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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 (고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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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고전 1:1~9)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일컬어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사 42:5).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시편 150편 6절에 이르기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호흡만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때를 따라 땅위에 비를 내려주셔서 곡식이 자라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 차별하지 않으시고 햇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데(마 5:45), 유명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인 존 칼빈은 이 같은 하나님의 배려를 일컬어 ‘일반은총’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5장 19절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일반은총에 해당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음악에 재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체육에 재능을 주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또 다른 재능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내려주시는 은총이 일반은총입니다. 사람들이 저 잘난 맛에 살지만, 알고 보면 각 사람이 가진 잘난 점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천부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잘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불신앙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것은 만민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일반은총에 관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칼빈이 ‘특별은총’이라고 불렀던 은혜에 관해서입니다. 이 은총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만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불러 성도로 삼아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일컬어 “성도”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문자적인 의미는 ‘거룩한 무리’이지만, 성경적인 의미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보면 지상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시민이지만 영적으로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이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20절에 이르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은 고사하고 영주권만 가져도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미국이 선진국이고 그만큼 살기 좋은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이 그렇게 좋다면, 천국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미국을 천국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습니다. 지상의 나라는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죄와 악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죄가 없고 악인도 없으며, 의와 공평으로 다스리는 곳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씻음 받은 의인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 소속이 하늘에 있는 천국 시민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디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인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자주 외치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도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로써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것 역시 그들이 영원한 천국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가운데는 천국 보다는 지상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면서 자나 깨나 이 땅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지만, 영생의 약속을 받은 성도들이 천국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낙원에 이끌려 갔다 온 신비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항상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염세주의자처럼 현실을 무시하였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한편, 우리는 천국 시민 된 것이 우리 자신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성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독생자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사실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들에 의해서 입증이 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주님의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받은 은혜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지옥 백성이었던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된 것이 구원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에 이르기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전에는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불화하고 원수 된 상태였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단체와 공동체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받은 공동체는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체나 공동체보다도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약점을 지닌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도 완전하지 못하며 여러 가지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들이요, 천국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은 세상을 등지고 불신 이웃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고, 불신 이웃들을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한 영혼이라도 더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사를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헬라어로 은사를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소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사들은 세상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은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은사는 구원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6장 23절에 보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미 가장 큰 은사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기억할 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노아 시대에 대홍수로 온 인류가 멸망당할 때,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주 안에 있었던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은 구원이 우리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곧 은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로고스‘인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구변이란 복음의 진리를 가리키며, 모든 지식은 복음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복음의 진리 외에도 여러 분야의 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철학적인 진리도 있고, 과학적인 진리도 있습니다. 이 같은 진리를 아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는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복음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복음을 듣고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알려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신 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힘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꾸준히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뜻을 알게 해 주십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은사라고 하신 대로, 은사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6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8절 이하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8)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자랑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고전 12: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각양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믿음의 형제들을 돕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사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의 중요성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3장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아가페 곧 이타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이 아가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만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보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았지만, 그 사랑을 깨닫는 만큼만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신 대로, 우리가 목숨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도 형제들을 진실되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의 은사를 병 고치는 은사보다, 예언의 은사보다, 아니 그 어떤 은사보다 위대한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종류의 은사를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모든 필요한 은사들을 하나님께 받아 모든 선한 일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주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지켜주십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예수님의 강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의 강림은 이 죄악 세상의 종말과 더불어 성도들의 최종적인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싸움이 아무리 치열할지라도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의 영적 싸움도 마치게 됩니다. 마귀와 모든 악령들이 영원한 불 못에 던짐 받게 되고, 이 세상 나라들도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의인들은 영생에, 악인들은 영벌에 처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그 날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열 처녀의 비유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유에 나오는,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열 처녀는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더디 왔듯이 주님의 강림이 더디자 신자들이 안일한 신앙상태로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현실 생활에 직면한 신자들에게 피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러나 마냥 졸고 잘 수만은 없습니다. 언제 주님께서 강림하실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주님을 영접할 믿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졸면서도 자주 자주 눈을 부비고 정신을 차리고는 등불을 점검하고 기름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났을 때 지체 없이 일어나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도 준비하지 않고 마냥 잠만 잤습니다. 그리하여 밤중에 신랑이 왔을 때 영접하러 나갈 수 없었으며,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성실하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신자들을 가리키고, 미련한 처녀들은 세상일에 몰두해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타성에 젖어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다 보니 있던 믿음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 결과, 정작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느 편에 속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변함없이 열심을 내지 못하고 때로 침체 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시선을 돌려 세상을 쳐다 볼 때도 있습니다. 세상일에 대한 염려로 믿음이 약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은 배가 풍랑을 만나 좌우로 기울지만 다시금 복원력을 발휘해서 원상태를 회복하는 것과 같이 다시금 성도 본연의 자세를 회복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주의 강림을 기다리기 때문에 혹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겼다가도 금방 정신을 차립니다.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압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받을 상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하신 대로, 주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의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보혈을 흘려 우리를 사셨으므로 마귀에게 빼앗기실 리가 만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모든 은사를 풍성하게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필요한 은사를 구해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의 강림이 심히 가까워진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영적으로 깨어서 주의 강림을 대망하심으로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영접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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