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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모두가 기도할 때 (렘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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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두가 기도할 때 (렘 33:1~3)


(렘 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렘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요즈음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사방이 막힌 사면초가 같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고 수출은 막히고 내수는 침체되고 실업률의 증가와 취업난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정황은 정말이지 사방이 막힌 사면초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안타깝고 답답한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주전 588년경 유대나라의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던 시대가 바로 그랬습니다. 당시 그의 조국 유다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고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선지자 자신은 조국의 운명을 예언하다가 왕실의 감옥에 갇힌바 된 것입니다. 

렘32:2을 보십시오.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에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나" 그는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할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일까요? 

1. 지금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나가려는데 부하가 "각하,목사님을 모셔다가 기도를 하고 나가시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필요 없어.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야. 전쟁과 하나님은 아무 상관이 없어."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수많은 부하들이 죽었고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영국의 해군 제독 넬슨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는 성경 말씀을 외우며 믿었고 전투에 나가기 전에 군목과 함께 갑판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쟁을 이기게 하셨고 그 결과로 영국이 살고 자기도 살고 부하들도 살았습니다. 같은 장군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장군과 자기를 의지하는 장군의 종말은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시 91:15).

사면초가에 처할 때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때의 기도는 일상의 기도가 아닌  부르짖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일상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비상한 상황은 비상한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에게 본문 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된 가장 특별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나도 위는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열려 있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하고 부르짖는 순간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순간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기도의 날개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과연 이런 특권을 행사하며 하늘을 향해 나래를 펼치며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은 우리는 소소한 일상에서 어느 정도 기도를 하면서도 정말 어려운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꿩은 날개를 가지고 잘 날아다니는 새입니다. 상당히 높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날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꿩은 위험에 직면하면 당황해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땅을 걸어서 도망가다가 다급하면 머리를 쳐박고 맙니다.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상대도 못보는 줄로 아는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쉽게 잡히는 참 바보밭은 새입니다.  정말 날아야 할 때 날지 못하는 꿩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의 날개를 주셨는데 정작 간절히 부르짖으며 높이 날아올라야 할 때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낙망하며 고개를 쳐박고 스스로 위험에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러분, 기도의 날개를 펴 보셨습니까? 큰 일이라고 하면서 왜 기도하지 않으시나요? 가장 어려운 지금이야 말로 기도할 때가 아닌가요? 그냥 기도할 때가 아니라 부르짖어 기도할 때가 아닙니까?  모두가 어렵다고 불안해하며 염려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우리 나라를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우리의 직장과 사업장을 위해,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지금 우리는 기도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간절히 기도했다면 이제 기대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은 응답을 기대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응답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 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2절에 의하면 그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또한 약속한 바를 반드시 만들어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여호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응답을 확실히 믿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말 응답을 기대하면서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 생활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그냥 기도할 뿐이지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마을에 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술집 건너편에 있는 교회에서는 이 술집이 없어지도록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술집은 손님이 줄고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술집 주인은 인근 교회가 자기 술집이 망하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화가 난 술집 주인은 교회를 걸어 법정에 고소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술집이 망해 없어지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되고 문을 닫게 되었으니 배상을 하라고 말입니다. 법원에서 희한한 문제로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일은 판례도 없고 판결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은 교회에다 대표를 한 사람 법정으로 출두하라고 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어 재판장은 교회 대표에게 '정말 술집 문이 닫히도록 기도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교인 대표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기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우리가 기도했다고해서 정말 술집이 망했겠습니까?" 판결이 어떻게 났을까요?  "술집 주인은 믿음이 좋음. 교회는 믿음이 없음." 혹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현주소는 아닌가요? 여러분도 기도 응답을 기대하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 응답을 정말 믿어야 합니다. 

조시 맥도웰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우울해졌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는 "주님, 제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제게 답을 알려 주세요. 전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불가능한 간구처럼 보였습니다. 
  
이틀 후 조시는 바닷가로 운전해 나가 혼자 있으려고 부두의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거기에 어떤 할머니가 야외용 의자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고향이 어딘가요?"라고 그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조시는 "미시간 주, 유니온 시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그 근처에......"라고 답하는 순간, 그 할머니는 "배틀 크릭 말이군요."라고 말을 끊으며 "그곳에 내 사촌이 있어요. 맥도웰 집안을 아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조시는 "알고 말고요. 제가 조시 맥도웰인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럴 수가. 나는 네 엄마의 사촌이란다."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조시는 "혹시 제 어머니의 영적 생활에 대해서 좀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네 엄마와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십대였을 때, 우리 마을에서 천막 부흥회가 열렸었지. 우린 함께 앞으로 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했어."라고 그녀가 말해 주었습니다. 조시는 "하나님, 찬양합니다!"라고 근처의 낚시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쳤습니다.

  
3. 우리는 크고 비밀스런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본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한 응답이 아닌 크고 은밀(비밀)한 일의 응답을 약속합니다. 여기 본문에서의 그 크고 은밀한 약속은 이스라엘의 용서와 회복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무관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기도하고 주께 나아온다면 지금의 그들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위대하고 비밀한 응답의 내용은 렘33:6-8에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 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기꺼이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제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은밀한 약속 혹은 비밀한 약속이어야 할까요?  지금의 현실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하기 때문에 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의 비밀을 털어 놓습니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에게 비밀을 털어 놓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마음의 소통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고 솔직한 우정속에 들어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밀을 간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의 오늘은 당장은 고통과 아픔이어도 참고 기도하며 버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내일은 이런 비밀의 실현을 기다리는 설레임의 인생이요, 기다림의 인생인 것입니다.

전영창 선생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분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시골의 학교를 하나 맡았습니다. 그 학교가 거창고등학교입니다.  그런데 너무 부채가 많아 아무리 갚으려고 애를 써도 갚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1958년 학교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찬송과 담요 하나를 들고 산마루에 있는 굴 속에 들어가 자리를 펴고 일주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미국 유학 갔다가 와서 이 나라에 새로운 교육을 해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이 학교 하나 움직이지 못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해결해 주세요." 사흘동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응답이 없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정 그러시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 금식기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동아일보에다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하고 광고를 내겠습니다." 

하나님을 협박하듯 떼를 쓰며 기도를 하고 났더니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이 시원하더랍니다. 그래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니 학교로 편지가 하나 왔습니다. 조우 복이라는 미국 성도가 수표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2,050불, 당시에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정확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기도로 응답받은 체험을 한 전영창 교장은  " 하나님, 기왕이면 이것보다는 조건이 좋아야지요. 아직 제대로 된 강당하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본관건물이 이게 뭡니까?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하고 다시 매달렸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수정교회에서 로버트 슐러 목사가 22만불짜리 수표를 보내왔습니다. 그것이 거창고등학교를 크게 끌어올리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크고 은밀한 일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위기가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사면초가와 같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뚫고 나갈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기도하면 길이 보입니다. 최선의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일을 성취하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밝고 아름다운 여러분의 미래가 눈앞에 전개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노력을 다 해 보셨다구요? 정말 기도해 보셨습니까? 아니 부르짖어 기도해 보셨습니까?  

1929년에 미국 역시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심각한 경제 대 공황을 겪게 됩니다. 193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는 두려움외에는 두려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겸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새 길을 걸을 것입니다."라는 취임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경제 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믿음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나며 이렇게 선언할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어두움의 터널을 빠져 나왔습니다. 이제는 기도의 결과로 회복과 번영을 누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몹시 불안한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여 가까운 미래에 우리도 동일한 간증을 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기도의 결과로 회복과 번영의 누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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