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루살렘 성전과 집 (행 2:43~47)

  • 잡초 잡초
  • 287
  • 0

첨부 1


예루살렘 성전과 집 (행 2:43~47)


금년 들어 서점 가를 강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인기 여류 작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이 책의 첫줄은 이런 말로 시작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 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어머니의 흔적을 더듬어 찾으며 가족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어머니와 가족의 관계들을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실종됨으로 엄마의 존재는 비로소 소중하게 가족들에게 다시 다가오게 됩니다.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의 모습 속에서 독자들은 잃어버린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고향 옛집의 향수를 함께 회상하게 됩니다. 

1장에서는 딸이, 2장에서는 큰 아들이, 3장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이, 4장에서는 어머니와 아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딸이 각자의 시선으로 가정의 풍경 그리고 가족들의 내면을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소설이 대중에게 어필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가 오늘 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엄마, 아빠와의 유대감 그리고 가정의 가치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잃어버리고 나서 비로소 소중한 가치를 자각하는 깨달음이 느린 인생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포스트 모던의 시대는 흔히 파괴와 해체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가 저는 가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창조자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서 회복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바로 이 가정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초대 교회의 세상을 변화시킨 엄청난 힘은 바로 가정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일주일에 하루 성전에서 모이는 예배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그들은 성전과 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기록합니다. 그 결과 47절에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가정을 중심으로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이웃들을 구원하고 이웃들에게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집이 하나의 교회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집이 하나님 나라 사역의 중심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또한 우리의 집을 하나님 나라 사역의 중심이 되게 하는 비밀은 무엇일까요?


1.집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집이 하나의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가 되신 예수를 만나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우리의 집을 열어 개방해야 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집에서 모인 교회들이었습니다. 마가 요한의 집에서 모인 예루살렘 교회, 루디아 집에서 탄생한 빌립보 교회,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인 에베소 교회, 눔바의 집에서 모인 라오디게아 교회,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골로새 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들에 속할 것입니다. 

빌레몬1:1-2을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성경학자들은 여기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빌레몬의 가족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매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였고 아킵보는 그의 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킵보를 바울은 병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좋은 가정 교회의 영향으로 복음의 군사로 병사로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집을 개방할 때 거기에는 여러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생활의 위축,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고 밥을 축내는 어려움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가족들은 자기 집 한 복판에서 기도를 경험하고 예배를 경험하고 서로를 향한 용서와 사랑, 믿지 않다가 구원받는 사람들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을 드나드는 거룩한 사람들의 신앙적 모범등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아들 아킵보는 자기 집에서 아마도 바울도 만나고 오네시모도 만났을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고, 노예였고 빌레몬의 재산에 피해를 입혔던 오네시모가 회개하고 거룩한 성자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 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학교 교육이 줄 수 없었던 것이었고 그 영향으로 마침내 그는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영적인 병사로 성숙해 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우리 집을 가정 교회로, 목장 교회로 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우리 마을의 복음화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유익하고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초대 교회들이 큰 건물을 안 갖고도 당시의 세상을 복음화한 비밀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가정을 여시겠습니까? 그것이 우리 집에서 하나님 나라 사역이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2.마음을 여는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46절은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런 마음이 통하는 모임으로 세상을 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소통은 관념적인 마음 열기에 머문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호주머니까지 열어 서로를 돕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44-45절이 그 증거가 아닙니까?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이것은 말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결코 원시 공산주의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의 분배 원칙에 따라 나눔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령의 감동에 따른 자발적인 나눔의 실천이었습니다. 먼저 그들의 마음이 통하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상실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한 교회에 나와서도 서로 마음을 닫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집에서 모이는 목장 교회에서 우리는 ‘마음의 나눔’ ‘삶의 나눔’을 가장 중요한 모임의 방법으로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교제의 핵심적 풍경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목자 훈련 모임에서 강의를 한바 있는 보이스 컨설턴트 김 창옥 형제는 그가 쓴 책 ‘소통형 인간’에서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고 역설합니다. 소통하지 못하면 우리는 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정의 비극도, 교회의 갈등도, 사회의 방황도 결국은 소통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열기에서부터 우리는 인생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소통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들의 마음의 소리를 경청하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어느 집에서 딸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 힘들어” 엄마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너만 힘드냐 지금 온 세상이 위기야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느냐, 엄마가 너 만 했을때 엄마는 너보다 열배는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 견디어 냈는데 네가 필자가 좋아 그런 소리나 하는 것 알아” 이 딸은 다시는 아마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로 작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대답은 어떨까요? “그래 네가 많이 힘든 모양이구나. 엄마가 자랄 때도 힘든 세상이었지만 지금 세상은 훨씬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구나. 내 딸아 널 힘들게 하는게 뭔지 엄마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니 너와 함께 기도하고 싶구나” 우리가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의 모임에는 반드시 이런 순전한 마음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처럼 말입니다.


3.우리 집에 거룩한 성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마음 열고 우리 한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우리 가정 모임이 가정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한과 고통을 근원적으로 치유하시는 이에 대한 묵상과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성찬은 교제의 떡을 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의 더 중요한 초점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떡을 떼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깨트려 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나누며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자 거룩한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성찬을 주일 교회당에서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목장 교회로 모이는 집에서도 시행하는 이유입니다. 초대 교회처럼 말입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음식을 먹고”(46절) 

그러나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먹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성찬의 향연이었습니다. 2:42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것이 우리 교회가 주일 예배에 받은 말씀으로 말씀 사역을 마무리하지 않고, 목장 모임에서 주일에 받은 말씀을 다시 나누는 이유입니다. 초대 교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47절에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도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사람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모습이요 우리 교회가 목장 교회를 통해 회복을 열망하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떡을 떼고 말씀을 먹고 찬미하고 기도하고이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성찬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 집에서 이런 성찬이 모일 때마다 나누어진다면 우리 집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까요? 우리들의 가정 교회 그리고 목장 교회는 어떤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게 될 까요? 아니 이번 명절에 우리 가족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성찬이 나누어진다면 우리의 가정은 어떤 현장이 될 까요? 그것이 바로 성전과 동일하게 집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 땅의 모든 성도의 집에서 이런 거룩한 향연이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비전의 확장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의 화두를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 결말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소설속의 가족들은 엄마를 찾았을까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소설속의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국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상 앞에 서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기도를 하면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후일 이 소설의 작가 신경숙은 이 마지막 대목의 사연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 소설의 연재를 마치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만났다고 합니다.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가슴이 요동을 쳤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성모를 저렇게 젊게 표현했을까를 생각하다가 정신적인 불멸의 존재로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 어머니를 부탁할 자리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이 소설이 탄생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저는 작가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의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어머니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당신의 제자 중 누가 가장 오래 살 것인가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일 장수할 그리고 감성과 인정이 풍부한 제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아니 우리와 우리 가정의 미래를 부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분은 사실상 주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속 명절에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가족들을 우리의 구주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의 구주가 바로 우리 가정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제 그분을 우리 집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의 가정을 하나의 작은 교회, 목장 교회로 만들 결심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길만이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우리의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유일의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 나라의 사역장 곧 작은 가정 교회, 목장 교회로 주께 드리시는 놀라운 결단이 일어나는 이 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동원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