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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주자의 자세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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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자의 자세 (고전 9:24~27) 

 
오늘 이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싸움터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성공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 자체가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니 뒤처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뛰라고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밤낮 안 가리고 그저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뿐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칼라하리 사막에는 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짐승들이 풀이 있는 곳을 찾아서 늘 이동한다고 합니다. 거기 사는 짐승들 가운데 스피링 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양은 여럿이 함께 이동하는데 무리 가운데 앞에 서야만 겨우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앞에 서려고 앞다투어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풀을 뜯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무조건 앞에 서려고 달려가다가 그만 한꺼번에 낭떠러지나 강에 뛰어들어 떼죽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라도...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경주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선 목표가 분명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26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향방 없는 것이란 말은 목표가 없거나 목표가 불확실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가 마치 목표가 없는 것처럼 불안정하게 달리는 모양을 말합니다. 어디를 향해서 달려야 하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달린다면 그것은 아니 달리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쟁기질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쟁기질을 했지만 밭고랑이 바르지 못하고 구불구불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그 소를 푯대로 삼아 쟁기질을 했던 것입니다. 그 소는 한곳에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소를 푯대로 삼았으니 쟁기질이 바르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저 나무를 푯대로 삼아 갈아라."
그 말씀대로 했더니 아주 바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모두 다 유동적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주님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으로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것 같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들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렇습니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24절 하반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상을 받기 위해서 달음질하는 것은 산책하는 것처럼 해서는 아니 됩니다.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달리는 것은 엄청나게 힘이 들 것입니다. 숨이 가쁠 것입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 달음질하는 것은 이웃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습니다. 인생을 함부로 낭비해서는 아니 됩니다. 허송세월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바람이 부는 대로 살 것 같으면 아주 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 것 같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수 없습니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에릭은 영국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습니다. 그는 100미터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100미터 경주가 주일에 치러진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그 경주를 포기했습니다. 올림픽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금메달을 따는 대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 올림픽 위원회 임원들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영국 국민들도 분개해서 그를 '옹졸한 신앙인', '배신자'라고 마구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예배당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할 수 없이 100미터 경주에는 그의 동료인 헤럴드가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400미터 경주에 출전했습니다. 그때 미국 선수가 그의 손에 쪽지를 쥐여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그는 그 쪽지를 쥐고 달려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처음 200미터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달렸고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욱 힘껏 달렸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렸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할 때 여러 가지로 방해를 합니다. 신앙생활에 전념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물질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명예나 권세 또는 세상이 주는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그 어떤 유혹도 다 물리치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을지라도 끝까지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절제해야 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25절 상반 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기기를 다투는 자란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라는 단어는 원래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이 사용했던 전문 용어입니다. 그들은 보통 열 달 동안 고된 훈련을 받고 난 후 경기장에 나갔다고 합니다. 먼저 경기 규칙에 절대복종할 것을 서약하고 그리고 코치의 강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식사, 취침, 휴식, 오락, 그 밖의 모든 일에 관해서 엄격하게 통제를 받았습니다. 매도 많이 맞아야 했다고 합니다. 극기와 절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역도나 유도, 권투 선수들은 몸무게를 조절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사재혁 선수도 라이벌인 중국 선수와 같은 중량을 들었지만, 그 선수보다 몸무게가 400그램 정도 가벼워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먹는 것을 절제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금메달을 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도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정말 훈련하기 싫었습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만큼 힘든 과정을 극복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경주를 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향방 없는 것 같이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푯대로 삼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 경주를 하려면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내야 합니다.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잘 달릴 것 같으면 썩을 면류관이 아니고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그 옛날 올림픽 경기의 승자는 월계관을 썼습니다. 월계관은 얼마 후 마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게 달림으로 말미암아 그 옛날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8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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