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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기름부음, 부흥 (행 10:30~35, 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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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부음, 부흥 (행 10:30~35, 44~46)


E. Mote라는 사람은 양철 함석공이었다. 망치를 가지고 함석을 두드릴 때마다 인생을 한탄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은혜를 받고 마음에 부흥이 왔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때부터 찬송하며 함석을 두드렸다. 그의 사업은 너무나 크게 번창하였다. 그는 모든 재물을 주께 드리고 교회를 건축하였다. 마침내 그는 신앙의 행복을 전하기 위해 목회자가 되었다. 그가 지은 노래가 찬송가 488장으로 알려진 “이 몸의 소망 무엔가”이다. 

성령의 기름부어주심이 임하면 인생이 바뀐다. 원종수, 그는 대전 고교 시절 하위 성적의 학생이었다.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부어주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방언을 사모하다가 성령을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 지혜의 은사가 임하여 1등하는 학생이 되었다. 깡패 김익두가 은혜를 받고 목사 김익두가 되었다. 백낙준, 김환란, 길선주, 이용도, 이강산 등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다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 고넬료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의 장교로서 그는 가이사랴에 주둔하는 군인이었다. 어느 날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의 삶의 변화는 그의 가정에 찾아온 부흥 때문이었다. 어떻게 고넬료와 그의 가정이 변화되었는가?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므로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드러내는 부흥의 불이 임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성령의 부어주심, 그 부흥의 연유를 알아보자.  

1. 성령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은 부흥의 시작은 기도였다. (행10:29)

행10:29을 보면 고넬료의 집에 오게 된 베드로가 질문을 던졌다.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행10:30에서 고넬료가 대답한다. “나 혼자 이 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그렇다. 기도할 때 고넬료는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이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제를 기억하였다고 하였다. 베드로라는 사도를 초청하게 된 이유는 기도의 응답이었다. 부흥의 시작은 뭐니뭐니해도 기도가 그 왕도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부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웨슬리 듀엘의 책 「부흥의 불길」을 보면 전적으로 부흥은 기도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1904년의 부흥도 보면 이반 로버츠의 끈질긴 기도가 시작이었고, 호주는 19명의 2,000개의 기도 모임이 있었기에 1902년 부흥이 왔다. 인도의 묵티의 부흥이 1905년에 일어난 것도 그 동안 라마바이의 기도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899년쯤 온밤을 지새우며 기도한 존 하이드 목사와 에이미카 마이클의 계속되는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1907년의 한국의 부흥도 역시 웨일즈와 인도의 부흥을 듣게 된 선교사들이 중보기도의 모임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1908년 중국의 북부인 심양, 만주의 부흥은 고 포드의 기도의 갈망이 있었다. 1915년에 일어난 남아프리카의 부흥도 리즈 하윌즈 부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섬나라로 알려진 마다가스카르의 부흥도 로우린즈와 라벨론나하리라는 사람의 기도와 중보기도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와 성령의 부어주심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은 기도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게 한다. 이번 성회에 성령 부어주심의 부흥을 경험하고 더 큰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 24시간 기도 행진이 일어났으면 한다.
  

2.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은 부흥의 시작은 사람에 연계되어 있다. (행10:28)

고넬료는 기도 중의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청했다면 베드로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고넬료에게 왔다. 

행10:28을 보라.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죄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노라.” 

그렇다. 편견의 사람, 전통에 사로잡힌 사람이 부흥을 시작할 수 없다. 온전히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사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성령 부어주심이 일어난다. 불은 불을 낳는다.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변화는 변화를 일어나게 한다. 성령을 받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은 전달자가 되고 사람은 일하는 자가 된다. 사람이 부흥을 조롱하고 성령 부어주심을 알지 못하고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부흥을 말할 수 없다. 그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고 결국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구름일 뿐이다. 사람이 확실하게 성령의 사람이 되어있어야 한다.

역사의 방향을 바꾼 성령의 임하심을 보라. 요한 웨슬리 형제가 성령 충만을 받고 감리교 운동을 일으켰고 우리에게 익숙한 조나단 에드워드, 조지 휘필드, 윌리암 케리, 디엘 무디, 찰스피니, 빌리 그레함 등 그들이 먼저 성령 부어주심을 체험하고 일했던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베드로가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고넬료의 가정에 변화가 일어났듯이 시대마다 쓰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이었다. 부흥이 시작되는 것은 성령의 사람으로 된다. 그래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잡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낫게 되기 때문이다. 

내 가정, 내 심령의 쓰임 받음을 원한다면 부흥이 임하기를 원하라. 


3.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은 부흥의 시작은 메시지이다. (행10:38)

고넬료의 집에서 외친 베드로의 메시지는 행10:34~43까지이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저를 믿는 자는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한다. 행10:38 “하나님이 그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 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여기서 베드로의 메시지는 예수도 성령과 능력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착한 일을 행하시는 전도 활동도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시는 축사와 치유의 활동도 기름 부으시는 성령 세례로 인해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도하고 마귀의 얽어매는 공격으로부터 참 자유를 누리려면 당연히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있는 삶, 능력있는 성도로 살아가기, 그것은 성령을 받는데 있다는 메시지이다.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메시지가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하지만 성령님을 선포하지 않는 메시지가 된다면 사람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대망하는 메시지가 되어야 성령은 강력하게 일하신다.

말씀이 중요하다. 부흥이 일어나려면 말씀이 지식과 세상 정보 알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성령 부어주심이 일어나려면 성령의 설교가 되어야 한다. 두드려 부수고 깨뜨리고 회개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오고 삶을 새롭게 결단하고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기도로 반죽한 설교, 묵상으로 구어낸 설교, 위로부터 만나처럼 내리시는 기름 부으심의 설교가 되어야 한다.
  

4.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은 부흥의 시작은 들음에서 온다. (행10:44)

행10:44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고넬료의 가족이 성령을 받게 된 것은 안수할 때가 아니었다. 행19:6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를 만나 성령 받지 못한 것을 보고 안수를 하게 된다. 그때 안수를 통해 열두 사람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안수의 중요성을 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게 되고 안수가 도의 초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히6:1~2) 그러나 성령의 부어주심은 안수례가 없이 말씀을 듣기만 해도 일어난다.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메시지가 무엇이냐도 중요하지만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마음이 돌짝밭 같고 길가밭 같고 가시떨기밭 같으면 말씀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부흥은 잘 듣는 들음에서 시작된다.

부흥회를 다녀보면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지역마다 신앙적 색깔이 있다. 그런데 말씀을 사모하며 듣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지역이 있다. 거기에는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다. 옥토밭은 처음부터가 다르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말씀을 잘 지키어 행하게 한다. 부흥의 불이 꺼지지 않고 그런 지역과 교회는 복음이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부흥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정말 삼일 동안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에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들으라. 잘 듣는 것이 성령 부어주심을 받는 부흥의 시작이다. 


5.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은 부흥의 시작은 철저한 준비에서 온다. (행10:24, 33)

고넬료를 보라.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고 난 후 고넬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내지 않았다. 행10:24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고넬료는 은혜 받을 준비를 하였다. 가족들은 물론이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기다렸다. 나 혼자만의 집회가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은혜를 받으려는 이 자세는 정말 준비된 모습이다. 아니 사람들의 외적 모임과 함께 그 준비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행10:33을 보라.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으로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마음이 기울여짐, 마음이 하나님에게 드려짐, 이것이 진정한 준비다. 부흥은 마음을 바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에 하나님 목전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은혜 받을 준비로 하면 역사는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부흥이 필요하다. 윤리의 기초가 무너지고 죄악이 관영한 시대이기에 거룩한 땅,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기 위해 더욱 부흥을 갈망한다. 부흥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이 황무한 땅에 불을 던지시고 기름을 부으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위기와 혼돈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부흥을 주셔야 한다.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고 살인, 불의, 무정함, 배반과 음해가 가득한 이 탐욕의 땅에 부흥이 와야 한다. 교도소가 비고 죄수가 줄고 경찰이 할 일이 없어서 4시간 근무하고 집으로 오고 도처에서 바르게 사는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고넬료가 성도로 변화된 성령의 부어주심이 교회와 가정에 강력하게 일어나야 한다. 바로 지금이다. 내가 은혜 받고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는 내 심령의 부흥이 지금 와야 한다. 그 복된 시작은 바로 기도로부터 온다. 불의 사람의 설교, 기름 부음이 담긴 말씀, 귀를 연 듣기에 달려 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준비하는 모습에 달려 있다. 

한 시대 속에 부흥의 이야기에 우리 교회가 포함되게 하자. 여러분들의 삶과 나의 삶이 성령 부어주심을 받아 부흥 사역에 세움을 받자. 이번 부흥회에 기대하며 준비된 모습으로 나아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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