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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명절을 보내는 성도의 자세 (고전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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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보내는 성도의 자세 (고전 5:6~8) 


내일은 민족의 대명절인 설입니다. 인터넷에 “저처럼 설날이나 명절이 싫어지는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기사가 있어서 읽어보았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저희 집이 큰 집이라 사촌들이 다 저희 집으로 몰려옵니다. 제 밑으로 초딩 사촌동생이 4명이나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그 사촌동생 4명을 저 혼자 다 맡아서 봐야 한다니 말입니다. 사촌 동생들이 말이라도 잘 들어먹으면 재미라도 있겠는데, 이 놈들이 말은 들어먹지도 않고, 그놈들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컴퓨터도 못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만합니다. 어른들이 담배 심부름, 재털이 심부름, 과자 심부름, 온갖 심부름은 저한테 다 시키더군요. 저도 이제 곧 고 3 올라가는 수험생인데.....> 

이 철부지 고등학생의 불평에 대한 댓글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그런게 좋은 것입니다. 가족이 없어서 혼자 보내는 사람을 생각하면 우리는 복 받은 겁니다.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십시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다가 지독한 한파까지 겹쳐서, 금번의 설은 고난의 겨울 중에 맞이하는 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춥고 굶주리고 헐벗었던 시절에 비하면, 아직 배고프지 않도록 먹을 양식이 있고, 따뜻하게 입을 옷이 있는 오늘 우리들의 처지는, 매서운 추위도 견딜만하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명절의 음식 준비에 힘든 주부들도, 독거노인의 그 고독한 처지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감사는 생각하기에 달려 있고,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혹독한 경제 한파에다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금년에도 고향을 찾게 될 귀성 안파가 2800만 명이나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중국도 우리의 설날격인 춘절만 되면 온 나라가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로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중국 인구가 13억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열흘에서 보름의 춘절 동안에 귀성객들은 17억으로 중국 전체의 인구보다 많다고 하니, 그야말로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 명절에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고향에 갔다가 무엇을 하며 오는가? 조사를 해보았더니, 세배나 차례를 지내고 나면 대부분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놀이를 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도 마작이라는 놀이로 명절을 보낸다고 하니, 어쩌면 두 나라가 모두 노름하러 그 고생해 가며 고향에 가는 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명절이면 온 민족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고향으로 명절을 보내러 가지만, 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해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 치느라고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나누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명절을 즐겁고 기쁜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데에는 동감하지만, 고스톱 치는 명절보다는 이스라엘 명절이 훨씬 뜻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 드라마의  제 1막은 구약이고 제 2막은 신약인데,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사건이고,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구약에서 복음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하는데 필요한 유월절 양에 대한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어린양 가운데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병들었거나 온전치 못한 것은 결코 유월절 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은, 죄인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구원받는 것을 예표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의 토대가 된 장자 재앙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유월절 희생양이 요구되었듯이,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은, 유월절 어린 양이 흠 없고 완전해야 했듯이, 죄와 허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애굽 전역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밤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유월절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뿌리고 발랐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애급의 전역에 번개 불과 같이 임하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피가 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의 집이든 목동의 집이던, 강도의 집이던, 창녀의 집이던 상관없이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볼 때에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갔습니다. 유월절 양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유월절의 양의 피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장차 이 땅에 오셔서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잡수시면서 잔을 가져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와 죄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 요한의 증언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 절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인 정월 14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 무교병만을 먹어야했습니다. 무교절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은,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바, 부패와 옛 생활을 상징하는 애급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이 섞인 유교 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와 동일한 명령이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괴악하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여기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했는데, 묵은 누룩,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과 같은 죄악들이 무엇입니까? 

고전 6:9-10에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묵은 누룩,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과도 같은 죄악 목록을 정리해 보면, 첫째 음행입니다. 이는 간음, 탐색, 남색 등과 같은 각종 성범죄를 가리킵니다. 둘째, 우상 숭배입니다. 예를 들면 성도가 점을 치러간다든지, 굿을 한다든지 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탐욕입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경제 사범을 가리킵니다. 넷째, 도적질입니다. 교회로 치면,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적한다든지, 헌금을 유용한다든지, 돈놀이를 하여 남의 것을 가로챈다든지, 성도들 끼리 재산 증식의 목적으로 교회를 이용하는 행위 등을 가리킵니다. 다섯째, 모욕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욕설이나 비방을 하여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기득권 문제를 놓고 기존 장로들이 신입 장로를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섯째, 술 취함입니다. 이는 술을 먹고 만취하여 주정을 부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일곱째, 토색입니다. 이는 속여서 빼앗는 행위를 뜻합니다. 

만일 우리 교회 안에 위의 일곱 가지 유형의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고 해보십시오. 성도들이 성범죄에 빠집니다. 청년들이 방탕하고 미혼모가 속출합니다. 남전도회 여전도회가 모였을 때 음담패설이 난무합니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속입니다. 헌금이 들어오면 담당자들이 유용합니다. 교인들이 점을 보러 다닙니다. 굿을 합니다. 교인들이 서로 헐뜯고 욕하고 비방을 합니다. 집사들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폭력으로 해결합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런 일이 교회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자들이 있으면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합니다. 곧 출교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무교절 기간 동안에 “유교 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그쳐지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여기 ‘그쳐지리라’라는 말은 ‘잘리다, 베어지다, 추방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 아무런 삶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 광야로 쫓겨나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도 죽임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룩이 상징하는바,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로부터 떠나지 않고 그것을 사모하여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자는, 마침내 구원의 대열로부터 제거를 당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에는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즉 죄에서 떠난 거룩한 삶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누룩이 발견되어지면 그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그쳐지리라고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우리의 죄악을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철저하게 누룩을 제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렇게 소극적으로는 죄를 멀리하고 살면서, 적극적으로는 순전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결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결은 말 그대로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물건을 고를 때도, 우리는 깨끗한 것을 고릅니다. 옷을 입어도 깨끗한 옷을 입습니다. 이왕이면 깨끗한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음식을 먹어도 깨끗한 곳에서 정갈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합니다. 위생적으로도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콜레라가 돌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음식물은 말끔하게 씻고, 완전히 익혀서 먹도록 하며, 주변 환경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홍보를 합니다. 요즘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합니다. 오염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깨끗하고 청결해야 될 것이 더럽혀져 있는 것을 오염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살이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청결함, 다시 말해서 성결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쉬운 성경을 보면 입후 2:20-21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그릇과 흙으로 빚은 그릇 또한 있습니다. 그 그릇 가운데 특별히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지만, 평범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구든지 악을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신 주님이 쓰기에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볼 때, 신앙적으로는 금그릇 은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면 그 사람이 곧 금그릇이라는 말씀입니다. 귀한 그릇은 귀한 일에 사용되듯이, 하나님은 성결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를 가장 고귀한 일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 혹은 무엇을 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도의 삶은 진실해야 합니다. 옛날 어떤 나라에 왕이 자기 딸의 사윗감을 찾는데, 꽃씨를 나누어 주고 꽃을 제일 예쁘게 길러오는 사람을 사위로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후보자를 모집하여서 꽃씨를 나누어 주고서는, 일정기간을 주고 꽃을 길러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에 많은 후보자들이 저마다 아름답고 탐스럽고 핀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임금님이 그 가져온 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너무 아름다운 꽃들이어서 감탄을 하며 구경삼아 심사를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맨 끝에 선 어떤 후보자는, 꽃이 피어있지 않는 빈 화분을 갖다 놓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그 사연을 물으니, 그 후보자의 하는 말이 온갖  정성을 다 했으나 꽃이 피지 않아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사람을 얼싸안고 많은 사윗감 후보자들과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 진실한 사람은 이 한 사람뿐이다. 내가 나누어 준 그 꽃씨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꽃씨였으므로 꽃을 피워 온 후보자들은 모두 거짓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그 안에 속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나, 숨긴 것이나, 정직하지 못한 것이나,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이며, 투명하고 명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실함 때문에 그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그에게 들어가 그를 사로잡기 때문에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너무도 진실치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12:1-2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도다”고 탄식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사람 앞에서의 진실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의 인격, 성도의 언행은 그 나라 그 사회의 양심의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세계를 떠나 그 어디서 보다 나은 진실을, 보다 깨끗한 양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성도의 말 한 마디면 보증수표보다 더 신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세상 사람들은 차치해두고라도, 신자들에게서 마저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이고, 성도들 세계에서도 불신풍조는 만연되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떠한 오해나 억측이라도 성도들 끼리 만나서 한 마디 해명하고 밝히면, 그 진실성 때문에 모든 오해가 풀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진실치 못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무슨 신뢰가 생기겠으며, 무슨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겠으며, 어떻게 단합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겠습니까? 진실성이 없을 때 그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것이고, 언행에 거짓이 많을 때, 그 인격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단언컨대 신앙과 인격의 생명력은 진실한데 있음을 확신합니다. 

내일은 민족의 큰 명절 설날입니다. 민족 대이동을 해서 차례나 세배를 하고나면, 대부분 화투놀이를 하며 지낸다는 것이 우리네 설명절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명절을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 명절은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도 지켜야 할 영적인 유월절이 있으니, 곧 이스라엘의 유월절 절기에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지켜야 명절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을 완전수인 일주일 동안 지켰습니다. 일주일은 구원받은 성도의 일평생을 상징하는 기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악한 누룩과 같은 죄악을 멀리하고, 성결하고 진실하게 살고, 기쁘고 즐겁게 명절을 지키듯, 일생을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명절을 지키듯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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