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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요 7: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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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요 7:37~44)


오늘 본문 첫 마디가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지난 주간 설 명절을 잘 지냈습니까?   명절이 마쳐가는 날 보통 우리들의 형편은 명절 준비와 손님 대접, 인사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 됩니다.  우리는 명절 부담에서 자유롭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명절 연휴의 피로와 꽉 막힌 도로에서 장기간 운전해야 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주부들은 허리가 휘도록 힘들게 설 음식 준비하고 손님 대접하느라 온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지친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의 마지막날 큰 날에 사람들 속에 서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절에 일주일 간 집 밖에 임시로 초막을 치고 조상들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며 살았던 시절을 회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생활에서 함께 하셨음을 감사 드리며 나뭇가지와 잎으로 엮은 초막에서 생활하며 일주일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즐거운 잔치를 열었습니다. 7일간의 잔치가 끝나는 다음 날 제8일은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집회로 모이는 큰 날이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의 명절을 마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또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전에 백성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그날 명절의 제8일째 되는 날은 조상들을 애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도중에 어떻게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는가 돌아보며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명절을 마무리하는 거룩한 날, 명절 끝 날 곧 큰 날이었습니다(레위기 23장).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다시 먼 길을 여행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내년 이맘때면 또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반복되는 명절을 지낼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언제까지 이 사람들과 함께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마지막 초막절이 될 수 있는 그날에 예수께서 그 백성들 마음 속에 초막절의 참 뜻과 영생의 소망을 그들 마음 속에 선물로 주고픈 마음이 간절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시기를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하삽니다. 왜 갑자기 목 마른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실까요?   명절 날 예루살렘 성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실 물이 부족했을까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마음으로 무료급식을 하는 것처럼 성전 광장에 무료 음료수 가판대라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었을까요?   초막절에 성전에서 진행되는 제사의식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으면 오늘 예수께서 외친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 중에 제사장들이 실로암 샘물을 떠다가 제단에 부어 제단 아래로 물이 흘러 넘치게 하는 의식을 합니다. 이런 의식의 배경에는 과거 조상들이 광야에서 반석에서 솟아나온 생수를 마시며 생명을 보존했던 시절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얻은 샘물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로 반석을 명하여 바위가 깨져 그 속에서 터져 나온 생수였습니다. 물이 없는 광야 여행은 죽음입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닌 200여 만 명의 무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은 몇 사람이 마시면 금방 말라버리는 웅덩이 물이 아닙니다. 깊은 샘의 근원으로부터 쉼 없이 터져 나오는 생수였습니다.   

프랑스의 알프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생수 에비앙은 칼슘과 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 좋고 노폐물 배출 효과가 뛰어나 소화기관을 강화하는데 좋다고 하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생수 중의 하나입니다. 애굽을 떠난 히브리인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반석에서 솟아난 물을 마신 것이 이런 종류의 샘물이 아니었을까요?  목이 말라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물이 생명수가 되어 광야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살게 하였습니다.   

초막절에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의 또 하나의 배경은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 제단에서 흘러나온 물이 문지방을 통해 흘러나가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을 이루고 이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환상을 보았던 일에 있습니다(에스겔 47장).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강 좌우에 심히 많은 나무들이 각종 과실을 맺고 있으며, 강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물들이 되살아나고 바다에 이르니 바닷물이 되살아나고 거기 물고기들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에서 열린 각종 실과들은 맛이 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치료하는 약 재료가 될 것이라는 환상을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세상에 임하실 것과 메시야가 이루실 생명 회복에 대한 새 시대의 새 생활에 관한 환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땅과 바다가 회복이 되고 생명이 되살아나는 구원의 능력은 성전 제단으로부터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흘러가는 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환상은 곧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의미함이며 온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생명을 회복하게 될 것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제사장들이 초막절에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단에 물을 붓는 초막절의 마지막 큰 날에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초막절의 참 주인으로서 진리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고 생명을 보존한 것처럼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영생의 물을 마시라고 초청하십니다. 옛 조상들은 광야의 반석에서 나온 물로 갈증난 목을 축이었지만 이제 너희는 영생하는 물을 주신 그에게로 나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그 물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와서 물을 마시라는 예수님의 초청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갖는 목마름은 어떤 목마름일까요? 지난 주일 산상수훈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일 수 있습니다. 죄 앞에 맥 없이 무너지고 마는 연약한 인생임을 고백하고 그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는 목마름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가 고민하는 죄의 종류와 그 정도가 어떠함을 불문하고 거기서 해방되어 자유를 갈망하는 자는 누구나 목마른 사람입니다. 

이런 목마름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환영입니다. 목마르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자격조건이 없고 차별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탐욕에 대한 갈증이든, 야망에 대한 갈증이든, 쾌락에 대한 갈증이든, 지식에 대한 갈증이든,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지친 마음에서 나온 갈증이든, 아무튼 목말라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은 다 오라고 부르십니다. 스펼전 목사님이 말씀한 것처럼, 목마름 자체가 악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목마름이 은혜의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인 정욕으로 충족되기 바라는 극단적인 죄의 표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어떤 선함을 보시고 이런 초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한 대가로 주시겠다는 물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값없이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강도나 매춘부도 다 와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죄의 중함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이 초청에 전혀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십니다.  이 물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얻지 못하는 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참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에게로 와야만 얻는 물입니다.  그러므로 목이 말라 우물가로 찾아 나오는 것은 영생에 대한 관심이라면, 그 물을 퍼서 마시는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 물을 마시기 위하여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라든지 멋진 잔을 준비해 오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마시라는 것은 그냥 와서 주께서 주시는 물을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정말 목마른 사람은 물을 보면 몸을 굽혀 벌컥벌컥 마십니다. 혹시 부르트고 문드러진 더러운 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이 강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입이 더럽다고 하여 주님의 샘물을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물로 인하여 그 오염된 입술이 정결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소망의 샘입니다. 구원의 샘입니다(이사야 12장).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시는 사랑이 가득 찬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지방을 방문하면서 보았던 야곱의 샘은 깊은 샘물이라 두레박이 없으면 퍼 올리지 못하는 물입니다.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쉬면서 물 길러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요한복음 4장).  마침 수가 성 여인이 왔을 때 물 한 그릇을 청하셨고 여인은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는 행동이 마땅치 않아 퉁명스럽게 대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여인에게 네가 만일 너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샘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어 나에게 주겠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야곱의 우물에서 얻은 물을 마시면 또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니 그 사람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귀가 번쩍 뜨이고 흥분되어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그 물을 요구했습니다. 주님과의 우물가 대화를 통해 영원히 목 마르지 않게 하는 그 물이 곧 자기 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여인은 즉시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들어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영생하는 물을 소개하였습니다. 드디어 그 여인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두레박이 있어야 길을 수 있듯 주께서 주시는 영생의 물은 믿음이 아니고는 받을 수 없는 샘물입니다. 거저 주시는 물이지만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야 받을 수 있고, 엎드려 퍼 마셔야만 시원한 물입니다. 혹시 손을 내밀 힘도 없고 무릎을 꿇을 힘도 없다면 누워 하늘을 향한 채로 입을 열기만 하면 쏟아지는 은혜의 샘물을 받아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생의 물을 마시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그 물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 함이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즈음에 성령을 약속하시고 누구든지 나에게로 오는 자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비뚤어진 우리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끌어갈 수도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예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이기적인 내 중심의 삶은 아무리 마시고 또 마시지만 갈급함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멋진 옷을 입으며 높은 자리에서 권세와 영광을 누려도 거기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기를 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모자라고 주린 마음뿐입니다.  그런 것들이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알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주장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에 알지 못했던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소유가 많고 적음에 관계 없고, 좋고 나쁜 환경에 관계 없이 내 마음에 차고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생수의 강이 내 마음과 삶에서 흘러 넘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이 물을 마시기 바랍니다.

생수를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합니다. 그가 과연 선지자가 아닌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닌가?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갈릴리에서 어찌 그리스도가 나오겠느냐? 하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물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손을 내밀어 그 물을 떠 마시기 거부하고 주저합니다. 정말 그가 나의 만족과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주저합니다. 주저 말고 물가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값 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오늘 성찬식은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떡과 잔을 대하는 교인들은 이미 세례를 통해 자신이 주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오직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심을 인정하며 주께 나온 사람들입니다. 갈증 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실 영생하는 음료를 받아 마시며 살기 위하여 주 앞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성령의 사람입니다. 광야의 반석이 깨어질 거기서 생수가 나왔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서 깨어질 때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오늘 주님의 성찬에 동참하는 교우 여러분은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주께서 공급하시는 그 생명에 동참하는 복을 누리고 감사로 찬양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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