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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화위복(轉禍爲福) (창 41:56 ~ 창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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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힘들지라도 (창 41:56 ~ 창 42:5)


해마다 이맘때면 미국에서는 슈퍼볼이라 부르는 미식축구 결승전이 열립니다.  그 열기가 대단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경기가 진행되면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도 저녁예배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슈퍼볼은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암표 값과 엄청난 광고 수익은 경기 자체보다 더 많은 화제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최악의 경제 한파로 예전 같지 못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관람권의 거래가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개최 도시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던 슈퍼볼 특수도 이젠 없다고 합니다.  시내 호텔에는 빈 방이 넘치고 레스토랑도 한산하다고 합니다.  취재진도 평소보다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슈퍼볼을 전후로 대기업들이 주최하거나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파티가 대거 취소된 상황입니다.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지만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기침체가 한국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젠 경기침체가 피부로 와 닿는 상황입니다.  한국은행 총재가 금년 경제는 마이너스성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점점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젠 서비스는 고사하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는 IMF 이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처럼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몹시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힘들지라도 이겨야 합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 그것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시대에도 살기가 어려웠던 때,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갔는지, 그 때에 그들은 어떤 믿음으로 살았는지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피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본문은 지난주와 같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꿈으로 문을 시작되는 요셉의 이야기는 형들의 시기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 드디어 총리가 됩니다.  총리가 되었을 때 요셉은 경제정책을 잘해서 애굽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럴 즈음에 근동지방에 혹독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가나안은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당시 기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56절과 5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당시 세상은 먹을 양식이 없었고,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맥없이 죽습니다.  최악의 경제상황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런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때,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믿음의 눈으로 다른 곳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행동으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아들들을 보냅니다.  한마디로 피할 길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 믿음의 사람 야곱은 피할 길을 보았습니다.  온 지면에 혹독한 기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예비하셨고, 요셉이 통치하는 애굽을 피할 길로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극적으로 야곱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갔고, 당시의 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잘 이겨냈던 것입니다.

어려운 때에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갖고 피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운 때에 반드시 피할 길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어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당할 즈음에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래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은 극복하고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분명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피할 길이 있고, 감당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힘들게 할지라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소중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솟아날’이란 말은 ‘소가 나올’이라는 두 단어가 음운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풀이합니다.  이 말을 한자로는 천붕우출유혈(天崩牛出有穴)이라고 말합니다.  곧 ‘하늘이 무너져도 소가 나올 구멍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정약용이란 학자가 ‘천붕우출’(天崩牛出)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천붕우출은 아무리 곤경에 처한 상황에도 벗어날 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컬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기축년(己丑年) 소띠의 해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소띠의 해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그것은 희망과 회복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 피할 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려운 때에 믿음으로 그 길을 찾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좋은 일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에서 기근을 당한 것은 분명 개인과 가족에게 무거운 짐이요,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 일이 야곱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는 출발이었습니다.  그것이 본문을 넘어 계속되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합니다.  야곱은 기근의 때에 피할 길을 찾아 믿음으로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제 요셉을 만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렸지만 총리가 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극적인 상봉이후에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것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룹니다.  그리고 이제는 야곱이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옵니다.  당시 아무리 기근이 심해도 가나안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야곱은 결단을 내리고 내려갑니다.  그 이유는 오직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함이고, 모두 더불어 살기 위함입니다.  야곱에게 요셉은 어떤 아들입니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소중한 아들입니다.  라헬이 난산 끝에 죽은 뒤에 더 사랑하고 애착을 가졌던 아들입니다.  야곱의 노년에 낳은 아들이기에 누구보다도 사랑스런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채색 옷을 입히고, 늘 아버지 옆에 있게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로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았지만, 야곱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야곱은 살 소망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제 아픔이 잊을 만 할 때 요셉이 살았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단숨에 애굽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기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것은 좋은 일이 시작이요, 출발이었습니다.  성경은 본문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지금의 시련과 아픔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근과 고통은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쩌면 좋은 일의 징조입니다.  이제부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일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에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기근을 통해 이것을 심어줍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요셉이 그렇습니다.  꿈을 꾸고 요셉은 바로 꿈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인생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애굽에 팔려간 것도 힘든 일이었고, 감옥에 갇힌 것은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고백한 것처럼 팔려간 것이 좋은 일에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원망과 불평 없이 주어진 모든 현실을 수용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이런 좋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랍비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리자 랍비는 지낼 곳을 찾았습니다.  마침 헛간 하나를 발견하고 책을 읽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 등을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자는 동안 여우가 개를 물어 죽였습니다.  또 사자가 나귀까지도 물어 죽였습니다.  해가 뜨자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고 허탈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가까운 마을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정황을 살펴보니 전날 밤 도둑떼가 마을을 습격하여 주민들을 살해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때 랍비는 깨달음을 갖고 말합니다.  '만일 바람에 등이 꺼지지 않았다면 나는 도둑에게 발견되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만일 개가 여우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면 짖어대어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만일 나귀가 사자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면 소란을 피워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진 것을 모두 잃음으로써 나의 소중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최악은 때때로 최고와 통하는 법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이란 말이 있습니다.  재앙과 환란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는 그런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니 그렇게 됩니다.  처음에는 시련이지만 마지막은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전화위복은 가장 성경적인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기근으로 시작하여 좋은 일로 결말을 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본문의 결론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세우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생각대로 되는 일입니다.  결국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분명 시작은 기근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요셉을 만나는 것이 끝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의 결말입니다.  이것을 더 넓고, 크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기근을 피하기 위해 야곱과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거기에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올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서 죽고, 요셉과 형제들도 모두 죽습니다. 그렇게 4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도 이렇게 긴 세월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흐른 뒤 성경의 이야기는 드디어 출애굽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출애굽은 단순히 민족의 대이동과 가나안의 입성만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중심에서 출애굽은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 바로 ‘기근’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기근을 시작으로 그것이 좋은 일로 이어지고, 결국 하나님의 큰 뜻이 완성됨을 성경은 알려줍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믿음의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설령 좋지 않은 것이든 크게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고통과 시련 속에는 더 선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보고 또 보아도 고통이 믿는 자를 비껴가지 않습니다.  인간 삶에 고통이 있고, 믿는 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통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통이 오면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그 속에는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위기가 오면 세상 사람들은 극복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어려움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요?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분명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편저자의 고백 속에서 찾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결코 무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려움이라고 해서 다 버릴 것만 있지도 않습니다.  분명 고난은 유익이 있습니다.  어떤 유익일까요?  바로 주의 율례를 배우는 유익입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하나님, 아픔이 없으면 찾지 않는 예배, 시련이 없으면 생각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힘든 때에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유익입니다.  

일본의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가 있습니다.  빙점이란 소설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육체의 고통 속에서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하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도 없다.” 

지금 힘들고 어려울 때, 눈물 나고 서러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모든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수가 없습니다.  아니 아프기에 참 인간이 되어갑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바르게 사는 길을 찾아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유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많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피할 길이 있습니다.  이제 이것은 좋은 일의 시작으로 아십시오.  그리고 나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더 많이 하나님 찾고,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풍랑 인연하여서 오히려 더 빨리 소원의 항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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