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벽 위 파수꾼의 사명 (사 62:6~12)

  • 잡초 잡초
  • 389
  • 0

첨부 1


성벽 위 파수꾼의 사명 (사 62:6~12)


설 명절입니다. 우리가정, 우리 교회,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올 한 해 모든 저주를 끊어 버리고 축복받는 가정이 되길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헤롯처럼 저주의 문화를 대물림하는 가정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문화를 대물림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이 축복의 선언이 우리 가정에도 미쳐야 합니다. 우리 이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찬양드리겠습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말-라~ 후렴)내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여라”

새가 날아 가다가 내 머리 위에 똥을 싸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가 아예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궤계를 물리쳐 사탄이 우리 가정과 이 교회, 우리 사회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지킬 수 있습니다.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과 불의, 추악, 탐욕, 중독, 질병, 시기, 질투, 중상모략, 비난, 의심, 실패, 간음, 부패, 거짓, 우상숭배 등 갖가지 유혹을 가지고 우리의 가정의 울타리를, 우리 교회의 포도원을, 우리 나라를 파괴하려는 사탄으로부터 우리 가정과 교회 나라를 지켜야 하는 파수꾼으로 하나님이 이 시대 세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시대에 영적 파수꾼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1. 이 시대에 희망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 증거의 사명입니다(6,11,12)./복음증거의 파수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오늘 본문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보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예루살렘’은 바로 오늘 날로 말하면 우리 시대를 말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 내가 속한 직장, 내가 속한 교회, 내가 속한 나라를 말합니다. ‘내가’는 하나님입니다. ‘너’는 선택한 하나님이 백성 우리를 말합니다. ‘그들’은 바로 파수꾼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는 말씀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 우리 직장, 우리 교회, 우리나라의 파수꾼으로 우리를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파수꾼의 다른 이름은 무엇입니까? 바로 밑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입니다.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를 기억하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옛날 고대 동방국가의 왕들에게 왕이 약속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즈음 의전 장교처럼 지휘관이 하여야 할 하루의 일과를 챙기며 그가 계획하고 약속한 일을 잊지 않고 수행하도록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기억나게 하는 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외치시는 소리가 땅 끝까지 퍼진다고 말씀합니다. 바벨론 포로에 잡혀간 유대인만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 열방 가운데 반포하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는 것입니다. 너를 구원하실 이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해방시킬 하나님이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너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궁극적으로 재림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란 바로 메시야를 말씀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상급의 심판으로 믿지 않는 자에게는 보응의 심판주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여호와의 구속 하신 자'입니다. '대속적 피에 의해 그 죄를 씻음 받고 죽음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찾은 바 된 자,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는 말씀입니다. 

파수꾼은 본래 보초입니다. 대적의 침입을 살피는 자들입니다.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령을 확인하기 위하여 성벽 망대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소개된 파수꾼의 주임무는 그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절망가운데 사는 암울한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사탄은 논점 흐리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온통 경제에 매달리게 합니다. 출세에게 매달리게 합니다. 성공에 매달리게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야 합니다. 죽으면 성공도 출세도 다 소용없습니다. 

이 임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밤낮 잠잠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해방된다. 구원받는다”라는 사실을 쉬지말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될 것을 그리고 종국에는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첫 번째 사명은 바로 이런 희망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을, 이 시대를 복음으로 살리는 희망을 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한 시대가 아무리 타락해도 법이 살아 있으면 그래도 그 나라는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까지 타락하면 교육이 살아 있으면 젊은 세대가 바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법도 교육도 타락하여 희망이 없을 때 종교가 살아 있으면 그래도 나라가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마저 타락하면 나라는 망한다고 합니다. 

복음은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마른 뼈들이 살아납니다. 죽음의 향연이 생명의 잔치로 바뀝니다. 절망의 문화가 희망의 문화로 바뀝니다. 신분의 노예로부터 참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참으로 해방되어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줍니다. 지성이 새로워집니다. 양심이 살아납니다. 이성이 제 구실을 하게 됩니다. 정확하고 바르게 세상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세계관이 가치관이 바르게 정립이 됩니다. 지성과 도덕적인 분별력이 정상적으로 됩니다. 참 지식, 참 거룩, 참 행복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죽음의 어두움, 죄의 어두움, 근심의 어두움, 시기와 질투의 어두움, 전쟁과 기근의 어두움, 두려움과 불안의 어두움, 질병과 고통의 어두움이 달아납니다. 어두움의 사상, 어두움의 지식, 어두움의 도덕, 어두움의 문화가 달아납니다. 이 복음이 임하면 음란한 밤의 문화가 달아납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이 이 복음을 받으니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던 부시가 이 복음을 받으니까 새사람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깡패 대장이었던 김익두가 이 복음을 받으니까 목사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니까 바이킹족이었던 스웨덴이 변하고 해적들이 신사로 변합니다. 온갖 죄악과 우상으로 타락한 로마가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2천년동안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불모지의 땅 미국이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세계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땅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헨델과 베토벤,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가정이 밝아집니다. 영혼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밝아집니다. 세상이 밝아집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국에 죤 뉴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7살 때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재혼하게 되었고, 뉴튼은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내졌습니다. 그 후 뉴튼이 11살 때 아버지 배의 선원이 되어 폭력, 술취함으로 살았습니다. 너무나 사고뭉치여서 19살 때 강제로 영국 해군에 입대했으나 모든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되어 아프리카로 가는 노예 상선에 넘겨졌습니다. 노예 주인의 무자비한 학대와 흑인들의 멸시와 열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그는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출받게 되었습니다. 배 안에서 온갖 못된 짓만 골라서 하다가 술에 취해서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노예선 선장이 되어 노예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6세 때 그의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후에 목사가 되었고 노예 폐지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저주의 받은 인생에서 축복받은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롬 8:1-2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이 생기가 돕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직장이 의미가 있어집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나라가 정결해집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파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2.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영광을 받게 만드는 기도의 사명입니다(7,8,9)./기도의 파수꾼

파수꾼의 두 번째 사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파수꾼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단지 국경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 자신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가만히 못 계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루살렘의 회복과 영광에 대하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이루실 수 있도록 쉬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의인법을 통한 시적인 표현입니다. 언제까지 쉬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파괴되어 황무해진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조롱하고 비난하던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을 때까지 우리 기업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을 때까지, 우리나라를 통해 하나님 영광받을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포로로부터 돌아와 이전의 특권을 회복할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을 통해 회복될 신약 교회를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주의 재림으로 완성될 새 예루살렘의 완성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기도문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내 주어진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시행되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약속의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오른 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여 약속합니다. 의인화 시킨 시적인 표현입니다. 무슨 맹세입니까?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시온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수고한 것을 즐기는 것은 안전의 상태가 조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안정 속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둔자가 그것을 성소의 뜰에서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규례를 따라 성전에서 먹고 마시곤 하였는데(레 6:16; 신 12:17,18; 14:23). 그때 그들이 보여 준 가장 큰 특징은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낙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와 행복, 평안과 축복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주권이 시행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이 쉬시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것,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여우가 되어 끝없이 포도원을 헐기 위해 유혹하고 박해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명목으로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실추시킴으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잘되는 것처럼 보임으로, 인간의 지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우리를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8)”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구하여야 주실 것을 원칙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8)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작정된 일도 구하여야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될 것을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했습니다(창15:12-16) 그러나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통해 응답해 주었습니다(출2:23-85),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70년 후면 해방될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렘29:10-14)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언약해 주었습니다.(겔36:37)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까?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렘 29: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렘 29:12)”

에스겔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겔 36:37)”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7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을 쉬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6절 하반절에 너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아니하고 결코 잠잠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일깨워 드릴 너희라는 말입니다.

비를 구한 엘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상18:1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야에게 비를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가 저절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왕상18:41-46).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을 때 지혜 뿐 아니라 장수와 부귀까지 주셨습니다(왕상3:9-15).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하인을 치료시켜 주실 뿐 아니라 백부장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복까지 주셨습니다. 

한나는 아들 하나를 구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무엘을 주실 뿐만 아니라(삼상1:20)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고(삼상 2 : 21) 사무엘을 민족 지도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왕이 병 낫기를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병만 낫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나라까지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셨고(왕하 20 : 6),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아들까지 주셨습니다(왕하 21 : 1).

예루살렘이 황폐화된 것처럼 심령이 황폐해 졌습니까? 가정이 사업이 황폐해졌습니까? 건강이 황폐해졌습니까?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인생이 황폐해졌습니까? 절망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약속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 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로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도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도로 우리 기업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도로 우리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는 성취해야 할 기도의 파수꾼입니다. 기도로 우리 가정을 하나님으로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 교회를, 우리 기업을, 우리 민족을 하나님으로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게세마네 동산의 베드로처럼 기도의 파수꾼으로 실패하지 말고 기도하여 이 시대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믿음으로 행하는 사명입니다(10)./행함있는 믿음의 파수꾼
파수꾼이 해야 할 세 번째 사명은 무엇입니까? 10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쉬지 않으며 외치고,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성문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갇혀 있지 말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파수꾼이라고 초소에만 있지 말고 성의 이 문 저 문을 지나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나아가라. 나아가라.”라고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무엇을 합니까?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올 길을 닦아라라고 말씀합니다. 대로를 수축하고 또 수축하라고 말씀합니다. “큰 길을 닦고 또 닦아라. 걸림돌을 치워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뭇 백성 앞에 깃발을 높이 올려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돌아오는 것을 파수꾼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랜 포로 생활로 이곳 저곳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하여 본국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깃발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비하되 믿음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고 걸림돌은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파수꾼으로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믿음으로 행하는 사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파수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 결산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에는 행함이 있을 때 진정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자신과 가정, 교회 이 사회에 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는 믿고 끝낸 것이 아닙니다. 실제 매일 매일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경고를 듣고 소돔 땅에서 기도만 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했을 때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6)”라고 말씀했습니다. 믿는다면 우리는 믿는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믿지 않거나, 믿긴 하지만 믿음의 실효성에 조금은 의혹과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행하는 믿음이 바로 기적의 역사를 몰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기업에, 우리 나라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 있는 행동을 통해 우리 가정이 참으로 행복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 있는 행동을 통해 우리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 되고 거룩해지고 부흥되길 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 비전도 실행하지 않으면 단순한 몽상에 불과합니다. 열정도 마음의 열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열정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만리장성도, 거대한 피라미드도 작은 벽돌 하나를 쌓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을 아는 것과 사랑을 행하는 것, 가고 싶은 곳과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은 조그마한 차이 같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알고 깨닫기만 한 채, 행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위대한 사상도 작품도 한 줄 글을 표현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리사가 되고 싶으면 우선 부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으면 우선 단어 하나부터 외워야 하고, 수영 선수가 되고 싶으면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작가가 되고 싶으면 한 줄이라도 글을 써야 합니다. 작은 행동이 쌓여서 자신을 만들고 믿음이 행동에너지로 전환될 때에만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 심리학과의 아델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성공의 비결은 IQ보다 실행능력(EFㆍ Executive Function)이라고 합니다. 실행능력이란 인간이 외부 환경에 맞서 생각과 행동을 내적으로 설정한 목표나 계획과 일치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여성이 실행능력이 높다면 초콜릿이 주어졌을 때 거부하게 된다고 합니다. 래리 보시디는 그의 책 [실행에 집중하라]라는 책을 통해 기업 성공의 비결은 실행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기업은 승승장구하는데 어떤 기업은 실패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실행능력의 차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실행력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고 말합니다. 실행력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구체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상을 들고 가라할 때 그것을 들고 가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센씨 병 환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갈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말씀 믿고 실행하다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라고 할 때 돌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바위를 치라고 할 때 치니까 생수가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없다고, 큰 성이 앞에 놓여 있다고 절망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실행력을 보여줌으로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당대의 부자가 된 깁슨(Gibso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물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출발한 그는 결국 갖은 고생 끝에 산림 20만 에이커(2억 4488만평), 철도 280마일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여 아메리카의 거부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깁슨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깁슨은 

"글쎄요, 굳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세 가지 신조입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오늘이 있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기자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거야 누구 나가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라고 되물었고 깁슨은 웃음 띤 얼굴로 다시 말했습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깁슨을 거부로 만든 것은 해박한 지식이나 달변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사실의 실천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헵시바입니다. 우리의 하는 일을 하나님의 소유가 된 쁄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불러 세웠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야 할 영적 파수꾼입니다. 우리는 파수꾼으로 소경이 되지 말아야 하고 무지하며 벙어리 개가 되어 능히 짖지 못하며 꿈꾸는 자 누운자,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사56:10)

우리는 복음 증거의 파수꾼으로 이 시대에 희망을 주고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파수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함 있는 믿음의 파수꾼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