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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한 번 더 주어진 기회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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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주어진 기회 (히 12:14~17) 
 
 
설레게 맞이한 새해도 벌써 25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또 내일이 설이라고 합니다. 이게 왠 은혜인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민족은 설을 신정과 구정이라고 해서 두 번이나 지냅니다. 그 동안 이중 설의 문제로 인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정서가 두 번의 설을 존재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정과 구정 사이에 어정쩡한 새해 나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신정과 구정을 오가면서 어떤 결단과 결심을 하는데 시간을 벌기도 합니다.

올해도 신정과 구정 사이에 26일이라는 시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정과 구정 사이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조석변하는 마음을 아시고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쉽게 결단을 하나 또한 그 결단을 쉽게 저버리고 마는 민족성을 하나님이 아시고 두번의 설을 주셔서 다시 재결단하고 재확인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왕에 두 번 맞고 보내는 설인데 이것을 기독교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신년 초에 세운 계획과 그 결단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약점을 잘 아시고 다시 한번 결단을 하고 기회를 잡으라고 우리 민족에게 두 번의 설을 주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 번 더 주신 이 은총의 기회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은혜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모든 사람과 더불러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먼저 가정과 교회 내에서 모든 가족과 성도들로 더불어 할 수 있는 대로 금년에는 화평하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했습니다. 그러므로 롬 14:19절 말씀과 같이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하는 것입니다.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그리고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도가 아무리 화평하고 단합이 잘 된다 하여도 거룩하지 않은 모습으로 결속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거룩하게 하려 하심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살전 4: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된 살전4:8에서는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하셨습니다. 


둘째로 벌써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아닌가 살펴보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5절 상반절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그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 있을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거절, 불신앙,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 등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있는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서 은혜를 받되 충만히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은혜 아래 살 때에 죄의 법에서 해방을 받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서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스스로 쓴 뿌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5절 하반절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했습니다. "쓴 뿌리"는 쓴 줄기를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그 쓴 뿌리로부터 쓴 기운이 줄기를 타고 솟아 올라와서 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쓴 열매는 다른 열매들도 쓰도록 오염을 시킬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쓴 뿌리 성도, 쓴 뿌리 신앙은 이처럼 전염병과도 같아서 다른 신앙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나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지나치게 육신적이고 현세적이어서 거룩한 것과 신령한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본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육신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시하고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나치게 육신을 경멸하고 현세적인 것을 무시함으로 말미암아서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날 동안은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이런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누릴 수 있는 복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여자의 남편도 되어보고 아버지도 되어보고, 부귀영화도 꿈꾸어보고 이루어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입니다. 한 여자로 태어났으면 한 남자의 아내도 되어보고 어머니도 되어보고 아름다운 행복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어보는 것도 소중한 것입니다. 
  
눈이 왔으면 눈밭에서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해보는 것, 
산이 있어 산에 오르고 바다가 있어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는 것은 결코 죄악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인하여 예수를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문제는 지나치게 육신적이고 현세적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인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설날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주신 결단의 기회로 여기시고 그 기회를 잡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회는 자꾸 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때때로 아무 소용이 없을 수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번 구정이 자신의 생애에서 마지막 구정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한 바를 성실히 지켜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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