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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오직 하나님만... (단 3: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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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만... (단 3:28~30)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이 누군지 아는가? 
BC 587년 남왕국 유다의 멸망하기 18년 전 인 BC605년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 소년들이다. 그때 함께 붙들려 온 무리들 중의 한 사람이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의 꿈을 해몽해 줌으로 어린 나이에 바벨론 제국의 총리와 박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역시 바벨론도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었다. 그들이 어린 소년으로 바벨론에 도착했을 때 문화적인 큰 충격을 받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음식과 풍속이 너무 달랐다. 왕은 통치 자문위원으로 박수 술사들을 활동하였고, 많은 잡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궁학교에 선발되었을 때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그 음식이 신에게 바쳐진 제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함께 이 문제를 의논했을 것이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이 소년들이 뜻을 정하여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심하고 물과 채식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년들보다 더 얼굴이 좋아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적 결단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이듬해 어느 날,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너무 이상한 꿈이어서 잠을 자지 못하고 번민에 싸여 있었다. 결국 왕은 전국의 유명한 박수 술객 점쟁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꿈의 내용과 해몽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도 꿈의 내용을 맞추는 사람이 없었다. 분노한 왕은 모든 술객과 점쟁이들을 처단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다니엘이 왕에게 나아가 그 꿈과 꿈의 내용을 해몽해 주었다. 이 일로 인해 신임을 얻은 다니엘은 일약 총리로 발탁되었고, 세 소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고위 관리로 채용되었다. 

그 후에 느브갓네살 왕이 ‘두라’라는 평지에 높이 30m, 폭 3m의 금신상을 세웠다. 그리고 제국의 고위 관리들을 다 참석케 한 후에 한 법령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악대의 나팔소리가 울릴 때 모든 백성들은 금신상을 향하여 엎드려 절하게 한 것이었다. 만약 불복하는 자에게는 맹렬한 풀무불에 던져 화형시키는 형벌을 내리게 하였다. 이것은 왕에 대한 존경과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으로 왕은 자신을 신격화했다. 

그러나 유대 출신의 세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나팔소리를 듣고도 신상을 향하여 절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하들 가운데 이 세 사람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왕 앞에 참소하였다. 

(단 3: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분노했다. 끌려 들어온 세 사람을 왕이 직접 심문했다. 확인 질문을 한 후에 왕은 그들을 사랑했기에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일언지하에 왕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분기탱천한 왕은 풀무불을 7배나 뜨겁게 달궜고 그 세 사람을 풀무불로 던져 넣었다. 

잠시 후, 왕은 풀무불 속에서 4사람이 거니는 모습을 보고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단 3:24)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왕이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세 사람을 향하여 이름을 불렀다. 

(단 3:2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세 사람이 불 가운데서 나왔는데 머리터럭 하나 그슬리지 않았다. 옷이 타지도 변색도 안되었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28-29절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왕의 찬가라 할 수 있다. 
(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느브갓네살 왕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된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을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여 주었다. 

동화 속의 이야기 같지만 이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원칙 있는 신앙 자세 

(단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 대답 속에 세 사람의 확고 불변한 신앙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왕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확실하고도 단호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김남수 목사 - ‘유쾌한 하나님의 낚시법’, 성공한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 2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1)귀납적 스타일 - 감춰진 보물을 찾기 위해 밀림을 헤치고 돌아다니는 개척자형. 책상머리 - “도전은 성공의 지름길이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2)연역적 스타일 -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운전자와 같다. 무모한 모험을 즐기지는 않지만 원리에 충실한 사람. 두 스타일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스타일은 달라도 자신의 삶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1장에서, 다니엘과 이 세 사람은 왕이 하사한 우상제물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정했다. -결코 우상제물은 먹지 않으리라. 비록 어린 소년들이었으나, 신앙의 원칙을 분명히 세웠다. 우상제물을 먹지 않겠노라고 뜻을 세운 소년들이 신상 앞에 절을 하겠는가? 

-결코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이런 모습을 다니엘에게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노년에 다니엘은 그의 세 친구들이 당했던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에 행하던 대로” 

- 이것은 다니엘의 일상생활의 습관을 가리킨다. 매일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습관은 언제부터 붙었는가? 어린 소년시절부터 갖게 되었다. 노년에 이르러서 사자굴에 떨어지게 될 위기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례 서약을 하고, 제직 서약서를 쓰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의 편의대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좋은 습관을 처음부터 잘 길들여야 한다. 신앙이나 자신의 일반 생활에도 합당한 원칙이 없으면 그 사람 성공하기 어렵다. 날씨가 춥다고 건너 뛰고, 덥다고 건너 뛰고... 건너 뛰기 잘하는 사람은 뜻을 이룰 수가 없다. 사람보고 분위기 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제사상 앞에서 절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정당한 신앙생활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주일성수, 성경읽기, 기도하기... 자기 원칙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원칙, 원칙이 있는 사람이 충성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두 번째,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신뢰한 신앙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여러분! 왕이 요구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금한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는 시늉만 내도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조차도 거부했다. 구차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결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만 의지했다.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전혀 도와주실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놓지 않았다. 왕이 보기에는 처량한 객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왕은 분노했다. ‘이 독한 놈들, 그래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풀무불에서 구해내나 해보자!’ 목숨을 잃을 위기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심없이 철저히 믿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가만히 계셨겠는가?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교회 목사님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교회 옆에 술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술집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40일 작정기도를 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도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 기도가 응답되어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서 그 술집이 타버리고 말았다. 기도 응답이 응답되었다고 좋아하는데 얼마 후 그 술집 주인으로부터 청구서가 날라 왔다. 교회가 기도해서 술집에 불이 났으니 손해를 다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판사가 먼저 술집 주인에게 물었다. “원고는 피고가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생각합니까?” 술집 주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판사님! 분명합니다. 저 목사와 교인들이 술집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불이 났습니다.” 그 말을 듣고 판사가 목사님에게 물었다. “저분 말을 인정하십니까? 술집 없애 달라고 40일 동안 매일 열심히 기도해서 불이 났습니까?” 그때 목사님이 대답했다. “판사님!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기도한다고 술집에 불이 납니까?” 

믿음 없는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지만 심히 걱정이 된다. 내가 손해가 되면 언제든지 주님을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탄식하셨다. 

여러분! 의심 없는 견고한 믿음은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 소유할 수 있다.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된다. 질병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된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후에 비로소 인간의 악함을 깨닫게 된다. 

(롬 3:4)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나라는 존재가 티끌과 같이 무익하고 무가치한 존재, 사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의 연단이 필요한 것이다. 욥의 말처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자신에게 닥친 위기적 상황, 고난과 질병,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나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더욱 더 하나님만을 신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나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인가? 참된 믿음인가는 눌러보면 안다.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소리지르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라. 그런 믿음 가지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이기며 나갈 수 있는가?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예수를 더욱 의지 합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로 무릎 꿇기 바란다. 


세 번째, 섭리적 신앙 

(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섭리적 신앙은 신뢰의 단계를 뛰어 넘는 최고의 신앙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한 마디에 입을 다물게 된다.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매달렸는데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때 그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예)수원기독초등학교, 김요셉목사의 학교에 선교사 선생님.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으로 확신하고 금식하며 매달렸는데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기대에 어긋난 결과가 나와서 실망했다면 그 신앙은 자기중심적 신앙인 것이다. 

믿음으로 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한 것이지만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할 수 있는 섭리적 신앙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겠지만 결정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까지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를 완전히 포기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만나게 된다. 그때는 자기의 욕망을 구하지 않는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런 고백과 찬양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사람을 극한 풀무불에서 건져내셨다. 포로민의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이 일을 통해 느브갓네살은 자신을 신격화할 야욕을 포기하고 그 입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 세 사람의 신앙자세가 명절을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한 도전을 준다. 
1)원칙 있는 신앙의 자세 
2)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 
3)섭리적 신앙의 자세. 

명절날이 되면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암투가 벌어진다. 가족 간에 편치 않은 만남으로 인해 불편한 맘을 안고 헤어지기도 한다. 먼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확립하면 닥치는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분명한 신앙의 모습과 겸손한 자세와 섬김을 보인다면 큰 유익을 끼칠 뿐 아니라 복음의 통로 역할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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