자하는 첫 걸음이 중요합니다.  그 첫 걸음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주님의 전을 찾아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로 바싹 가십시오.  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힘이 있습니다.  거기에 꿈이 있습니다.  거기에 새 인생이 있습니다.  거기에 살 길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한 크고 기이한 길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면서 육신이 병든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육신에 장애가 있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장애보다 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장애에는 보조기구도 있고, 치료기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관한 질병은 치료약이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에 관한 것은 아무 처방이 없습니다.
 
그 영혼과 그 마음과 그 심령과 우리의 생명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지금 여기 이곳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운행하십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우리의 병든 마음이 치유되기를 축복합니다.  상처받은 마음, 아픈 마음들이 다 치유되고 녹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살도록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길이 자주 가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가족들이 웃고 계셨던 것보다 더 많이 기뻐하시며 웃고 계시던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고 이후에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나를 통해서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힘든 세상 속에서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함을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관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이것이 관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라고 하는 관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축복의 통로가 되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의 전달자가 되셔야 합니다.  존경과 사랑의 눈으로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세상 사람들 속에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은 기적이 아닙니다.  축복은 변화의 열매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이 정말 현실이 살기 싫고 짜증이 나고 역겹거든 내가 변하면 됩니다.  싫으면 변해라!  세상은 '싫으면 떠나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싫으면 변해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싫으면 껍질을 벗으면 됩니다.  놀랍게도 일만년을 사는 나무가 있습니다.  일만년을 사는 나무는 어느 나무보다도 빨리 껍질을 벗는다고 합니다.  뱀들도 살기 위해서 껍질을 벗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껍질을 벗습니다.  인간의 이 피부도 껍질을 벗습니다.  다 벗습니다.  변화의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내 육체의 남은 때를 세상 사람들 속에서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십시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인생이 아니라 사랑과 온유와 기쁨이 가득한 존재가 되십시오.  내 눈앞에 보이는 자기 시대만 붙잡지 말고, 오고 오는 세대에 꿈을 주고 유익을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은혜로워야 됩니다.  그 말에 생기가 철철 넘쳐흘러야 됩니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결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어에는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자꾸 아름답게 하면 좋은 것이 창조됩니다.  언어에는 생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언어를 쓰면 생산적인 환경이 일어납니다.

어느 집에서 가훈을 이렇게 세웠다고 합니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고, 실패란 바느질 할 때나 쓰는 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이면 좋은 말을 하십시오.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환경이 좋아서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말을 하니까 환경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세워주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되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은 그가 하는 말도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그대로 신앙 고백이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내뱉는 모든 말들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대신 내 인생을 살아 줄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내 부모님도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지는 못합니다.  내 아내와 남편이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지도 못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단둘이 붙들고 이루어가야 할 대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을 붙들지 말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남편의 월급 통장을 보지 말고, 눈을 들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현실은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맞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의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은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희망을 바라봅니다.  모두가 불가능을 외칠 때에도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가능성을 보고 창조적인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가난과 굶주림과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 받은 사람들, 복 받은 가문들, 복 받은 백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꿈을 심어주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회를 꿈꾸십시오.  하나님의 기회를 담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강한 믿음이 강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저 그런 시시한 믿음은 사탄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사탄의 권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복을 주십니다.  한 사람의 실패 때문에 고난이 오듯이, 한 사람이 받은 복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복을 받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복을 오고 오는 세대에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바로 믿어야 합니다.  귀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바로 믿고, 귀하게 믿어서 세상 속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큰 은혜, 충만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적은 은혜보다는 큰 은혜가 좋고, 빈궁한 은혜보다는 충만한 은혜를 좋아합니다.  은혜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누려야합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야합니다.  은혜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라도록 은혜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합니다.  그 은혜의 씨앗은 바로 믿음입니다.  은혜는 믿음으로 자라고 믿음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은혜를 열매 맺게 합니다.  믿음이 은혜를 역사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은혜가 이루어지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물을 믿음이라는 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법칙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법칙이었습니다.  성경의 탁월한 선조들은 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믿음이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독특하고 탁월한 믿음의 법칙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그 믿음의 법칙에 자기 인생을 순종시켰습니다.  그 믿음의 법칙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의 법칙들을 삶에 철저하게 적용하십시오.  믿음 따로, 생활 따로인 따로 국밥이 되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더 믿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내 삶 속에서 철저하게 적용해 보십시오.
 
성경의 선조들은 모두가 믿음의 법칙을 이해하고 믿음의 법칙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찾으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을 따라 기적을 베풀어 주셨고, 사람을 치료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과 축복을 같은 위치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적인 재물이 많아도 그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그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셔서 성공한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이 강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꿈입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그 믿음을 통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꿈은 그의 삶에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행동하게 만듭니다.  그 꿈을 향해서 달려나가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귀한 믿음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도 믿음으로 이 세대와 다음 세대에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라고 한다면 당연히 아브라함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참으로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수많은 시련을 다 이기고 나서야 그는 축복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고, 창세기 13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이 큰 축복이 이루어져서 축복의 통로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대에 진정한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아브라함과 같은 모든 고난과 역경의 시련을 잘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축복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축복으로 가는 길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로, 축복으로 가는 길에는 떠나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받았을 때가 75세입니다.  그 나이에는 안정이 요구되는 때였지 결코 새로운 것을 꿈꿀 나이가 아닙니다.  이제는 조용히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더구나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그의 조상 때로부터 대를 이어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농토가 있었고, 집이 있었습니다.  그의 기업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그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살아 온 형제와 친척과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삶의 근간들을 다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네가 세상에서 의지하며 살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11장 8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강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버릴 것을 요구하고,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커다란 모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든 삶의 터전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이제는 그 의지와 신뢰의 대상을 하나님께로 옮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덩이를 믿고 살았습니다.  그의 곁에서 우산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주던 형제와 친척들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늘이 되어주던 이웃들과 더불어 아무 부족함을 모르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앙에는 때때로 갈등을 일으키게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갈등을 말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많은 갈등이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지금 바로 결단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새로운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브라함도 갈등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도 우리와 똑같은 성품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도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는 거룩한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결단을 내리고 광야로 떠나갑니다.  바로 그 결단의 순간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인생은 75세부터 시작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이전의 삶은 하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다는 것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떠나는 결단을 하는 순간 아브라함으로부터 새 민족, 꿈꾸는 민족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아브라함과 같이 떠나야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떠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는 14장 6절에서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사랑하는 여러분,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엑소더스, 애굽을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굽과 같이 패역한 세상, 소돔 고모라와 같이 음란한 세상에서 떠나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구습과 악습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고집대로 살아왔던 혈기와 육성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떠나는 결단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끊어야 할 것은 끊으십시오.  버릴 것은 버리십시오.  떠날 것은 떠나십시오.  내가 의지하는 물질을 버려야 합니다.  고집과 편견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교만과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명예와 권세를 의지하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내가 의지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쯤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인도자이시며, 내가 의지할 분이시며, 내 인생의 목표이자 소망임을 고백하며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들은 것을 실천합니다.  그들이 본 것을 행동에 옮깁니다.  아브라함이 행동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믿음의 법칙 가운데 중요한 것은 행동의 법칙입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연결되면 꿈꾸는 자가 되지만,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몽상가가 됩니다.  몽상가는 꿈쟁이가 아니라 말쟁이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말쟁이가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가슴에 품고 행동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꿈쟁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축복으로 가는 길에는 거룩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다같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에서 땅은 앞으로 가서 살 땅을 말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놀라운 비전을 주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네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할 것이다.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비전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루실 비전을 안고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것은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 속에서도 더 분명한 꿈을 다시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거룩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꿈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행동하는 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비전을 발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비전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꿈꾸는 행동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거룩한 꿈쟁이들이 만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와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을 향한 거룩한 꿈을 가지십시오.  내가 섬기는 내 교회를 세우고, 우리교회를 통해서 이 땅을 살릴 것이다는 거룩한 꿈을 가지십시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오면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예언을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저수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꿈이라고 하는 저수지만 갖고 있으면 아무리 힘든 가뭄이 와도 어렵지 않습니다.  
꿈은 캄캄한 밤에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북극성과 같습니다.  꿈은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안에서 다시 꿈을 붙드십시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그의 생활에 질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정상에 오르십시오.  정상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85세가 된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어디를 가든지 앞자리에 앉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자리는 대부분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함께 믿음의 정상을 향해서 올라갑시다.  믿음의 정상은 늘 비어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거룩한 꿈을 안고 믿음의 정상에 올라가서 이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한 번 해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우리교회에서 원도 없이 한도 없이 펼쳐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아브라함처럼 원없이 행하여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시대에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진정 여기에 믿음의 사람이 있었다고, 그 믿음의 사람 때문에 나도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간증이 터져 나오도록 멋지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눈을 크게 뜨십시오.  거룩한 꿈을 안고 멀리 바라보십시오.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드린다면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그 꿈을 우리 시대에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축복이 따라옵니다.  회사를 가면 그 회사가 잘 됩니다.  집안에 있으면 그 집이 잘 됩니다.  나라도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복을 받겠다고 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축복을 받아서 많은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내가 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도 복을 받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도 성공하고 당신도 성공하고, 나도 행복하고 당신도 행복합니다.  내 복을 다른 사람에게,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역사가 나를 통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희생의 고개가 있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희생의 고개를 넘어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꿈을 가슴에 안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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