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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말을 들을지니라 (신 1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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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을지니라 (신 18:15~22)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시는 가운데 두 주간의 걸친 라오스와 캄보디아 두 나라 동계단기선교팀의 사역 은혜 중에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라오스는 금년이 처음이었지만, 캄보디아는 3년째 계속해서 다녀왔습니다. 캄보디아는 3년 전, 선교지 개척 차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를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캄보디아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선교에 참여하신 분들과 배후에서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한 것은, 선교지마다 그 땅에 우리보다 앞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지마다 우리와 같은 훌륭한 예배당 건물은 아니지만, 선교지에 세워진 롱웽 마을센터, 벙레앙 청소년 센터, 깜뽕스푸 선교센터나 뜨라인정 고아원 등에서 매 주일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롱웽 마을은, 주민들의 70% 이상이 예수 믿는 ‘예수마을’을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지인 캄보디아의 신생 교회와 이제는 세계선교 중심교회 중 하나가 된 한국교회를 보면서, 서로 다른 양상이지만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 과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1) 선교지에,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전문 말씀 사역자가 하루 속히 세워져야겠다는 가슴이 타는 과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2) 세계선교의 중심교회가 된 한국교회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간의 세겜 언약처럼 “이제는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응답하는 교회, 예수님을 추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본문 신명기 18, 15-22 말씀은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과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

우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오경을 ‘토라’라고 부릅니다. 토라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길, ‘하나님의 가르침’을 토라라고 말합니다(두 가지).

(1) ‘시내산 토라’입니다(출19장-민10,10까지; 출애굽 직후인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약 1년 동안 머무른 곳, 11개월 5일). 

(2) ‘모압 평지 토라’가 있습니다(신 12-26장). 이 토라는 잘 아시는 신명기 말씀이라고도 합니다. 아시는 대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있었던 정탐꾼 사건으로 거기서 약 38년을 방황하는 세월을 보냅니다. 결국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이집트에서 나온 20세 이상 제 1세대는 다 죽게 됩니다(38년 동안).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20세 이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제2세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제 2세대로 구성된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 토라」를 들은 대상들입니다. 「모압 평지 토라」는 흔히 신명기라 하기도 하는데, 신명기 12-26장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 기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모세로부터 모압 평지 토라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38년 전 ‘시내산 토라’를 받았던 출애굽 1세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의 불순종 당시 20세 이하였던 사람들이고, 광야에서 태어난 제2세대들입니다. 그렇다면 ‘모압 평지 토라’ 속에는 자연적으로 무엇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까? 제2세대들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곡한 마음, 기대가 담겨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마음과 기대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1.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그들의 형제 중에서 일으키시겠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을 보십시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선지자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 1).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처럼 하나님은 인류 역사 내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본문 15절과 18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8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계십니까? 출애굽 제1세대들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과 제2세대들입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그들 중에서 일으키시고,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 말씀하겠다 하십니다. 이 말씀을 주신 때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요단강을 건너기 두 달 열흘 전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긍휼입니다. 기대하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사랑, 긍휼, 기대, 축복을 누구를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그들 형제 중에서 세우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놀라운 방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개신교 선교역사는 1884년 의사 알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다양한 선교를 하셨습니다. 의료선교, 학원선교 등 많은 일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선교 한 가지는, 선교사님들이 한국인 목사를 배출하였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이 직접 말씀을 가르칠 수도 있고,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인 말씀 사역자와 목사를 길러내어서 그들이 한국인들을 위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목사 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 일곱 분은 모두 선교사님들이 세운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들입니다(23년 만의 일). 

물론 그 이전에도, 북 감리교회에서는 1901년에 김창식(金昌植), 김기범(金基範) 두 사람을 「執事 牧師」로 임직하여, 입교 예식과 결혼식 거행권을 부여한 일이 있고, 1904년에 남 감리교에서는 김흥순(金興順) 씨에게 전도사 認許狀을 주어서, 남 감리교 최초로 한국인 교역자로 세워 일하게 했습니다.

한국인 지도자를 세운 일들은, 초기 한국교회 역사에 대단히 중요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죽은 이후, 400년 만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우신 자가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모세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레위 가족의 한 남자와 여자를 택하셨습니다. 당시는 아들이 태어나면 다 죽이는 때입니다. 그런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모세의 부모로 ‘모세의 준수함’을 보게 하셨습니다. 갈대상자를 엮어 모세를 넣고, 역청과 나무진을 바르고는 나일 강에 띄워 아이를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지요, 마치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일 강에 나왔습니다. 갈대 상자에 담긴 아이, 모세를 발견하고는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키웁니다. 유모로, 모세의 生母를 불러다가 젖을 먹여 키우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모세를 세우셨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형제 중에서 모세와 같이 선지자를 일으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누구에게요, 광야 2세대들에게 말입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캄보디아는 이제 막 선교가 시작된 나라입니다. 선교 역사가 20년도 채 되지 못합니다.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그 땅에도 그 땅 사람들을 위하여, 그 땅의 형제들 중에서, 신실한 말씀 사역자들을 세우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방식입니다. 

한아봉사회 프놈펜기독교사회봉사관 총무로 일하시는 ‘록 짠시’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Pol Pot 공산정권 당시 가족이 모두 희생 된 분입니다. 아버지가 장군이셨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이 희생되고 혈혈단신으로 동생과 살아남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답니다. 그 분이 선교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브티’라는 분인데 전도사로 사역합니다. 캄보디아의 엘리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캄보디아 외무부에 공채로 합격하였지만,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태국에 있는 선교사들이 세운 대학교 Payap대학교(파이얍)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캄보디아 교회 역사상 M. Div.를 마친 첫 인물입니다. 

2002년부터 프놈펜 도심 벙레앙 청소년센터를 운영하면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컴퓨터 교육, 복음을 전하고, 주일에는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로 모이는 사역에 전념하고 있습니다(이미 세례도 40명).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하나님 말씀 사역자인 셈이지요. 브티 전도사님과 같은 말씀사역자들이 더 많이 일어나야, 캄보디아 교회와 캄보디아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본문은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마음, 기대를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2. 18하반절과 19 말씀입니다.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들을지니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본문을 유의해서 보면, 하나님의 두 가지 기대가 드러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기와 같은 형제들 중에서 선지자를 세우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면, 우리가 그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8, 19말씀 보십시오.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뜨거운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경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18, 9-14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왜 순종해야만 하는가 잘 드러납니다.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약속의 땅 가나안 원주민들의 삶을 본받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합니다. 그 땅에는,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하는 자, 무당, 진언자, 신접한 자, 박수, 초혼자들이 들끓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선지자가 필요했고,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요즘도 농촌에 가면, 농민들에게 배포하는 각종 달력들을 보면 한 달에, 6일 정도가 ‘이사 가는 날’(손 없는 날)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무속신앙이지요. 그런 날 이사 가면 좋다고들 합니다. 이사 비용만 더 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날에 이사 갈 이유가 도무지 없습니다. 예배하는 주일만 아니면, 어느 날(손 있든 없든) 이사하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정치인들 점쟁이 참 좋아합니다. 청년들, 시집 장가갈 때 점쟁이 찾아갑니다. 요즘은 아예, 사주카페라는 것도 유행합니다. 오래 전 이야깁니다. 한국갤럽조사의 의하면 48.9%의 여자들이 혼전에 점쟁이를 찾아가서 궁합을 본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34.1%의 개신교 여성들이 점쟁이를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총 여자 인구 중 64%가 점쟁이를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깁니까? 한국인들 의식과 기독교인들의 신앙 속에도, 무속신앙과 샤머니즘이 깊이 뿌리 내려져 있다는 이야깁니다. 궁합을 보러 갈 일이 아닙니다. 아내 되는 말씀공부, 남편 되는 말씀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결혼과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좋은 책을 사서 읽고 공부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은 뒤집으면 ‘세상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지요. 과거에는 세상이 교회를 따랐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리더십을 가지고 앞장서 나갔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뒤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교회가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교회는 아름답고 혈색이 좋은 어린 양과 같은 신부였으나, 오늘의 교회는 쪼글쪼글하게 얼굴이 상한 걸인과도 같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세상 거리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전 한 닢을 구걸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기 보다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면서, 그들을 뒤쫓아 가기 바쁘지 않습니까? 한 때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 6)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습니까? “제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모든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길이 있습니까? 진리가 있습니까? 생명이 있습니까? 되물어야 할 때입니다. 

요한계시록 1, 3말씀을 결론의 말씀으로 드립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을 지낼 때, 토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009년 광야와 같은 경제위기의 때를 걷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진리의 말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기뻐하게 하시고, 찔림 받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고, 회복되게 하시고, 세상을 닮지 않는 용기와 힘과 능력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말씀대로 우리와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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