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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무지를 가나안으로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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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을 향하여 수1:1-9

지난 1월 20일에 버락 오바마가 미국 제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진 취임행사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유학 왔던 케냐 사람이 백인 여인을 만나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미국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흑인인 아버지와 백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의 얼굴색은 흑인입니다. 대통령취임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60년 전 만해도 흑인은 백인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도 함께 탈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천시 받았던 흑인이 이제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미국의 커더란 27개의 압력 단체에서 성경에 손을 얹지 말라고 거센 항의를 했지만, 오바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취임 선서 전에 대하 7: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는 이 말씀을 낭독함으로 세계 열방에 말씀을 붙잡고 일할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아마 오바마 역시 이제 지도자로서 많은 말씀 가운데 이 말씀을 붙잡은 이유는 그 역시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 되는 한 연약한 인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엄청난 난제를 헤치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말씀 밖에 없음을 고백했기에 수많은 압력 단체에서 성경에 선서하지 말라는 압력 앞에서도 당당히 손을 얹고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는 연설 도중에 4번이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취임사를 마치고 오바마가 복창한 말입니다. “So help me, God!” 마지막에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미국을 이끌어가는 한 지도자의 고백입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권세를 가진 미국 대통령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막상 자신이 최고의 결정권자로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그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행동 하나가, 말 한마디가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So, help Me God" "So, help Me God"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광야 40년을 보내고 이들은 그토록 꿈꾸던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본문 1절은 ‘모세가 죽은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기원전 1446년, 애굽 제국의 억압 속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2만여 명을 지팡이 하나 들고 탈출시킨 사람입니다. 그것도 애굽 역사상 가장 무서운 정복자로 알려진 람세스 2세의 통치하에서 말입니다. 당시 팔십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가 기도할 때마다 엄청난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애굽 전차대가 몽땅 물에 빠져 몰살되는 순간 그 능력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모세의 리더십 하나의 의지했습니다. 풀 한 포기 안 나오는 광야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며, 무서운 이방 민족들의 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바위를 치며 기도하면 물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민족과 싸울 때 그가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백전백승했습니다.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선 절대적인 지도자. 그가 바로 모세였습니다.

그 모세가 죽은 것입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카리스마로 40여 년 동안이나 백성들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죽음은 여호수아 뿐만 아니라 아마 백성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십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그렇다면 묻습니다. 여호수아가 누구입니까? 여러분도 아시지만, 여호수아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40년 전, 젊은 시절에 그는 이미 11명의 무사들과 함께 이미 지금 들어가고자 하는 가나안 땅에 정탐을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함께 정탐을 갔었던 다른 10명의 동료들은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여호수아는 그의 동료 갈렙과 함께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얼마든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천하의 여호수아도 막상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음으로써 졸지에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섰을 때, 정신이 아찔했고 두려움이 먹장같이 몰려왔습니다. 누구든 어렵고 힘든 상황이 오면 마음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아니,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강한 사람들도 속으로는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세를 따르면서 자기와 함께 한 백성들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모세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찬송하고, 조금만 안 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종잇장처럼 벌컥벌컥 튀는 이들이 아닙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어요. 

이제 모세는 죽었습니다. 가나안은 눈앞에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왔던 길 보다 더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을 볼 때 어떤 희망이라도 생겨야하지 않습니까? 이것, 저것 생각하다보니 얼마나 두려움이 일어났겠습니까? 

여러분,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할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먼저 두려움에 휩싸이면 모든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음을 체험했던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이 너무나 크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새 땅 가나안을 정복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일들이 한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할 때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5, 9절에 반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5절에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그리고 9절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좋을 때는 좋지만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고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대우하셨나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스스로 힘들어 했던 적은 있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떠나신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 중에 이런 곡이 있죠.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때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속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의 땅을 가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손에 한 네비게이션을 줍니다. 7-8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그 네비게이션이 바로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또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초행길에 차량에 네이게이션을 달면서 우리 교회 한 목사님이 “목사님, 이제 우리는 네비게이션이 없이는 살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하셨습니다. 정말이지 낯선 곳을 순례하는 여행자에게 네비게이션처럼 긴요한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네비게이션의 정확성 여부입니다. 종종 우리는 네비게이션만 믿고 가다가 잘못 입력된 네비게이션으로 더 방황하고 더 시간을 요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께서는 오류없는 네비게이션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이 말씀의 안내를 따른다면 우리는 방황할 필요가 없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는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간 선진들의 증언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히1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갈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무엇을 믿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롬10:17절을 기억하십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성도들의 믿음은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신 새 지도자로서의 준비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내가 너를 형통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형통리라는 단어는 굽은 것이 펴진다는 의미와 막힌 것이 뚫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주님의 음성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엄청난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여기 보세요. 오늘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약속의 땅을 줄 때 두 가지 예비된 복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5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약속입니다. 수많은 적들과 싸우지만, 백전 백승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절에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정복과 정착의 역사를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도 40년의 역사를 갖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어쩌면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지난 날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처럼 우리에게 펼쳐져 있는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 노숙자들이 있는 쪽방 교회에서 며칠을 있으면서 사람이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머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길바닥 인생들이 아니었습니다. 다 가정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내과 의사도 있고, 우리나라 야구 역사를 기록한 야구인들이 다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 인생의 희망을 안고 출발했고, 한 때는 성공도 맛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두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왜 사람들이 강한 것 같은데 이렇게 맥없는 존재로 되버릴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것은 비전의 차이입니다. 잠언 29:18절의 말씀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묵시’라는 말이 곧 비전이요, 꿈입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꿈이 없으면 인간이 경고 망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전이란, 꿈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맞닿아 있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꿈이 없는 인간은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자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항상 목전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은 방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이 없으면 목회자이든, 교인이든, 어떤 인간이든 방자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꿈을 가졌다, 가지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때 남대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성지 순례하는 동안 요르단에서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다가 이집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는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을 때가 없다고 이성을 잃은 한 늙은 광인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이 한층 더 컸습니다.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도 오랑캐의 그 침략에도 꿋꿋이 그 자리를 버터 주었는데 그리고 6.25 동족상잔의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지켰 왔는데 그렇게 타버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단순히 국보급 목조 건물 하나가 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가 타고 자존심이 타고 우리의 미래가 타 버린 것 같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지금 한일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알았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같은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방자한 행동은 그에게 비전이 없기에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행한 것입니다.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던 헬렌 켈러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때 헬렌 켈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꿈이 없이, 비전이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에 떨던 그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섭니다. 그는 더 이상 나약한 자리에 있지를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비젼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약소민족이 아닌 강하고 번성하고 축복받는 민족이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앞에 있는 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적과 장애물을 향해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비젼을 이룰 강력하 도전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비젼이 없는 사람은 도전하지 않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새 역사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회사든 국가든 교회든 결국은 뒤쳐지고 결국엔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든지 그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지도자가 되려고 해서도 않되고 되어서도 않됩니다. 

저는 오늘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었습니다. 그는 그의 취임사에서 변화를 강조했고, 또한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국민들에게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그것은 국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의식이었습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국민들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 약한 자리에 서지 말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위기를 대처할 능력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새 시대의 일꾼은 비젼과 도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고자 하는 개척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비전이 없는 자는 새 시대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간 두 꽁무니만 따라가서는 새로운 시대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구태의연한 삶의 자세를 가진 자도 새 시대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여 무사 안일주의 적 사고를 가진 사람도 새 역사의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큰 비젼 과감한 도전정신 탁월한 발상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는 자만이 다가오는 새 시대에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아침! 우리 모두가 어려운 한해를 보내는 것 사실입니다. 질식할 것 같은 경제 위기 가운데 여기 저기 절망의 신음 소리가 나고 자신의 끝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정을 보세요. 자살과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서슴치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교회는 이제 약속의 땅을 향하여 새 시대를 리더하기 위해 비전을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볼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비록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한 두려움이 있을찌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약속의 땅이 있습니다. 이제 나와 동행하시는 예수님께 내 인생을 맡기고 나가십시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염려하고 또 몇 번 시도하다 인된 그 일 때문에 낙심하고 계신다면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요즘 장안에 화제가 되는 적벽대전을 보면 제갈공량이 나옵니다. 제갈공량이 지휘관들에게 작전을 지시할 때에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편지를 서너장 써주고 “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 곳에서 편지를 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앞을 내다보는 이 제갈공명의 지시를 따라 어려울 때마다 난관을 극복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 만물을 손에 쥐고 계신 권능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이 형통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내 음성을 들어라. 그리고 내 음성에 순종하라.” 만약 이런 말씀이 오늘 나에게 들려와 그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눈이 열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귀가 열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인생은 황무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황무지를 가나안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황무지와 계곡이 도사리고 있는 험준한 땅 속에 젖과 꿀이 흘러내리는 기적을 창조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성령임의 도우심을 붙잡고 열심히 뜁시다. 또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얻어야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열심히 도전합시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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