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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4) (신 3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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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4) (신 32:10~12)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의 벽을 수리하기 위해 뜯었습니다. 일본 집의 벽은 소위<오가베>라 하여 중앙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대고 그 양쪽에 진흙을 발라 만든 것으로 항상 속이 비어있다고합니다. 그런데 벽을 뜯다보니 벽 속에 한 마리의 도마뱀이 갇혀 있더라는 겁니다. 그것도 보통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벽 밖에서 안으로 박은 긴 못에 꼬리가 물려 꼼짝도 못하고 갇혀 있더라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도마뱀이 가엾기도 하거니와 호기심이 생겨 그 못을 조사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못은 십년 전 그 집을 처음 지을 때 박은 못이었습니다. 캄캄한 벽 속에서 십년 동안을 무얼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에선가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입에는 먹이가 잔뜩 물려 있었습니다. 무려 십년 동안을 먹이를 물어다 살린 것입니다. 변함없는 진실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참으로 각박하고 사랑이 메말라갑니다. 

사람은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람을 경멸하고 심지어는 살인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며칠 전에 부녀자들을 7명이나 납치해서 죽인[강호순]이라는 희대의 살인범이 또 잡히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여자들만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섬뜩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처럼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주로 거짓말에 능하고 충동적이며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장애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인간존재 이하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흔히 하는 말입니다만“인간도 아니라.”는 말처럼 비참하고 가슴 아픈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몇 가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뭐냐 하면 중요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에 의미가 있고 삶에 뜻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삽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사랑을 빼앗기게 되고 그때 아이들이 그걸 견디지 못해서 병도 나고 혹은 이상 성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내가 받던 사랑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무조건 사랑을 받아야 살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독신녀와 결혼한 여자 중에 누가 더 건강하고 누가 더 오래 살 것 같습니까? 아이들한테도 시달리지 않고 남편에게도 시달리지 않고 오직 자유롭게 훨훨 자기 마음대로 사는 독신여자가 건강할 것 같지만 통계학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독신여성이 병이 많고 단명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란 미워할 사람이 있든 사랑할 사람이 있든 뭐 하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존재의 가장 기본은 사랑하며 살고 사랑 받으며 사는데서 자기존재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고 삶의 보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값을 지불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값이 얼마입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실 만큼의 값입니다. 그리고 그 지불된 대가에 내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의미를 알고 그 중요성을 알고 사는 사람을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존재의 두 번째는 안정성입니다. 여기서 안정성이란 단순히 동물적인 의식주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안한 마음을 원합니다. 화목하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원수 맺고는 살수 없는 게 인간입니다. 불안정한 마음으로는 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늘 남을 죽여야겠다고 독을 품고 있으면 자기가 먼저 죽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마음으로는 인간존재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평안을 원하고 평안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평안을 추구하고 평안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것이 곧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인간존재를 느끼는 세 번째는 소속감입니다. 끈끈한 정을 가지고 가정이라고 하는 연대 속에 살고 친구와 더불어 직장과 더불어 나라와 더불어 민족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만 살겠다는 고독은 죕니다. 사람이 고독을 느끼는 순간 그 존재는 벌써 떨어지고 있고 타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사람은 절대로 고독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정말 인간존재를 의식한다면 고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혼자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분명한 소속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가족이 있고, 내가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할 이웃이 있으며,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 그분이 계십니다. 이 소속감이 나를 세워가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라고 하는 존재의식 속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 만들어진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요, 우리의 인생도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 되어져 가고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일꾼 되는 것이 중요하고 더욱 더 인정받는 일꾼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엔 많은 시간도 걸리고 많은 공부도 필요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430년이라는 숫자는 중요합니다. 물론 나이를430살 먹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고 노예의 손자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수십 대를 지나면서 노예로 태어났고 노예로 성장했고 노예로 살았을 뿐입니다. 노예 생활이 아주 체질화되고 문화화 되어 버린 불쌍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기적입니다. 

이렇게 기적으로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 갖다 놓은 다음에 이제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훈련을 다 시켰고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이런 불만 저런 불평을 늘어놓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훈련시키셨고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그 총체적 의미를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말해주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출19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3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수리 날개라고 하는 상징적 용어로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과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모세가 사십년 동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지도자로 살다가 나이가 많아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죽기 직전에 사십년의 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그 백성들에게 명확하게 심어주는 이야기입니다. 

독수리는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하면 어느 정도 먹이를 줘서 날 때쯤 되면 새끼를 벼랑에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죽지 않으려고 퍼덕거립니다. 그러나 아직 날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박차고 올라 올 기운이 없습니다. 그냥 그 높은데서 땅바닥으로 추락합니다. 어미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땅에 닿기 직전에 휙 내려와서 등에 업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둥지에다 조금 쉬게 했다가 또 합니다. 거의 하루 종일 며칠 동안 이 짓을 계속합니다. 새끼가 혼자서 날수 있을 때까지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날개를 강하게 해서 혼자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치“이렇게 사는 게 독수리다. 독수리로 태어났다고 다 독수리가 아니다. 훈련을 통해서 견뎌야 진짜 독수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듯 어미 독수리는 진짜 독수리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새끼에게는 고통을 가합니다. 그러나 독수리에게는 이것이 사랑입니다. 버둥거리며 살기 위해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지 어느 정도에 날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내려와서 그를 등에 업고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절대 땅에 부딪쳐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보호하기 위하여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혼자서 날아오를 때까지 말입니다. 모세는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여 은혜 베푸시는 모습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처음에는 바늘 구멍만한 게 뚫립니다. 그 작은 구멍에서 번데기가 변해서 나비가 되어 나오는데 하루 종일 걸립니다. 몇 시간 걸려서 조금씩 고생하면서 나옵니다. 날개 하나가 나오고 퍼덕거리다가 또 한쪽이 나오고 퍼덕거리다가 또 몸이 안 나와서 퍼덕거리고 고생을 하면서 겨우 나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게 안쓰러워서 가위로 구멍을 크게 뚫어 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구멍이 크니까 나비가 쑥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나온 나비는 날지를 못합니다. 빙빙 돌다가 그대로 죽어 버립니다. 그 나비가 작은 구멍으로 나오면서 몸부림을 칠 때 번데기 몸에 있던 영양이 날개로 건너가면서 날개가 힘을 얻습니다. 그 좁은 공간으로 나오느라고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온몸이 운동을해서 힘을 얻어가지고 나와야 그 다음에 날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로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일꾼 삼으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계획을 알고이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있게 하신 목적과 의미를 알고 나니 내 존재의 중요성을 알겠습니다. 나는 샬롬의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과 사랑을 가지고 나누며 살아야 할 귀한 존재임을 알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일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인정받는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오늘도 독수리날개 같은 은혜로 때로는 훈련시키시며, 때로는 인도하시며 이끌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이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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