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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 (시 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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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 (시 127:1~2) 


101세의 박옥랑(朴玉郞) 할머니는 광주시내 13평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자손들의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로 누워 있기 때문입니다. 박씨 할머니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39년 중학교 교편을 잡던 그녀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 등에 업혀 있던 네 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을 때부터입니다. 그 뒤로 딸은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1953년, 30년 교사생활을 마감하고 딸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 한자까지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와 문학서도 읽어주었습니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그녀는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기억력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박씨 할머니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 라며 웃습니다.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그녀는 정부에서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아껴 매달 몇 만원씩이라도 저축을 합니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딸 조씨는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 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박씨 할머니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오는 유상엽씨는 말합니다. "할머니는 딸을 돌보아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아요". 그녀는 모녀를 볼 때마다 위대하고 지고한 모정을 실감하게 된다고 합니다. 

네 살배기 딸이 장애가 되어 68세가 되었고, 어머니의 연세 101세, 아픔의 강물, 한 맺힌 세월의 바다, 눈물로 얼룩진 모녀 사랑, 자식 위해 늙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 차마 저 하늘로 떠나지 못하고 눈감지 못하는 아픔을 생각하게 됩니다. 101세 된 박씨 할머니가 딸을 50년 간 돌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 스토리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미의 사랑을 받는 자의 삶도 이와 같은 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의 삶이야 어찌 복되지 아니하겠습니까?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노래하는 시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하나님과 인간을 대비시켜 인간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때만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대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력이 모두 허사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언약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아는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들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은 그 은혜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는,


첫째로 세우는 수고가 헛되지 아니합니다 

이솝우화(The Complete Fables by Aesop)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욕심 많은 여우가 어느 날 포도원 주위를 맴돌다가 탐스럽게 익은 포도 열매를 봅니다. 어떻게 하든 안으로 들어가려고 방법을 모색하다 작은 구멍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멍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사흘을 굶어 자기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들어갔습니다. 먹고 싶은 만큼 실컷 포식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흘을 굶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먹기 위해서 굶고, 먹었기 때문에 굶어야 하는 모습이 우화 속의 여우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는다면 그 세움이 헛되며 제자리걸음만 답습할 뿐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기의 '집' 은 히브리어로 '바이트' 인데, 인간의 재능, 노력, 실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수고한다' 는 '하말'은 무거움, 지치게 하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헛되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솨우' 로 '거짓되다' 의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간섭 속에서 살아야만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스스로 인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간섭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집은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벨탑의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의 역사는 하나님 없이 건설된 역사, 하나님 없이 건설된 문화, 하나님 없이 건설된 국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종말을 보여 줍니다. 바벨탑같이 허물어지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말씀에 비쳐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출발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대로 판단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의 실정(失政)은 모두 그 때 나온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것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무너짐이 없습니다. 허사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키는 수고가 헛되지 아니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높이가 8.5m, 폭이 밑에는 6.5m, 위에는 5.7m가 되는 성을 2,700km 쌓은 규모입니다. 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까지 합하면 실제로 6,400km나 된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진시왕이 중국을 통일한 후 북쪽에서 내려오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서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시왕 때는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을 쌓은 것이 오늘날 규모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지구의 건축물이 바로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만리장성을 쌓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들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만리장성을 쌓는 일에 동원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일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적군의 침공을 받았지만 성문이 한번도 부서지지 않았고, 문짝 하나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만리장성이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적들이 공격하면서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문을 열게 한 후 유유히 걸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성곽은 견고하게 세워 놓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솔로몬 당시 전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전쟁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사례를 연구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거둔 승전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는 것이 그가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솔로몬 당시 나라가 매우 번영했습니다. 솔로몬의 영화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영화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지킨다해도 하나님이 지키지 아니하시면 그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그러기에 생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건강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자녀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사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지키는 일이 허사가 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일하는 수고가 헛되지 아니합니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타이타닉(Titanic)호를 건져 올리는 것이 좋으냐, 그대로 두는 것이 좋으냐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타이타닉 호는 사람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었습니다. 아주 튼튼했으며 초호화 고급 여객선이었습니다. 선체의 길이가 269m, 무게가 46,328톤이었습니다. 배 밑창은 이중으로 했고, 배를 열두 칸으로 막고 칸마다 칸막이를 했기에 불침선(不沈船) 즉 침몰하지 않는 배였습니다. 배를 선전할 때도 '하나님도 가라앉힐 수 없는 배' 라는 선전문구를 썼습니다. 

그러나 1912년 4월 10일 2,224명의 승객을 태우고 영국에서 뉴욕을 향해 첫 항해를 떠났다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구명정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1,513명이나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인간의 기술로 아무리 완벽하게 일하며 수고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해도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현재 어려움을 겪는 재벌들이 많습니다. 경제정책이 바뀌는 시대의 변화에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를 일으키려고 불철주야 노력을 한 창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수고는 내용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이와 같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밑 터진 항아리에 물 붓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수고의 떡을 먹음도 헛된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수고하며 일하되 하나님께 그 행사를 맡겨야 합니다. 주도권을 드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북전쟁이 끝나 승리를 자축하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링컨(A. Lincoln)이 문쪽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스토우 부인(H. B. Stowe)이 오십니다." 자그마한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스토우 부인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이라는 소설로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작가였습니다.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을 결심하게 된 것도 변호사 시절, 스토우 부인이 쓴 책을 읽고 나서였다고 합니다. 링컨은 부인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이 작은 여성이 위대한 전쟁을 치르도록 일깨워준 저자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말합니다. "스토우 부인이 맞습니까? 나는 위대한 소설을 쓴 부인의 용모가 헤라클레스처럼 강인할 줄 알았습니다." 그때 스토우 부인이 대답합니다.“그 소설을 쓴 것은 제가 아닙니다. 노예 제도를 보고 분노하신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사람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사람은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하도록 하는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되어 그 어떤 세움도, 지킴도, 일함도 허사가 되지 않는 복된 성도들의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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