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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유기체적 통치(1) (엡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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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유기체적 통치(1) (엡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 

오늘 본문말씀은 가정의 질서를 언급하는 가운데 가정의 머리가 남편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되어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하듯이 질서가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께 전적으로 복종해야하는 공동체이며, 진정한 복종이 없는 교회는 사실상 그리스도 예수께 반항하는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Ⅰ.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과 교회의 유기체적 통치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의 머리시기 때문에 교회는 몸으로서의 생명을 누리기도, 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분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 통치는 마치 왕이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것처럼 통치권을 가지고 온 나라를 뜻대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 속에서만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의 권위가 필요한 것처럼 그 권위는 그리스도이십니다. 

A. 권위의 원천: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성 안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여 성취하신 구속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권위의 원천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구약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이 교회는 이 교회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니 곧 둘 사이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갱신하시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두 방편을 마련하셨습니다. 말씀과 성례입니다.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고 성례에 의해 통치하심으로 머리로서의 권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과 섬김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확신하고, 눈에 보이는 말씀인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의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부활하는 세례 의식을 통해, 우리가 죄인인 것,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하심, 그리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게 됩니다. 

또한 성찬은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함께 나누고 피를 함께 나누는 예식인데 우리가 죄인인 것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것을 기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사는 것임을 확증함으로써 교회의 기반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회가 교회일 수 있도록 영속적인 법을 성경을 통해 제시해주시고, 교회에 직원을 세우셨으니 사도와 복음전도자들과 선지자들과, 목사와 교사와 장로들을 세우셨습니다. 이후에 그 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세우신 것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보시고 그 제도에 신적인 권위를 덧입히심으로 주님의 교회의 질서를 세우고 통치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시간에도 교회 안에 임재하시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말씀의 사역을 통해 경륜을 펼치십니다. 

또 그 질서를 따라 살고 복종할 수 있도록 진리의 빛과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권위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말씀과 뜻이야 말로 교회의 존립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구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께 온전히 복종하게 되겠습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책인 성경입니다. 교회는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계시된 믿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분명한 선포를 되풀이하고 더욱 풍성하게 증거함으로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합니다. 즉 그 계시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를 의식하고 복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관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교회에 성령의 은혜를 베푸심으로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십니다. 안다고 모두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혜를 통해 감화에 의해 예전에 꺾을 수 없는 나를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시며, 성령의 은혜 안에서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것은 대개 인격적인 설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객관적인 말씀의 빛을 아는 지식의 깊이에 그 빛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힘이 얼마나 그에게 역사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때로 보이는 이 세상에 굴복하여 죽음을 당할지라도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생명을 분여 받고 그분이 하셨을 일을 뒤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통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시는 원리적인 통치입니다. 실제 가시적 통치의 주권은 교회의 조직을 통하여 행사됩니다. 개혁신학자들은 이것에 대해 권위의 원천은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리스도는 이러한 권위와 통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각 교회에 권위를 주셨다고 밝히고 단언합니다. 


B. 통치의 원천: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이 몸이지만, 성도는 보이는 교회 안에서 한 마음이 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교회에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통치를 위해 주신 권세는 포괄적이고 완전한 위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한 근거와 그리스도 세우신 신적인 질서 안에서 부여되는, 위임적인 통치의 실행의 권위입니다. 

일차적으로 이 권한은 각 교회 전체의 구원받은 참다운 교회의 회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것을 직접적이 아니라 대의적인 방식으로 행사하는데 이것이 바로 회중교회와 장로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회의 정치적 방식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명백한 제도를 통해 사람을 세움으로써 조직을 갖추고 바로 그런 통치의 질서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를 개교회 안에서 실행해 가는 것이므로 이러한 통치는 목회자와 장로를 통해서 실행되고 교회에 세우신 집사를 비롯한 일꾼들을 통해 봉사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임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유기체적인 몸으로 복종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합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가 모든 권위의 원천이며, 둘째는 그리스도가 그 권위를 실행하심에 있어서 당신의 법에 따라 세운 교회의 제도와 일꾼을 통해 권위를 실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구분은 되지만 나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라면 보이는 교회에 순종하며 그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진리에 입각해서 세워진 참된 교리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뜻언뜻 다가오는 사적인 판단과 취향에 따라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할지라도 그의 삶에는 질서가 없고 교회 생활 속에서는 분별없는 삶이 되어 은혜를 따라 진리의 빛 아래 사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의 아집과 상식, 자기의 사상으로 뭉쳐진 가운데 이따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념을 친 것이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신앙생활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끊임없이 복종하고 그 몸의 일부임을 생각하며, 이 질서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복음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간결하게 말씀드리자면 좋은 신앙생활은 좋은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교회에서 주님을 따라 산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교회에 세 가지 권세를 주셨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교리권입니다. 


Ⅱ. 교리권 

하나님은 교회에 교리권을 주셨습니다. 이 교리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를 잘 가르치고, 잘못된 것들은 교회 안에서 유포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며 가로막는 일을 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성경을 본래의 계시의 형태대로 잘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순수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보호하고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흔히 성경 이외에 아무 것도 접하지 못하게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반드시 이단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올바로 해석될 때 뿜어져 나오는 진리의 빛의 위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대로 성경을 해석한 책이 바르지 못하다면 성경을 보는 성도들의 눈을 현저하게 어둡고 굽게 만들어 복음적인 유익을 훼손할 것이니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이 해석된 결과인 서적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믿는 바를 바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설복해도 편견을 따라 믿고 생활한다면 눈물을 머금고 누룩과 같이 번지지 않도록 끊어내야 하는데 이것도 교회에 허락하신 교리의 권세입니다. 만일 교회에 어떠한 절차도 없이 아무나 세례를 준다면 구원의 교리는 아무렇게나 행사되는 세례식을 통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엄격한 세례의 자격과 조건, 절차들은 복음의 참된 의미, 성도의 행복,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값이 얼마나 크고, 그분으로부터 받는 무한한 은혜를 성도들의 눈으로 보게 해줍니다. 

성찬을 통해 엄격하게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살을 취하고 피를 나누는 일에 참여 하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교회의 소중함과 몸의 지체로서의 행복, 탁월한 상태에 대한 경외함과,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갈망을 신장에게 심어줍니다. 교회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이용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신자는 교회의 일부이며 지체로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필요에 따라 교회를 이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현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보이는 교회와의 건강한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르지 못한 관계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이 항상 외적인 재난이나 질병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것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부터 자신이 성도의 아름다운 교통을 누리지 못하는 것,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비추는 끊임없는 진리의 빛이 지성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은혜의 감화가 자신에게 그쳐 단지 본성으로만 행하는 불쌍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커다란 심판의 나타남임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예수를 머리로 하나님의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주님의 질서 안에서 통치를 받아들이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교회는 가정과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하여, 그리스도 예수와의 언약 안에서 성도들과 진리의 말씀을 먹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함께 예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 없이 살지 못하는 만큼 그 진리에 또 싫증을 내기 때문에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리의 맛을 알게 하고 깨닫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신앙의 고백을 작성하여, 잘못된 가치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자기 스스로 무엇을 믿는지 명확하게 하고 무엇이 진리이고 진리가 아는지 바른 인식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권세를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권세는 세속의 권세와는 다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영적인 것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정한 번영을 이루어야 합니다. 


Ⅲ. 교회의 번영과 말씀의 부흥 

교회의 진정한 번영은 말씀의 부흥입니다. 성경과 신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지난 세대의 유산들을 잘 발굴하고, 그것을 토대로 성경을 새롭게 연구하여 더 풍성하게 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일이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영적인 교회를 바라보고 달려왔다면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도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도도하게 흐르는 진리의 강물에 목이 마른 사람들은 와서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만나에 불평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할 것입니다. 오히려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대로 교회의 번영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야말로 모든 성도와 목회자의 최고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세월이 많이 흘러도 항상 당신의 교회를 순순한 말씀으로 통치하시고, 순수한 성령의 역사로 다스리시며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성도는 이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보이는 교회를 통해 세워진 질서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성 안에 있는 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전념해야 합니다. 이 질서는 진리와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질서를 아름답게 여기고 복종할 때 우리는 그분의 진리에 감격하게 되고 성도로 부름 받아 교회에 접붙여진 것에 무한히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성으로 탐구하고 마음을 다해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사랑해서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라고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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