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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예배의 회복 (창 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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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의 회복 (창 35:1~15)


어느 농촌에 아주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이 살았습니다. 이 가정에는 소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저 소를 한 마리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느 해 농사지은 것을 내다팔고 송아지 한 마리를 사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송아지를 키웠습니니다. 송아지가 꽤 커서 중소가 되었습니다. 쟁기를 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끌고 밭에 나갔습니다. 이 소가 훈련이 안 되어서 쟁기를 끌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랴 이랴” 해도 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늙은 아버님이 소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끕니다. 아들이 뒤에서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겁니다. 아들이 준비가 되었으니까 말을 합니다.

“아버지 가입시다” 아버지가 소의 고삐를 끄니까 소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또 가다가 설 때는 “아버지 서이소”하니까 소가 또 서는 것입니다. 또 가다가 잘못해서 삐뚤삐뚤 가니까 “아버지 오른쪽으로 쪼매 가이소. 왼쪽으로 아버지 쪼매 가이소” 이렇게 하면서 방향을 잡고 소를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을 지나지 못하고 아버님이 병들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봄이 되어서 이 소를 끌고 밭을 경작해야 합니다. 쟁기를 채워서 이제 이 소를 끌고 나왔는데 아무리 “이랴 이랴” 해도 소가 가질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소가 있나 왜 가지를 않는걸까?’ 가다가 생각해보니까 처음에 훈련하고 길들일 때 이렇게 “이랴 이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봤습니다. “아버지 가입시다!” 그러니까 소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가다가 “아버지 서입시다! 쪼매 오른쪽으로 갑시다! 아버지 쪼매 왼쪽으로 갑시다!” 소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거 완전히 소가 상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소가 움직이질 않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소가 그렇게 훈련이 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렇게 훈련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바른 생활의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 예배드리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 헌금하는 습관 이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습관을 향해서 제 2의 천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쪽으로 습관이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여러분 신앙생활에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저는 우리가 2009년도 새해를 시작하면서 예배의 좋은 습관을 우리 몸에 형성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예배의 습관을 갖는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님께서도 예배의 좋은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보니까 새벽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나가서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시매 신하들도 쫓았더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의 저녁마다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좋은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습관이란 말을 여러분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 습관적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데 마음은 다른데 가있고 입만 찬양하는 것은 습관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예배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어느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찬양하는데 입만 움직일 뿐이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하는데 손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설교소리가 나지 않고 기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아이가 앞에 앉아 주기도문을 암송하는데 주기도문 소리만 나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천사에게 물었더니 천사가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성가대가 아무리 찬양해도 이 찬양 한마디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다른데 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예배가 습관에 빠지고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그 신령과 진정이 없는, 영감이 없는 예배입니다. 내 중심을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배에 좋은 습관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쁜 습관들이 있어요. 사무엘상 2장13절에 보니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아주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라고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고기를 좋은 것마다 제사장의 사환들이 와서 꺼내가는 것은 악한 습관입니다.. 

또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을 같이 하지 말고, 예배에 게을러지는 습관, 예배를 점점 멀리하는 습관, 그런 습관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년벽두에 새롭게 결심할 것이 있다면 예배를 통해 좀 더 가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실패한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배의 회복을 함께 묵상을 해보려 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의 좋은 습관을 가져야 될까요?

  
첫째는 예배를 통해 인생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인생, 타락한 인생, 방황하는 인생, 절망에 빠진 인생이 예배를 통해서 그 인생이 회복되어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흥정을 했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장자권을 차지했습니다. 분노한 형이 동생인 야곱을 죽이려고 할 때, 야곱은 집을 떠나 멀리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하란으로 가던 도중에 저녁때가 되어서 돌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매우 삭막하고 쓸쓸한 고독한 광야였습니다.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내가 이곳에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이고, 내가 무사히 돌아오면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깨어나서 ‘이곳에 하나님이 계신 전이구나 내가 미처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라반에 집에 가서 무려 2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두 아내와 두 사람의 첩을 거느립니다. 12아들과 그리고 몇 명의 딸을 거느립니다. 그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면서 그는 형 에서와 화해하는 극적인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대로 20년 만에 벧엘에 올라가서 그곳에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겜이라고 하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세겜성에 가서 그 자녀들은 예배를 잊어버리고 이방인들의 습관과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려 그들은 7-10년 동안 세겜성에 거한 것으로 주석가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아마 얼굴이 몹시 예뻤던 것 같습니다. 자기 여자 친구들을 만나려고 세겜성을 배회합니다. 세겜 성주의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 이름 역시 세겜입니다. 세겜이 디나를 보고 염모하게 되었습니다. 디나를 강제로 겁탈해버리고 자기 집에 감금시켰습니다. 그는 디나의 오빠들에게 이런 관계가 되었으니 결혼시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몹시 분노했지만 속으로 숨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획을 짭니다. “당신과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결혼할 수가 없소. 우리는 할례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만약 할례를 받는다면 우리와 결혼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세겜성 사람들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었고 일주일 동안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때 시므온과 레위는 사람들은 데리고 가서 그 세겜 성읍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어요. 야곱의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딸 디나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엄청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실이 있고 난 후, 그 지역의 부족들이 야곱의 일가를 공격하려고 준비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야곱은 그때서야 두려움에 떱니다.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꼭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시고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5장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단을 쌓는다는 것은 구약에서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대적으로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야곱의 처참하고 절망스러운 인생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 회복은 인생의 회복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헝클어지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무너졌습니까? 아니 실패한 삶입니까? 절망적인 삶입니까? 어디서 출발해야 될까요? 예배로부터 출발하십시오. 예배가 바로 우리 삶의 출발점이요,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냥 올라가지 않습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보니까 그가 명령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자.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두 번 씩이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말합니다. 벧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집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벧엘로 올라가자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 인생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좋은 습관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새해에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성령적인 삶을 원하신다면 예배 횟수를 늘이십시오. 한번 예배드리시던 분들은 두 번 예배드리십시오. 꼭 주일 오전예배만이 예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버리세요. 오후 예배도 동일하게 드리세요. 수요 예배도 있습니다. 새벽예배도 있고, 심야기도회도 있고, 구역예배도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세요. 예배를 사모하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진지한 마음으로 나오세요. 준비된 예배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의복을 바꿨습니다. 마음을 정결케 했습니다. 우상을 던져버렸습니다. 우리도 예배에 나오시면 자기 마음의 준비라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게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심령을 주십시오. 제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너희가 예물을 가지고 왔을 때, 누군가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 제물을 제단에 두고 가서 먼저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준비된 예배, 회개가 선행된 예배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인생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는 왜 예배의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35장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이게 나타나셨음이더라.” 그가 예배드리는 그곳에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나 혼자만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이 내 가운데 함께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때론 하나님이 만져주심을, 치료해주심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의 예배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을 느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임재하는 예배가 진정 성공적인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스톤에 ‘에이제 골든’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큰 교회를 목회하고 아주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큰 교회의 목회자였기 때문에 늘 바쁘고 분주한 목회자였습니다.  토요일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꾸뻑 졸아버렸어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자기가 많은 회중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뒷자리에 30대 남자가 앉아 있는데, 못 보던 교인입니다. 누구일까 생각하며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리곤 안내위원에게 물어봤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청년이 있던데 누구인지 아느냐고. 그랬더니 안내위원이 웃으면서 “목사님! 그분을 모르세요? 그분의 이름이 예수님이세요.” 깜짝 놀랐어요. ‘우리 예배 가운데 예수님이 와 계셨구나.’ 그는 지금까지 이 예배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고 설교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놀라서 번쩍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저 뒷자리에 오늘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교인들이 느끼기 시작하면 그들의 예배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오늘 이명박 장로님이 어디를 가다가 시간이 없어서 우리교회가 눈에 띄어서 교회 오셔서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릴까요? 처음에 수군거리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찬송의 소리가 달라질 것입니다. 기도의 소리, 아멘의 소리가 달라질 것입니다. 대통령을 의식해서 말이지요. 만약 일개 대통령이 예배에 참석해도 여러분이 그렇게 감동적으로 예배드리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 곁에 임재하신다는데 우리의 예배가 달라져야하지 않을까요?

우리 예배에 감격이 있습니까? 여러분! 찬양을 부르면 얼마나 눈물을 흘리십니까? 텔레비전을 봐도 눈물을 흘리는데 우리의 예배가운데 왜 눈물이 없을까요? 우리는 예배 가운데 회개해야 합니다. 성가대 여러분들도 준비하시는 가운데 감동과 감격이 차오르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그런 준비된 예배, 기도로 준비된 예배, 그리고 우리의 신령과 진정을 다해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이 진정 기뻐 받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회복되길 바랍니다.

어제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코메디언 오지헌이 나와서 경복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자기가 방황할 때, 그 선생님이 잡아주셨답니다. 말도 무뚝뚝한 경상도 선생님이었지만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  자기를 생각해주는 것에 감동받아 마음잡고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최명철 선생님이라는 분을 만날 준비를 하고 “선생님 보고 싶어요!” 외치니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와 포옹을 하는데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저도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TV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는데 우리는 왜 감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면서도 눈물이 없을까요? 뭔가 우리 예배에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2년 전에 하와이 열방대학에 있을 때, 아침 8시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양리더가 찬양을 인도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찬양의 메아리가 놀라운 감동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 여기 임재하시는구나’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찬양대원들의 얼굴을 보니까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그들은 일주일동안 준비하면서, 기도하면서, 찬양을 준비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예배가 거룩한 경험을 하는 예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거룩한 경험을 하는 예배를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예배의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예배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년 동안 드리는 여러분의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령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는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의 좋은 습관을 가져야 될까요?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예배 받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통해 영광받기 위해서,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만 예배드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매일매일 우리의 삶속에서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주 나와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부부도 서로 같이 보면서 살아가니까 닮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제 아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하고 비슷하고 닮은 여자를 찾아가면 제 아내임이 틀림없어요. 부부는 닮으니까요. 만약에 우리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예배를 통해서 나를 닮았구나!”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닮지 않은 사람도 있구나!” 이럴 수도 있어요. 예배를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선택이 아닙니다. 예배는 당연한 것이고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예배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성공자는 예배의 성공자인 것입니다.

지난주간 기도원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김명규 장로님이 오후에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팔남매인데 오형제가 장로 세자매가 권사라고 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런데 장로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 예배를 사모하셨다고 합니다. 시골에 계셨는데 시골교회 새벽기도회를 가려면 한 40분을 걸어가십니다. 가다보면 조그마한 강을 하나 건너야 합니다. 캄캄한 새벽, 한 겨울에 미끄러져서 강에 빠져서 다시 돌아온 날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에 가셨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집에서 기도하고 말지’ 생각할 텐데 그 정도로 예배를 사모하셨답니다. 그 예배의 가르침으로 팔남매가 모두 성공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많지만 재임 기간보다 은퇴 후에 더 존경을 받은 대통령이 두 분 계십니다. 바로 아브라함 링컨과 지미카터입니다. 지미카터가 민주후보당 대선에 나갔을 때, 공화당 후보와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 유세기간 마지막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공화당 후보는 수십만의 군중 앞에서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유세를 펼치는 장면이 TV방송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TV화면이 딱 비추는데 시골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주일학교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를 지지하던 열열 당원들은 실망하였습니다. ‘아무리 예배가 중요하지만 내일이 선거 날인데 저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난리가 났고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상을 뒤엎고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은 지미카터를 선택했습니다.  TV를 보는 순간 “그래 맞아! 아무리 선거 유세가 급해도 선거 유세를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저런 사람이라면 이 나라를 맡기고 안심할 수 있지. 바로 저 분이 우리 대통령 감이야” 많은 사람들이 지미카터에게 표를 던졌어요. 대통령에 당당히 당선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예배에 못 나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녁 예배 못 나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통령 선거보다 더 급하고 귀한 일이 있습니까? 미국 대통령을 세계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대통령 선거보다 더 급한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인생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룻은 예배를 멀리하다가 그는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아들이지만 그는 예배를 멀리했기에 축복의 반열에 들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은 예배에 열심을 내지 않아 크게 패망이 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이삭과 야곱을 보십시오. 그들은 다 예배의 성공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두 번씩 하나님께 드리면서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에 성공하는 비결은 여러분이 지혜가 뛰어나고, 학식이 많고, 돈이 많고, 능력이 많은 것 그 이전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분들이 되셔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 그것이 인생의 회복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어떠합니까? 우리의 기업이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이 어떤 환경에 있습니까? 예배를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를 가장 예뻐하십니다.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고 쇠하게도 하시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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