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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사를 행하리라 (수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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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행하리라 (수 3:1~6)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석방된 후 세계를 순회하며 전도하는 여생을 보냈습니다. 소련이 공산 체제 아래 있을 때 그녀는 성경을 가방에 가득 담아 소련에 가서 나누어주기로 결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방에 가득 채워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는 소련에 도착하였고, 탑승객들은 세관에서 짐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코리 여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는 순간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세관원의 눈을 멀게 하셔서 가방 속에 담긴 성경을 발견하지 못해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관원이 코리 여사를 보더니 말합니다. "이게 다 할머니 짐이에요? 할머니께서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시는군요. 제가 좀 들어 드리지요." 그는 성경이 가득 든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번쩍 들어 택시 타는 곳까지 친절하게 옮겨 주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기적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기적들로 가득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들어가는데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우리 앞에도 물질적 어려움, 육신적 질병, 능력의 부족, 돕는 사람이 없는 것 등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얼마나 많이 놓여 있습니까?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기적의 내용입니다. 요단강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강물이 범람하는 시기에 요단강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요단을 건너는 기적을 보여주면서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기적은 생각을 바꿉니다. 관념적으로 믿던 신앙생활을 체험적 신앙생활로 바꾸어놓습니다. 역동적인 신앙생활로 바꾸어 놓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아신 하나님은 기적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우리들을 위해 기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사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명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결해야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갑자기 추락하였습니다. 지나가던 선교사가 살펴보니 총이나 활에 맞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발을 벌려 보니 족제비 한 마리가 배에 붙어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먹이를 찾던 독수리는 족제비를 낚아채 가슴에 안고 공중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족제비가 독수리의 심장을 찢어 놓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기도 하고, 정상에서 곤두박질하기도 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심장을 갉아먹는 죄악된 습관과 생각을 껴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끊을 것을 과감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기적을 바란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여기의 '성결하다' 는 '카다쉬' 는 '구별하여 바치다, 거룩하다' 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으라는 뜻이 아니라 거룩한 목적을 이루는 자격을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요단은 거룩한 믿음의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지 못하면 건널 수 없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보고 두려워 떨면 건널 수 없습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거룩한 시선이 없으면 건너지 못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나안의 축복을 소유하려면 성결해야합니다. 광야의 습관, 불순종, 우상숭배, 온갖 더러운 삶을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적인 것이 혼합되어지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불로 응답하는 엘리야의 제단 번제물 위에 열두 통 물을 갖다 부으라 명하심도 인간의 가능성을 배제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체험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온전한 헌신이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삶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이 갈라지기 원하십니까? 바쁜 것 멈추고 회개함으로 성결한 삶을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적에 앞서 성결을 원하셨습니다. 성결함이 요단을 건넘보다 앞서고, 가나안 정복보다 앞서고, 기업의 분배보다 앞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좇아가야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의 단편소설 '두 노인'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핌과 예리세이라는 두 노인이 성지순례를 떠나게 됩니다. 예핌은 부자이면서 욕을 하지 않고 살았으며 담배도 피지 않고 매사를 꼼꼼히 챙겼습니다. 반면 예리세이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담배도 즐겨 피웠으며 친절하여 마을사람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예핌은 성지순례를 떠나면서 돈 걱정, 일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리세이는 기뻐하며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빨리 갔다 오기를 원하던 예핌은 마을에 들러 목을 축이고 가자는 예리세이를 두고 혼자 갑니다. 곧 뒤따르기로 하고 물 한 모금 먹으려 들어간 예리세이는 질병과 기근으로 죽어가는 한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차마 되돌아 나오지 못하던 예리세이는 여행 경비를 털어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말을 사주고 밭을 얻어 주고 빚까지 갚아 줍니다. 그리고 성지순레를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옵니다. 먼저 떠난 예핌은 성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혹시 예리세이가 왔는지 살폈습니다. 

어느 날 많은 인파 속에서 중앙 상단 그리스도 관 옆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예리세이의 모습을 사흘에 걸쳐 보게 됩니다. 기도하는 예리세이의 모습은 찬란히 빛났습니다. 그를 만나려 했지만 번번이 놓친 예핌은 돌아오는 길에 예리세이가 들렀던 마을에서 그의 행적을 듣게 됩니다. 비록 예루살렘에 가지 못했지만 예리세이는 이미 하나님 곁에 머물렀고, 평생 남한테 욕 한 번도 하지않고 예루살렘 성지를 단숨에 가고 싶었던 예핌은 하나님께 머물지 못하고 현실 속에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 소원인 성지순례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말씀을 좇아가기로 결단하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으며 구제했던 예리세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말씀을 좇아가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여기의 '궤 뒤를 좇으라' 는 원어의 의미는 '사람을 보지 말라' 는 뜻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언약궤를 '증거의 궤(The ark of the witness)' 라고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 하나님의 능력으로 못 하실 일이 없다는 증거,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위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든 능력주시는 주님의 뒤를 좇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요단을 열어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던 기적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나아가야

애창곡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는 초등학교 2학년 중퇴가 고작인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어빙 버린(Irving Berlin)입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축출을 당한 유대인 가정이었습니다. 네 살때 미국으로 건너간 버린의 가족은 선창가의 쓰러져 가는 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 작곡가가 될 것이라는 비전으로 작곡에 힘을 쏟았습니다. 

어느 날 소경의 손을 잡아 길을 건네주었는데 그 소경이 계속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즉시 소경의 흥얼대던 가락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 바로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입니다. 이 노래가 전파를 타고 세계로 알려지면서 버린의 인기는 치솟게 됩니다. 급기야 브로드웨이의 작품까지 쓰게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버린은 형편이 나아지자 작곡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결국 1929년 미국 대공황이 닥치면서 빈털터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때 버린은 생각합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잃어버렸으니 좋아하는 작곡만 열심히 할 수 있지 않는가" 라며 곡을 만들어 발표하였는데, 그가 남긴 히트곡이 무려 8백여곡에 이릅니다. 그 중에 유명한 곡이 '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입니다. 그가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물이 멈추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흐르는 요단강에 들어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을 보이라는 명령입니다. 믿음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과학이 보고 믿는 것이라면 신앙은 믿고 보는 것입니다. 강물이 멈춘 것을 보고 들어서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은 물에 들어 설 수 없으나 믿음은 들어 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강이 갈라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길이 열려지게 됩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서니 강물이 멈추며 갈라졌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이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올인(All-In)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작은 믿음으로는 절대로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흐르는 요단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로지 성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좇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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