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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과 교회의 내기 (왕하 18: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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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교회의 내기 (왕하 18:17~25)


1. 내기

옛날, 나무꾼 두 사람이 내기를 했습니다. 정한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나무를 베는지를 겨루기로 한 것입니다. 내기가 시작되자, 한 나무꾼은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어떻게 하고 있나’를 보고 싶어서 경쟁자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의 경쟁자는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한 번 씩 쳐다보니까 친구는 나무를 베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자신은 쉬지 않고 나무를 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정해진 시간이 다 흘러 서로 벤 나무의 양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쉬지 않고 나무를 벤 나무꾼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였으나, 결과는 놀랍게도 쉬어가면서 나무를 베었던 상대 나무꾼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나무꾼은 승리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쉬엄쉬엄 나무를 베었고 나는 쉬지도 않고 죽자 사자 나무를 베었는데, 어떻게 자네가 더 많이 벨 수 있었는가?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자 내기에서 이긴 나무꾼이 말했습니다.
“비결은 무슨! 나는 나무를 베다가 잠시 쉬면서 무뎌진 도끼날을 그때그때 갈았을 뿐이네.”

여러분, 무조건 일만 한다고 이기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쉬면서 하되, 오늘 여러분처럼 주님 안에서 예배를 통한 이 창조적인 쉼이 결국 인생 경쟁에서 여러분을 승리자로 만들어 줄 줄 믿습니다.

오늘 제가 “내기”라는 주제로 설교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23절에 “이제 너는 내 주 아수르 왕과 내기하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 주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내기를 걸어왔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그리고 성도 여러분을 향하여 내기를 걸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세상과 교회의 내기 

1) 아수르와 이스라엘의 내기

❶ 오늘 본문 앞부분인 열왕기하 17장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수르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17:1~6).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수르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그들이 떠난 이스라엘의 도시와 촌락에는 아수르에 의해 강제 이주된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17:7,8).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 은밀하고도 공공연한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17:9~12). 

세 번째 이유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했기 때문입니다(17:13~15).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참으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인 금송아지 숭배, 바알과 아세라 숭배, 자신의 자녀를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몰록 숭배 등 우상 숭배를 자행했기 때문입니다(17:16~18). 

이런 이유들로 북 이스라엘은 210년의 역사를 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북쪽 이스라엘의 등불은 꺼져버렸습니다. 열왕기하 17장 18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는 말씀처럼 10개 지파의 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이제는 유다와 베냐민 두 개 지파의 유다 나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남은 유다마저도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7장 19절,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뿐 아니라 남 유다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버려 결국 진노를 받아 멸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했는데(사42:3), 유다에게는 아직까지 기회가 남아있었습니다. 

❷ 그 기회란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히스기야 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비록 상처받은 갈대지만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살아남듯이, 비록 가녀린 등불이지만 태풍에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듯이, 유다가 꺾이지 않도록, 유다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그 역할을 히스기야 왕이 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 왕은 아주 악독하고 불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히스기야는 열왕기상 18장 3절, 5절에 있는 대로「다윗」왕에 비견되는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른 사람, 똑바로 사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도는 사람이 보기에도 발라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에 바르고 옳으며 경건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눈에 바르고 옳고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하나님에게서부터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늘 하나님 생각이요, 늘 말씀에 순종했으며, 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히스기야 때문에 유다가 꺾이지 않고 유다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도 이와 같이 되시기 바랍니다.

❸ 히스기야 왕과 유다의 위기

그러나 이러한 히스기야에게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 온 것입니다. 막강한 아수르 군대는 유다의 성읍들을 하나씩 공략하여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나라세우기’, ‘신앙개혁’, 그리고 ‘역사바로잡기’를 잘 하고 있었지만 이 위기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 공격 앞에 나라 내부의 문제로 진을 다 쏟은 히스기야는 타협을 하고 맙니다. 

히스기야는 아수르 왕에게 전적인 복종을 전제로 협상을 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은 300 달란트(1만kg)와 금 30 달란트(1천kg)를 바치면 물러가겠다’는 아수르 왕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성전과 왕궁에 있는 은과 성전에 입힌 모든 금을 벗겨 아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히스기야가 범한 실수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께 ‘어떻게 할까요?’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수르의 공격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바라며 ‘한 번 해보자’하고 맞붙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보다는 아수르 왕과 자신의 인간적인 판단을 더 신뢰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한 결과 그 다음은 형통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삶의 위기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하면 위기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아수르 왕이 요구하는 대로 했기 때문에 위기는 다시 그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닥친 위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먼저 유다를 침공하여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막대한 은과 금을 받고 물러갔던 아수르의 군대가 다시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 군대를 이끈 무리들은 다르단(Tartan), 랍사리스(Rabsris), 랍사게(Rabshakeh)라는 사람이었는데요. 이것은 모두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아수르의 관직 이름이었습니다. 

‘다르단’은 아수르 군대의 직위와 관련된 공식적인 직명으로서 아마 총사령관을 뜻하는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랍사리스’는 그 문자적인 의미가 ‘내시장(內侍長)’인 것으로 보아, 아수르 군대 내의 제2인자를 지칭하는 직명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랍사게’인데요, 이 직명은 군대의 직책이 아니라 왕궁의 직책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랍사게가 전면에 나서서 유다를 상대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렇고, 히스기야 왕이 랍사게를 “아수르 왕의 신복”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습니다(19:6). 아무튼 이 세 사람이 185,000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19:35) 이스라엘을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공격을 해 온 아수르 측에서 바로 이 ‘거지 발싸게’도 아닌 ‘랍사게’가 군대 앞으로 나와서 마치 골리앗처럼 전쟁을 부추기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말을 퍼부었습니다. 이 랍사게에 맞서서 유다 측에서 나선 사람은 행정 책임자로서 ‘총리’와 비슷할 것으로 보이는 ‘엘리야김’, 왕궁의 모든 조서와 공문서를 담당하던 서기관 ‘셉나’, 그리고 왕국와 궁의 역사를 책임지고 있던 사관 ‘요아’였습니다. 이들을 본 랍사게의 말이 오늘 본문 19절부터 나옵니다. 

‘빨리 항복하라. 왜 항복하지 않느냐? 뭔가 믿는 것이 있고, 혹 누군가를 의지하고서 망설이는 것이냐? 만약 애굽을 믿는다면, 상한 갈대와 같이 믿을 수 없으니 애굽을 바라지 말아라. 혹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느냐? 그것은 무익한 짓이다.’ 그러면서 또 랍사게는 유다를 향하여 ‘우리가 너희에게 말 2,000 필을 줄테니 너희 중에 싸울만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라. 아마 공짜로 말을 주어도 탈 사람이 없을 걸!’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롱과 비난, 그리고 전쟁을 부추기는 랍사게의 말은 아수르 말이나 아람 말이 아니라 유다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다의 군인들과 백성들이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김, 셉나, 요아가 ‘유다말로 하지 않고 아람말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람 말로 해도 우리가 다 알아들을 수 있고, 그 내용을 충분히 히스기야 왕에게 전할 것이니까 제발 그리 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오히려 더 크게 유다말로 외쳤습니다. ‘안심하라’ ‘기다려라’ ‘힘내라’ ‘흔들리지 말아라’고 말하는 히스기야 왕의 말과 그를 의지하지 말아라. 또 너희가 자꾸 ‘하나님 하나님’ 하는데 우리가 올라온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너희가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32~35).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는 ‘히스기야의 말은 어리석은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아수르가 공격하여 이긴 뭇 나라와 민족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들 나라가 섬기는 어떠한 신이라도 아수르 왕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건진 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즉 열국 중 어느 나라의 신도 자기 백성을 구하지 못했듯이 여호와 역시 예루살렘을 지켜주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아수르 왕을 대신한 이 거지 발싸게 같은 랍사게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웃기고 있네! 여호와는 너희들의 신일뿐이야. 교회와 신자들에게나 통하는 신이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싸움에서는 별 힘도 쓰지 못하는 신이야!” 심지어 “여호와는 아수르의 신보다 못한 신이요, 나아가 아수르 왕보다도 못한 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히스기야 왕을 의지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 너희와 너희 지도자와 너희 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내기해 볼래?”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23절에 나와 있는 “이제 너는 내 주 아수르 왕과 내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정말 치욕스러운 내기요 도전이요 도발입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너희의 신일 뿐 우리에게는 아무 힘도 못쓴다, 너희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항복해라!’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런 식으로 내기를 걸어오고, 도발을 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오늘도 세상은 내기를 걸어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상황, 히스기야 왕과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백성들이 당한 상황이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창세 이후로 이러한 내기와 도발은 항상 주님의 백성에게 있어 왔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교회와 여러분을 그냥 별 생각 없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이 세상과 원수들은 아수르 왕과 그의 신하들과 군대들처럼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지난 21일 새벽 2시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가 오바마 대통령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이냐? 중동 문제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등 이슬람권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리고 핵을 가지고 미국과 동아시아를 쥐었다 폈다 하는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이냐?’를 지켜보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성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드러내어놓고 내기를 해오면 차라리 좋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비판의 눈으로 교회와 성도를 바라보면서 무언의 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주목하고 있고요, 여러분의 직장에서 정말 많은 눈들이 여러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너희 하나님이 살아계시냐?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뭐가 다르단 말이냐? 우리 신을 믿는 우리와 하나님을 믿는 너희와 한 판 붙으면 너희가 우리를 이길 수 있느냐? 여러분, 이러한 내기와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하시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 옆에 뭔 보살집이 들어와 있어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내기요 도발입니다. 여러분, 만약 저들이 ‘우리가 교회 옆에 있어도 아무런 탈이 없더라.’ 한다면,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저 사람들이 그냥 떠나기보다는 예수님을 믿고 스스로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저들이 스스로 우상을 버리고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결국은 승리할 것이지만 그래도 내기는 계속된다

이제 다시 오늘 본문의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공격해 와서는 내기를 건 아수르 군대와 유대와의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났습니까?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사탄이 걸어온 내기, 원수가 걸어온 내기, 세상이 걸어 온 내기에 대해 히스기야와 당시 말씀의 종인 이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9장 34절 이하에 그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나라와 히스기야 왕과 그 백성들을 아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인데, 무엇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즉 유다 백성이나 히스기야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수르 왕과 그 신하들이 하나님 자신을 향하여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로 어느 후배 목사님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 교회 교역자 한 분을 아주 나무라시더라고요. 그 교역자가 조금 잘못한 것도 같았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야단을 치니까, 제가 야단을 맞는 기분이었고, 저를 욕하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더 길게 했으면 저도 한 마디 할 뻔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성도를 향한 내기와 도전은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입니다. 즉 성도의 싸움은 성도 여러분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이겼듯이 여러분도 이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다윗을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는 신실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관계를 맺은 모든 성도들을 지키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십팔만 오천” 대군인 아수르 군대를 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아수르 왕 산헤립은 니느웨(Nineveh)에서 그 신 니스록에게 경배할 때에 자신의 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에 의해 죽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주 확실하고 깨끗하게 하나님과 그 백성을 향하여 내기와 도발을 해 온 무리들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향한 도전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세상이 그 어떤 도전을 해오고, 별별 내기를 다 걸어와도 여러분은 그들을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이 내기와 도전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아수르의 첫 번째 공격 때 인간적인 방법을 썼다가 쫄딱 망했지만, 두 번째 공격 때 하나님의 방법대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결과 이긴 것이 바로 그 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과 가까이 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 충만하여 세상의 그 어떤 도전도 다 물리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내기에서 승리하라!

내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 남자가 비행기를 탔는데, 마침 옆 자리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앉았습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안정궤도에 들어서자 이 남자가 그녀에게 내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피곤해서 그 남자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정말 재밌고 쉬운 게임’이라면서 게임을 하자고 졸랐습니다. 
“정말 쉽고 간단한 게임이거든요. 서로 질문을 해요. 그리고 대답을 못하면 100원을 주는 거죠.”
그래도 그녀는 거절을 하고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했습니다. 

“좋아요! 그럼 아가씨가 대답을 못하면 100원을 저에게 주고, 제가 대답을 못하면 500만원을 드릴께요!”
게임에 응하지 않으면 끈질긴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가씨는 500만원이라는 말에 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달에서 지구까지 거리가 얼마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지갑에서 100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물을 차례였습니다. 
“언덕을 오를 때는 다리가 세 개고, 언덕을 내려 올 때는 네 개이며, 다 내려왔을 때는 다섯 개인 것이 뭐죠?”

이 질문에 그 남자는 당황했고,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더니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료를 다 뒤졌습니다.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하자,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벌써 잠이 든 아가씨를 깨우고는 그녀에게 500만원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맙다’는 한마디를 하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잠시 열을 식힌 이 남자, 그녀를 깨워서는 물었습니다. 
“아니, 대체 답이 뭡니까?”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100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으셨습니까? 그 아가씨는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질문을 해댄 것입니다. 그러니 답을 찾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 남자가 답을 묻자 모른다는 뜻으로 그 남자가 요구한 100원을 준 것입니다. 결국 누가 이긴 것입니까? 귀찮게 내기 게임을 걸어온 그 남자가 진 것이고 거금 500만원을 잃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오직 성령으로 충만할 때, 이렇게 승리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그 어떤 도전, 세상의 그 어떤 유혹, 사탄의 그 어떤 미혹에도 이길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드러내고 도발을 해오던 아님 보이지 않는 침묵적인 도전이건 간에, 주님의 이름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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