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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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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히 11:13~16)

 
지난 금요일에 제게 "설날 세뱃돈"에 관한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설날에 세뱃돈을 안 주는 방법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안 주는 방법!  우리 어른들은 한 번 귀담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덕담을 최대한 길게 한다.  이것은 참을성이 없는 아이들을 공략하는 최고 최대의 방법이다.  
덕담을 최대한 길게 하면, 아이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잠을 자게 되거나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게 된다.
둘째로, 다른 사람이 절을 받을 때 덩달아 절을 받는다.  그러면 내가 주지 않아도 된다.
셋째로, 조금은 치사한 방법이지만 아이들이 절을 할 때 "조카님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식으로 '당당히' 같이 절을 한다.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아야 할지, 줘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단 생색을 내며 세뱃돈을 후하게 준다.  그리고서 화투나 카드놀이를 가르쳐주는 척하면서 세뱃돈을 다시 '강탈'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밑에 글에 보니까 "설날에 세뱃돈을 많이 받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설날에 한 살림 밑천을 벌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복음이 될 것입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많이 받는 방법, 첫째로 절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로, "작은아버지는 오만원을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경쟁심을 유도하게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적게 준다는 것은 쪽팔리고 체면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수표밖에 없다'면서 세뱃돈 주기를 주저하는 어른들을 위해 거스름돈을 준비한다.

오늘부터 설연휴입니다.  교우들 가운데는 이미 설을 지내기 위해서 고향에 간 분들도 계시고, 오전예배를 드린 후에 고향으로 가실 분들도 계십니다.  아무쪼록 설연휴 기간 동안에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동행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설연휴 기간동안에 여러분의 감정과 이성과 그리고 여러분이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과 환경까지도 간섭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민족은 고향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민족입니다.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그래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되면 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집니다.  고속도로와 기차역 그리고 공항과 부두에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대 혼잡을 이루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는 누구나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요, 자라난 곳입니다.  내가 자라난 집과 다닌 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고향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고,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곳입니다.  거기는 친척과 친구들과 형제 자매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고향은 자기를 알아주고 반겨주는 곳입니다.  이 세상이 다 나를 모른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들만은 나를 알아보십니다.  나를 반겨줄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고향은 언제나 즐거운 곳이요, 찾아가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식처인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고향도 있지만, 영적인 고향이 있습니다.  그 영적인 고향은 곧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사모했던 '더 나은 본향'이 바로 천국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이 시카고로 휴가를 가려고 하다가 시카고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는 뉴스를 듣고 휴가지를 따뜻한 플로리다로 바꿨습니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남자가 호텔에서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소를 잘못 입력해서 다른 가정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목사님의 가정인데, 목사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마치고 이제 사모님이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는 기겁을 하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사모님의 비명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사모님은 말도 못하고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켰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나는 지금 막 도착했소.
헉 헉! 당신도 내일 이곳으로 오길 바라오.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추신: 그런데 이곳은 매우 뜨겁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적지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더 나은 본향'인 천국에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자기의 고향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고,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향을 알지만 찾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향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기 위해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고향을 떠났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에 순종해서 친척을 떠났고,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되었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자기의 고향은 곧 돌아갈 하늘나라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터 잡고 안주할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외국인이란 국적 없이 임시로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는 정착할 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127세에 죽었을 때에 헷족속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네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그래서 아브라함은 언제나 타향살이를 했고, 객지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에도 자기가 안주할 땅을 찾지 못하고 하늘을 생각하며 잠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그랬고, 야곱도, 요셉도 그랬습니다.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인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29:15).

이렇듯 이스라엘 민족의 전역사는 나그네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건너가서 430년 동안 타향살이의 슬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돌아갈 날을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안정이 되자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흩어져서 언제나 자기 조국을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거기에 안주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을 쳐서 2천년 동안 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집시와 같이 나그네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그네 민족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땅에 정착하지 말라.  너희는 모두가 나그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대부분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야 합니다.  동물들에게는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도 태어나서 자라고 온갖 추억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고향회귀본능이 있습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을 귀성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천국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요, 신령한 영적 귀성객들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고향 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힘이 듭니다.  야곱은 바로왕 앞에서 자신의 지나온 날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역경과 고난과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고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당합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길을 가로막는 진퇴양난의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극적으로 모면하기도 합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과 목마름으로 고통 당하기도 하고, 먹을 음식이 없어서 굶주림과 기아로 괴로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갈증과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40년간 혹독한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지를 확인하시기 위해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의 시험을 통과한 세대가 다시 가나안을 향해 행진할 때 요단강이라는 방해물을 만납니다.  그러나 훈련된 정금 같은 믿음과 순종으로 요단강이라는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리고 두께 6미터, 높이 10미터, 넓이 8500평의 여리고성 앞에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많은 피흘림과 전쟁과 희생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가정을 보십시오.  나오미의 가정은 유대 땅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과 한마디의 의논도 하지 않고 인간적인 판단만으로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갑니다.  나오미 남편의 이름은 엘리멜렉인데, 그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가장의 이름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가장 신앙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나오미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불신앙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가정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질병과 상실'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흉년이 지날 때까지만 잠깐 거류하려던 모압 지방에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냅니다.  그 동안 사랑하는 남편 엘리멜렉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돌봐줄 사람도 없는 두 자부와 나오미만 외롭게 남게 되었습니다.

모압 지방에서의 10년의 세월은 그들의 이름처럼 가난과 질병과 죽음과 상실의 세월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나오미가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기의 이름을 버리고 '괴로움과 고통'을 뜻하는 '마라'로 바꾸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이름을 '나오미', '기쁨과 희락'이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 '괴로움과 고통'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통해 나오미는 풍년이 든 유대 땅으로 보리 추수하는 때에 귀향하게 됩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엄청난 고통과 절규와 아픔이 뒤따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나오미의 가정이 고향 유대 땅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고 수난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상처를 받은 것처럼, 저 천국 본향에 들어가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와 희생이라도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 가장 커다란 복은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은혜는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 고향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죄가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맑고 깨끗한 영이 있는 곳입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하면 우리의 영적 고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청산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이 천국과 같이 되려면 작고 사소한 죄라도 버리고 정리해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긍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부정은 없고 긍정만 있는 곳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는 없고 긍정적인 사고만 있는 곳입니다.  비관적인 행동은 없고 낙관적인 행동만 있는 곳입니다.  '안 된다.  못한다'는 말이 사라지고 '된다.  할 수 있다'는 말만 있는 곳입니다.

네 번째, 우리가 바라보는 '더 나은 본향'은 영생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진홍같이 붉은 죄로 죽은 인간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찾게 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영원한 고향도 잃어버렸을 것이고, 영생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우리가 바라보는 더 나은 본향은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웃음이 있는 곳입니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린 얼굴과 심령과 가정은 천국을 잃어버린 지옥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웃음과 기쁨이 얼굴에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로 판가름납니다.

여섯 번째로, 우리가 바라보는 더 나은 본향은 은혜와 평강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천국 본향을 찾아가는 영적 나그네들의 삶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고향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셔야 합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부모님과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소망을 갖습니다.  그 동안 가보지 못했던 고향에 간다는 기쁨과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집니다.  누가 아직도 살아 계시고, 고향 땅은 얼마나 변했는지 호기심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천국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가든, 자가용을 타고 가든, 기차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무엇인가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고향에 갑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에 가려면 주님이 차장 되시는 구원열차를 타야 합니다.  거기에는 차표도 필요 없습니다.  차비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천국행 구원열차를 탈 수 있습니다.  천국 고향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적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고향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기억하십시오.  상급은 행함으로 받지만,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세 번째로, 고향에는 가족 모두 함께 가셔야 합니다.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혼자 가지 않고 가족들이 다함께 갑니다.  부모님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같이 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천국에 가고, 아들은 지옥에 가는 이산가족이 되는 이별의 아픔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모든 식구들이 우리의 영혼의 고향에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는 구원의 역사가 성도님들 가정과 집안 속에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나 혼자 가면 안됩니다.  명절에 혼자 고향에 가는 사람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결혼을 하지 못한 미혼이든지, 그것도 아니면 모두를 다 떠나보내고 이 땅에 혼자 남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가정에 불화가 있든지….  그것이 아니라면 가족은 결코 혼자 고향에 가도록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고 힘든 곳이라고 할지라도 온 가족이 함께 고향길에 나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는 나 혼자 가면 안됩니다.  혼자 가는 사람은 분명히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나은 영원한 하늘 본향을 결코 나 혼자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천국에 가고, 내 부모님이나 다른 형제들은 지옥에 가는 그런 영원한 이별의 주인공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술에 잔뜩 취한 젊은이가 한밤중에 길을 가다가 길에 서 있는 할아버지와 부딪쳐서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할아버지는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는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여기 저기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문을 연 병원은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젊은이는 할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와서 침대에 눕혔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마를 만져보니 너무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릴까봐 이불을 덮어드리고 그 옆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젊은이가 할아버지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는 순간 깜짝 놀라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다름 아닌 KFC 할아버지였습니다.  지난밤에 병원문이라도 열렸었다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술에 취해서 분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술에 취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개 망신당하기가 십상입니다.  술에 취하면 목적지에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해도 부모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지를 착각하지 않도록 세상에 취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에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기름부음의 역사를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다섯 번째, 부모님을 기쁘게 할 선물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빈손 들고 가지 않고 선물을 한아름 안고 가야 합니다.  고기, 과일, 옷, 심지어 용돈까지 준비합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 친지들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처럼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손을 먼저 보십니다.  그리고 손에 잔뜩 들려져 있으면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빈손 들고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도 손에 들고 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서 산제물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정성어린 선물이라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많은 영혼을 선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의 부모님은 내가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이 싸주시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에게 하늘에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많이 주십니다.  누르고 흔들어 차고 넘치도록 안겨 주십니다.

여섯 번째, 부모님을 기쁘게 할 소식을 가져가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부모를 모실 때 고부간의 갈등도 있고, 보이지 않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그릇에 맞게 효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빠릅니다.

부모님은 선물도 기뻐하시지만, 무엇보다도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남을 위해서 잘한 일을 들으면 무척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도 예배시간에 드리는 예물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구제하고 도와주고 희생한 일을 들으시면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실 소식을 가지고 나오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일곱 번째, 본향을 사모하고 현실에 충실하셔야 합니다.
고향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고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고향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다른 일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습니다.  가는 길목에 아무리 좋은 곳이 있어도 거기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은 세상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세상을 넘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의 고향과 우리들의 고향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원한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된다."(엡5:3)

그러나 본향을 사모한다는 것이 현실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과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많이 봉사하는 사람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사모한 사람들이다.  하늘에 목적을 두라.  그러면 땅을 자연히 얻을 것이다.  땅에만 목적을 두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현세에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하늘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하늘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덟 번째, 인내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향을 가는 사람들은 길이 막히고 교통이 복잡해도 참고 인내하면서 갑니다.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의 고향마을이라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견뎌내면서 달려갑니다.  교통지옥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날씨도 상관이 없습니다.  배고픈 것도 관계없습니다.  피곤한 것도 문제없습니다.  불평이나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고향 땅을 밟는다는 기쁨과 부모님과 친척과 옛친구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모든 상황을 견디게 해줍니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약속]이라는 책을 보면 제드 오웬이라는 장교가 인디언들과의 평화협상을 위해 12명의 일행을 이끌고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사랑하던 여인을 기지에 남겨두고 꼭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임무수행을 위해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런데 콜레라가 만연된 지역을 지나다가 그만 하나 둘씩 병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그는 죽어 가는 부하들과 사람들의 마지막 유언을 담은 편지들을 가방에 넣고 고향과도 같은 기지로 되돌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추위에 몸이 얼어붙고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하며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과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면서 길을 계속 갑니다.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희망을 가슴에 간직하고 힘들 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다시 힘을 내서 기지를 향해 갑니다.
 
맹수들이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디언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해서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의어 갑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이름도 모르는 풀뿌리를 캐먹습니다.  그런 모든 험악한 여건과 상황들을 극복하고 드디어 고향과도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기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길이 험난하고 고난의 가시밭길의 연속이라고 할지라도 제드 오웬처럼 소망과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천국 소망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다는 희망을 상실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꿈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하늘 고향에 도착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적 충전을 하셔야 합니다.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들은 휴게소에 들러서 차에 기름도 넣어야 합니다.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아야 한다.  음식을 사먹어야 합니다.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갑니다.  만약 쉬지 않으면 힘들어서 건강에 무리가 가서 몸을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피곤한 상태로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휴게소에서 쉬면서 담소도 나누고, 가벼운 산보도 하고, 운동으로 몸을 풀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힘이 나면 또다시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믿음의 사람들도 중간 중간에 쉬면서 가야 합니다.  쉼과 휴식은 영적 순례의 길에 꼭 필요합니다.  교회는 천국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이 이 세상에 흩어져 살다가 주일날 모여서 힘을 공급받는 영적 휴게소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늘나라가 고향인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광장입니다.
 
여기에서 하늘 고향의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와 고향집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기도를 통해서 좋은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힘과 용기와 소망을 얻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을 힘차게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는 천국 지향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나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고향, 영혼의 고향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영생의 삶을 사는 천국백성이 되기 위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순례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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