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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내심을 받은 우리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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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을 받은 우리 (요 20:19~23)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놀라운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사실은 죽지 않고 있다가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셔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는 것(요19:30)도 보았으며, 그의 십자가처형을 집행한 군인들이 그가 이미 죽으신 것을 확인하고는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나오는 것(요19:34-35)도 보았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그의 시체를 가져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와 함께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에 싸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있는 동산의 새 무덤에 안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놀라운 것은 그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안에서부터 걸어 잠그고 있어서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 서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본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또 부활하신 그의 몸은 겉으로는 예전과 같아 보여도 새 몸이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한 말이 없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샬롬 알레헴”으로서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건네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인사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큰 의미를 담은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는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이루시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게 해주셨으며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한 죄와 악의 세력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음을 선언하신 것이 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곧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면 그는 곧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통념이었습니다. 따라서 죽었다가 다시 사셔서 들어올 수 없는 장소에 들어와 서계신 예수님 곧 하나님을 뵈었으니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평강을 전하신 데는 제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안심하게 하시려는 뜻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이면서도 그를 다시 대면한다는 것은 배신의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그로부터 받을 질책 때문에 결코 마음이 편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평강을 선언하신 데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마음의 죄책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신 뜻도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을 다 걸어 잠근 방 안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다시 나타나시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는 현실 앞에서 놀람과 두려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가운데 과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반신반의하고 있었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손의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를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지금 허깨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실제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있음을 확신시키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한 것은 첫째로는 돌아가셨던 주님을 다시 사신 채로 만나 뵙게 된 때문이며, 둘째로는 죽음의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평강을 누릴 것을 주님으로부터 보장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만나서 처음 하시는 인사말이 아니기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말씀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반복하신 것은 이제 제자들이 누리는 기쁨이 헛된 기쁨, 근거 없는 기쁨,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임을 확신시키시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처럼 진정으로 기뻐하게 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은 그때 예수님을 뵌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평강을 누리게 되고 기뻐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할 일 없이 놀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선교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선교를 의미하는 “미션”(mission)이란 말은 바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의 라틴어 (missio)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라는 공식직함을 가지고 어느 타 지역에 파송되어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기회 있는 대로 전도해야 할 사명을 지닌 우리입니다. 전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우리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와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평강을 전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다른 말씀들을 들어봅니다. 

마24:14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 하셨습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시며 그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진리 즉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마28:19-20에 따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열린 천국의 복음을 증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그의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무엇을 위하여 보내셨습니까? 세례 요한의 증언대로 말하면 세상 죄를 지고 가기 위한 어린양으로 보내셨습니다(요1:29). 

요3:16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가 주시는 물을 먹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며(요4:14), 그가 사람들이 먹고 영원히 주리지 않을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요6:32-58). 

또한 그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하시기 위한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요8:12).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의 말씀 안에 거하여 그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죄의 종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셨습니다(요8:31-36). 

또한 그의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도록 목숨을 버릴 선한 목자로 보내셨습니다(요10:10-15). 

또한 우리를 하나님께로 오게 하기 위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보내셨습니다(요14:6). 또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셨습니다(요15:10-11, 17:13). 

또한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해도 그의 승리 안에서 우리도 승리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셨습니다(요16:33).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리로 거룩함을 얻고(요17:19) 하나가 되게(요17:22-23) 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다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실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가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그는 우리가 먹고 영원히 주리지 않을 생명의 양식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씀 안에 거하면 그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어 죄의 종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시는 선한 목자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오직 그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과 진리와 생명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만 우리가 사랑과 기쁨이 충만할 수 있으며 평안을 누리고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거룩함과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의 증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살도록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보내신 이가 주신 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과업을 수행하는 일에 전심을 드리고 전력을 다하며 전생을 바쳐야 합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사명을 주시고는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람을 정죄하고 용서할 권한이 주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죄의 용서와 성령의 능력에 의한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와 기쁨을 선포하는 한편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를 것임을 경고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향해 은혜의 선포와 심판의 경고를 해야 할 교회를 다스리시며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는 우리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온통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에게 적대적이던 때에 그 적대적 세상을 향해 증언하라 하셨습니다. 전도가 날로 힘들어지는 이때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전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 안 해도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 많은데 뭐 하러 전도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미 믿는 분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전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전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의 신자수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계속되어야 할 사명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놀라운 복을 증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우리 혼자만 누리며 만족하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우리 모두 열심있는 증인이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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