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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세요, 하나님은 아직 진행중이십니다 (시 18:1~2, 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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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세요, 하나님은 아직 진행중이십니다 (시 18:1~2, 47~50)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시 18:47-50)

누구나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두고 보자!”라는 단어입니다. 지금 당장 해내고 싶은데 힘이 부친다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두고 보자”며 다음을 마음으로 벼를 때가 많습니다.

중국 무협소설을 보면 거의가 다 원수 갚는 줄거리인데 어려서 부모가 어떤 음모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합니다. 그때는 자식이 너무 어리고 힘이 없어서 대항을 못합니다. 그때 “두고 보자”며 죽을 힘을 다해 무예를 연마합니다. 장성하여 자신이 붙을 때 원수를 찾아 일망타진합니다. 시원스럽게 원수를 갚습니다.

‘두고 보자’라는 말은 ‘기다리라, 아직 내가 살아있다. 언젠가는 꼭 갚아주고 말리라’는 의미로서 언젠가 보복하고 말겠다는 협박이요 자기다짐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직 대항 할 힘이 안 되었을 때 흔히 내뱉는 선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은 영적 전쟁 중에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탄미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유혹하려 합니다. 시시때때로 사탄이 우리를 불행의 늪에 빠트리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뻔합니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접근을 하다가 안통하면 쓰디쓴 고통을 안깁니다.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합니다. 사업에 실패하게 합니다. 질병에 걸리게도 합니다. 모함을 받게 하기도 합니다. 핍박을 받게 합니다. 그때 주저앉거나 넘어지면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우리를 유혹하여 가지고 놀다가 멸망당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병들게 하고 패배하게 할 때에 외쳐야 할 말이 있습니다. 사탄을 떨게 하는 말입니다.

기다려라, 하나님은 아직도 안 끝내셨다!
(Be patient, God is not through with me yet)

시편 말씀만큼 연세가 드신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씀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며 구구절절이 ‘그렇습니다’를 외치며 동감합니다. 어쩌면 내 심정을 그렇게도 잘 묘사해 놓았는지 감복을 합니다. “이게 바로 나여!”하며 눈물을 훔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시 13:1, 4) 

가끔 어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시고는 그 한을 풀 수 없을 때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쏴 죽이고 싶다”는 분노를 내쏟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들을 한 두 번씩은 대개 겪습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볼 때입니다. 50대의 백인 여자 분과 그녀의 언니인 60대 후반의 할머니 자매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셨는지 지금까지도 그분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동생이 해군 군무요원으로 근무를 했는데 성품이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부대 사무실에서도 상관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직급 위의 여자가 얼마나 괴롭히는지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번은 제 사무실에 찾아와서 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퇴근길에 김목사님께 찾아온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5년여 동안 그 여자가 나를 괴롭히고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지 목사님께 여쭤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며 살고 있는데 왜 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무언가 나를 위로해 줄 분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우는 것은 미국의 백인 여자들이나 한국의 시골 여자들이나 같습니다. 눈물의 양도 같습니다. 울고 나면 눈 주변이 시커멓게 자욱이 남는 것도 같습니다. 이는 곧 사람의 심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같다는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시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괴로움을 당할 때 함께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고 계실 것입니다. 나도 두 아이를 기르는데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백인아이들에게 동양아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집에 와서 울면 속이 상했습니다. 그 아이들보다도 더 마음이 아파서 꼭 끌어안아주곤 했습니다. 그 아이 몰래 눈물을 흘릴 만큼 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딸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속이 상하실 것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 편에 있습니다. 그 여자가 시기와 질투심이 강하지만 게을러서 당신만큼 일하기는 싫으니 당신을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여자에게 달려가서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호통을 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순간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일은 더 나쁜 방향으로 갈지 모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습니다.” 따뜻하게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주말에 우리 여선교회원들을 동원해서 맛있는 한국음식과 전통 공예품을 들고 집으로 찾아가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매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I am not alone)를 수없이 반복하며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괴로움과 고통가운데 있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하나님이 즉각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실망도 됩니다. 그때 사탄이 접근해 와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때 외칠 말이 있습니다. 

“기다려라. 하나님은 아직도 안 끝내셨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항변했던 시편기자들이 나중에는 이렇게 외치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후에 눈물로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시 18:47-48)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보복해주시는 의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포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셔서 영원한 평안을 주십니다. 욥이 세 친구에게 시달립니다. 위로해 준답시고 찾아와서 괴롭히는 세 친구를 욥은 어떻게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욥 30:20-21)

잔혹하게 하시고 힘있는 손으로 대적한다는 말을 보면 욥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무응답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뒤엎으셨습니다. 욥의 손을 들어 승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꾸짖습니다.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한 사실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억울함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괴롭히는 자를 향하여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다려라. 아직 나는 끝내지 않았다. 반드시 갚아 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수 1:5) 


지금 너무 억울합니까? 
“기다려라. 하나님은 아직도 끝내지 않으셨다” 외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외침은 세 가지 경우에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탄을 향해 외치는 말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때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늘 기억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듀크대학(Duke University)의 윌리암 윌리몬 박사(Dr. william willimon)가 있습니다. 여섯 살 난 아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거듭했답니다. 한번, 두 번 주의를 주다가 한번만 더하면 매를 맞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음날 아이는 같은 잘못을 또 범했습니다. 약속대로 아빠는 매를 들었습니다.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매를 치려할 때에 아이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빠는 나를 때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몸입니다.”(You don't touch me. Because I was baptized in the name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the Holy Spirit)

울면서 소리 지르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윌리몬 박사는 한편으로는 우습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 보였답니다. 그때 마음속에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답니다. “내가 사탄 앞에 섰을 때 사탄에게 이렇게 호통 칠 수 있어야 하겠다.”

암이 당신을 무너뜨리려 합니까? 
“기다려라. 하나님은 아직도 내게 끝내지 않으셨다. 반드시 너를 멸하여주시리라” 
딸이 당신을 실망시키고 있습니까? 
“기다리자, 하나님은 아직도 나와 함께 일을 끝내지 않으셨다”고 외치십시오. 그러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 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셨도다.…” (시 18:47-48) 

둘째로 우리 이웃이 고통당할 때 꼭 들려 줄 음성입니다.

“기다리시오. 아직 하나님은 당신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섣불리 지금 너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항복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You are mine).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1-2)

지난번 최진실양이 목을 매고 자살하기 전에 누군가가 다가가서 “기다리세요. 아직도 하나님은 당신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거예요.” 소리쳤다면 그녀에게는 위대한 생애가 다시 열렸을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최진실양의 고백을 듣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외로움입니다. 고독입니다. 영혼을 함께 붙들어 줄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는 많지만 영혼까지 함께 붙들어 줄 친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홍수 속에서 먹을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족 중에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늦기 전에 다가가서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잖아요. 하나님은 아직도 당신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들려주세요. 그러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과정 중에 있습니다.”며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나 자신에게 외치는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기다리자. 아직도 주님은 나와 끝내지 않으셨다”고 자신에게 외쳐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나는 결코 여기서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직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 이렇게 외치면 사탄은 끝내 내 앞에 무릎 꿇고 맙니다. 

“나는 한낱 가정주부에 불과하잖아. 처량한 판매원이야. 선생에 불과해. 낮은 평사원에 불과해. 농사나 짓는 농부에 불과해” 이렇게 자신을 “한낱, 그냥 그런 사람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지 마십시오. “나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조엘 오스틴은 “하루에 5분만 떼서 자기 삶을 향해 축복을 선포하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먼저 바꾸어 주셨습니다. “열국의 아버지”와 “여왕”(사라)을 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매일 “열국의 아버님”, “여왕이여” 라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은 내면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미 100세에 가까운 노인인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해 “기다리자. 하나님은 아직 내게서 일을 끝마치지 않으셨다. 반드시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만드시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아직 나를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완성품이 되는 날, 두 손 높이 들고 시편기자들처럼 “할렐루야”를 외칠 것입니다. 

어느 젊은 아낙네가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술주정뱅이 알콜중독자요, 두 자식은 가출을 일삼았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이 많은 권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권사님, 하나님은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드셨지요?”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그때 나이 많은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보게 젊은 양반, 하나님은 아직도 당신을 완성시키지 않으셨다네(God has not make you yet).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네.”(He is still making you)하며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직도 만들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정 중”(in progress)에 있습니다. 아직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그래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 하나님의 손이 안 미친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다윗 임금처럼 두 손 번쩍 들고 외칠 날이 올 것입니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 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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