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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늘 푸르게 하시는 하나님 (시 9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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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늘 푸르게 하시는 하나님 (시 92:12~15)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높은 뜻 푸른 교회 여러 성도님들 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가 분립 된지 한 달 만에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정말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1월 첫 주일 저는 동백에 있는 높은 뜻 하늘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세 교회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문 목사님이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목사님 1부 예배부터 터졌습니다.’ 하늘교회에서 2부 예배까지 드리고 교회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전날 잠을 좀 설쳐서 조금 피곤했습니다. 사실 많이 피곤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차는 자동적으로 푸른 교회 3부 예배가 드려질 종로 5가 백주년 기념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백주년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우리 청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 석 가까이 되는 강당은 결국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꽉차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만루 홈런을 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역전 만루 홈런. 분립하는 첫 날부터 우리 높은 뜻 교회는 폭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예배에 은혜가 넘쳤고 모든 교회가 다 활력에 넘쳤습니다. 한 주일에 한 교회씩을 돌며 예배드리고 설교하는 것이 너무, 너무 즐겁습니다. 기다려집니다. 하늘 교회 예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오늘 하늘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높은 뜻 하늘 교회는 예배 환경이 가장 복잡합니다.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아이들은 청어람에서, 어른들은 문학의 집에서 청년들은 제법 떨어져 있는 백주년 기념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날 한 번의 예배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준비와 수고를 하여야 하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더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고생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들이 이와 같은 생고생을 사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셔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높은 뜻 교회가 건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성전은 정말 아름답게, 그리고 아주 기적적으로 잘 건축되어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의 제일 첫 번째 사업인 열매나눔재단은 첫해부터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은 저희 교회가 20억 원을 투자하고 5년 동안 매년 10억 원씩을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허락을 받은 재단입니다. 지난 한해는 우리 교회가 헌금한 10억 원이 수입의 전부이어서 결산도 그 범위 안에서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해 우리 재단이 결산한 금액은 약 42억 원 정도였습니다. 개인 후원도 좀 있었으나 나라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나라와 기업의 지원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계획서와 지원서를 제출하고 엄격한 심사와 경쟁을 거쳐서 속된 말로 따내는 것입니다. 신생재단이라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지원금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원금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하여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우리가 예상하고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일이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새터민을 위한 공장도 두 개나 세워졌고 최소한 올해 한 개의 공장이 더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서울시와는 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한 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데 시와 기업과 재단이 아주 이상적으로 결합이 되어 많은 장애인들과 새터민을 고용할 수 있는 사업을 올해 안에 시작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 높은 뜻 교회의 작은 헌신과 희생을 크게 보시고 정말 우리의 헌신을 마중물처럼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열매나눔재단 뿐만 아닙니다. 열매나눔재단의 모태가 되었던 중구자활센터의 운영도 성공적입니다. 우리들의 밑천나눔운동과 헌금이 모태가 되어 생겨난 중구자활센터도 아주 건강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중구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김밥천국과 이동세차입니다. 그 다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행복도시락 사업입니다. 이 모든 사업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행복도시락 사업은 자활센터들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에 일등을 하였고, 김밥 천국은 3등을 하였답니다. 여러분들의 밑천나눔헌금이 씨앗이 된 중구자활센터를 통하여 크던 작던 매달 월급을 받는 사람의 수가 백 명을 넘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이 자리 잡히면 본격적으로 하려고 준비만 하고 있는 통일을 준비하는 사역이나 인재를 양성하는 사역도 아주 건강하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완성되면 정말 근사할 겁니다. 비록 우리가 예배 처소가 없어서 이곳, 저곳에서 눈치를 보며, 가끔 설움도 당하며 예배를 드리지만 그 작은 희생과 헌신 때문에 얻는 유익과 축복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정말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예배당은 없어서 이곳, 저곳에서,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아가면서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는 교회대로 더 성장하고, 성장할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해지고 있고, 예배는 예배대로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보다 더 은혜스러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인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은 벌써 눈에 보이리만큼 놀랍게 건축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 열납 하시는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처럼 하나님이 기뻐 흠향하시는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설교 시간에만 설교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일, 그리고 우리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설교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설교를 들으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귀로 받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받으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4부 청년예배 때 늘 마지막 찬송을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양의 가사 중에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그 찬양을 청년들과 함께 부르면서 그것이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미래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벌써 그 찬양의 가사 대로 푸른 의의 나무들이 점점 가득차 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높은 뜻 푸른 교회라는 이름이 참 좋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뜻 푸른 교회에는 청년들이 많아서 높은 뜻 푸른 교회인가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많이 모이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감사하기는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의 푸름은 나이가 아닙니다. 청년들의 젊은 나이로 만드는 푸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푸름은 나이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나이가 많아도 푸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푸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꿈을 꿉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꿈꿀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함부로 살면 젊어도 추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강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약합니다. 우리를 꿈꾸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강하게 하고, 푸르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나이 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가난해도 훌륭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부함도 절대로 우리를 훌륭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출세와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믿음 위에 있을 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 믿음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nothing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는 우리의 젊음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자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랑할 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의인이란 믿음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의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의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전에 심기운 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높으신 뜻과 말씀에 우리의 삶의 뿌리를 내립니다. 우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린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뿌리는 세상에 내리고 가지만 하나님의 전에 드리웁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에 심기운 나무가 아닙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가지를 하나님께 드리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으로 자기의 뜻을 삼고,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으로 삶의 원칙을 삼아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만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은 풀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92년 7절 상반절에 보면 ‘악인은 풀 같이 자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풀은 나무보다 쉽게 자랍니다. 빨리 자랍니다. 근시안적인 눈으로 보면 나무보다 풀이 더 잘됩니다. 그러나 그래 보았자 풀입니다. 흥왕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금방 쇠합니다. 그래서 시편 92편 7절 하반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 즉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심기운 나무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성장할 것입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입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아멘. (시 92:12-15)

악인 잠시 풀같이 성장하는 것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의인의 성장이 풀과 같이 빠르지 않음을 답답해하면 안 됩니다. 의인의 길은 좁은 것 같아도 넓으며, 악인의 길은 넓은 것 같아 보이나 좁습니다. 악인의 길은 빠른 것 같으나 더디며, 의인의 길은 더딘 것 같으나 빠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좇아 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되고 맙니다. 여호와의 율법 즉 높은 뜻을 즐거워하며 살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집니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흉내 내면 안 됩니다. 악인은 악인의 식이 있고, 의인은 의인의 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우리들의 예배당부터 짓지 않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보이지 않는 성전부터 짓는 것도 그것이 세상식과 다른 하나님의 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식과 뜻을 고집하다가 결국 하나의 교회가 네 쪽이 나고 말았지만, 네 쪽이 나면서도, 본 교회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뜻 숭의교회를 없애면서까지 하나님의 식을 고집했더니, 네 쪽 난 교회가 하나였던 교회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하나였던 교회가 시원치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였던 높은 뜻 숭의교회도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교회를 포기했더니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교회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크게 멀지는 않아도 그래도 미래인 줄만 알았던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이 우리의 현재 속으로 들어오는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의 교회를, 우리의 삶을 푸르게 하시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높은 뜻 숭의교회를 높은 뜻 푸른 교회가 되게 하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쉬워 보여도, 아무리 넓어 보여도 세상에 우리의 뿌리를 내리지 마십시다. 그 길로 가지도 말고, 그 자리에 앉지도 말고, 흉내도 내지 말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십시다. 삶의 뿌리는 세상에 내리고 가지만 교회에 드리우고 사는 형식적인 교인이 되지 마십시다. 힘들고 어려워도, 때로는 죽고 망할 것 같아 보여도 뿌리를 굳게 하나님의 전에 내리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십니다.

우리 교회의 뿌리를 하나님의 전에 내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는 마치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백향목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시냇가 심기운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열매들을 새터민들과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과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왜 우리 교회는 용산사건과 같은 일에 대하여 침묵하느냐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삶과 열매를 나누기 위하여 실제로 실천하는 교회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아직 많이 부끄럽기 때문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높은 뜻 푸른 교회라는 이름이 참 좋습니다. 그런 좋은 이름을 쓰려면 이름 값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이기 때문에 높은 뜻 푸른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뿌리를 하나님의 전에 내린 교회이기 때문에 높은 뜻 푸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뿌리는 세상에 내리고 가지만 하나님께 내린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뜻 푸른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높은 뜻 푸른 교회 교인들은 다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원칙과 정신을 고집해야만 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해체하고 높은 뜻 네 교회로 분립하는 고집을 실제 생활과 삶에서도 부리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늙어도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뿌리는 세상에 내리고 가지만 하나님께 드리우는 삶이 아니라,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고 가지를 세상에 드리우고 사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세상의 꾀와 요령을 멀리하고 악하고 오만한 자리에는 서지도 않고 앉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높으신 하나님의 뜻과 법만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늘 푸른 삶, 늘 번성하고 성장하는 삶,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열매를 만민이 먹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푸름이 세상을 물들여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세상을 온통 하나님의 푸른 빛으로 물들여가는 청어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를 늘 푸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높은 뜻 푸른 교회입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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