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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리를 높여 말하라 (행 2:14~15,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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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여 말하라 (행 2:14~15,36~42)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고(행1:4-5)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행1:8).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돌아온 제자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했고 오순절 날 드디어 주님께서 예고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여러 나라 말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4).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천하 각국으로부터] 경건한 유대인들의 큰 무리가 와 있었는데 그들이 각각 자기가 태어난 곳의 언어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는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행2:5-8). 

그 전대미문의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여 서로 묻기를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는가 하면(행2:12),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며 조롱하기도 했습니다(행2:13). 

오늘 본문은 성령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 베드로가 사도들을 대표하여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전하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베드로는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하고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본문 14절). 베드로는 먼저 제자들을 가리켜 새 술에 취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본문 15절)는 말부터 한 것입니다. 

[제 삼 시]는 지금 시간으로 하면 오전 아홉시입니다. 그 시간은 당시의 생활양식상 아직 첫 식사를 하기 전일 뿐 아니라 기도하는 시간이어서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술에 취해있을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에 제자들에게 새 술에 취했다고 한 말은 대단히 모욕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아침부터 술에 취해있다니 정말 미친놈들이군!] 하는 뜻이거나 좋게 봐줘서 [술 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하는 뜻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우선 [지금 시간이 오전 아홉시인데 우리가 술에 취해있는 것일 리가 있겠는가?]라고 반박하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옛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 영을 부어주리라.] 하신 예언과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행2:16).

그렇게 말을 시작한 베드로는 그러나 성령의 강림을 설명하는 데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고 난 다음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행2:22-24를 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자신이심을 친히 분명하게 증언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자신이시라고 말했을 때 곧 사람들에게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느냐는 질문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곧바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한 말이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행2:21)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내어 준 바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 인간을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로마 군사들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한 베드로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뒷받침할 가장 강력한 증거를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부활입니다. 

23절 하반절과 24절을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친히 사망과 그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과 승천을 말하는 것은 그 당시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음을 모르지 않았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또한 이미 다윗을 통하여 예언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베드로는 시16:8과 110:1을 각각 인용하면서 다윗은 거기서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자신이 알았건 몰랐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예언한 선지자였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 중 행2:25-32 부분을 한번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가 대중 앞에서 행한 첫 설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주이시며 구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명하는 것이고, 그의 부활은 그 사실을 확증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만인 앞에서 소리를 높여 말한 것이며, 오늘날 우리도 온 세상을 향하여 소리를 높여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마지막 말 즉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본문 36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본문 37절) 이에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본문 37-39절) 

베드로는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면하기를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했습니다(본문 40절) 

[패역한 세대]는 완악하고 반항적인 세대 즉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의 패역은 다른 것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주요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그 안에서 이루시며 증언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사역과 복음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패역함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는데 이 날 예루살렘 교회 신도의 수가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고 본문 41절은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은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전합니다(본문 42절). 이 마지막 절의 말씀은 뒤따르는 행2:43-47절의 말씀과 함께 급성장하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행2:44-47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루살렘 교회는 첫째로,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셋째로, 예배하는 교회였습니다. 넷째로,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오늘 우리 교회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가르쳐준다고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역자로부터 가르침 받기를 싫어하거나 도리어 교역자 위에 올라앉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하고 열심 있는 배움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함께 나누고 서로 섬기는 참된 사랑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고 한 신앙을 고백하며 떡을 떼고 손과 입을 모아 기도하며 찬미하기를 힘쓰는 뜨거운 예배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그의 사랑과 구원의 진리를 증언하며 또 선한 일을 통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음으로써 구원 받는 사람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릇 교회의 바른 모습이며 특히 성장하는 교회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총회의 정책에 발맞추어 전도에 힘쓰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온 교우들이 적극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설교했듯이 우리도 참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시며 만인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만에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께 나아와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으라고 소리 높여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하여 교회로 나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말씀으로 양육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예배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 밖에 나가 선한 일로 세상의 칭송을 받는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게 하고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밟아야 할 교회의 성장과정입니다. 

이러한 성장과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의 체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두가 겸손하게 배우는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남을 섬기기를 즐거워하는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면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항존직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항존직이 되고 중직을 맡으면 맡을수록 목이 굳어지는 것은 교회성장에 치명적인 해악요소임을 알아야 합니다. 꾸준히 배우기를 싫어하고 열심히 섬기려 하지 않으면서 거드름 피우고 군림하며 명령하고 야단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저 장로 되고 안수집사 되고 권사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로 삼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심 쓰며 파당 짓고 상대방 헐뜯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아예 교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혁신적인 의식변화와 체질개선으로 우리 교회가 새 시대에 참 교회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이 뜻을 이루기 위해 다 함께 마음을 모으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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