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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 (합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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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자 (합 3:17~18)
 

오늘 우리가 상고할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의 일부입니다. 그 당시 유다 왕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요시아 왕은 신앙심이 좋은 왕으로서 우상숭배에 물든 유다 백성의 신앙을 개혁하는데 힘썼으나 백성들은 겉으로만 호응할 뿐 고질적인 우상숭배의 습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당시 국제적인 상황은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북방의 강대국인 바벨론이 유다를 넘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앞으로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군에 의해 국토가 유린될 것이므로 모든 과수원이 황폐하게 되어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게 될 것이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는 식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양과 소도 다 빼앗길 것이므로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는 소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6 25사변으로 인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온 국민이 큰 곤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마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금융위기로 인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치명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전쟁으로 인해 모든 생계 수단이 파괴되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하는 비참한 형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지라 불원간에 닥칠 이 같은 시련을 생각하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그는 현실의 암담함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소망의 계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막대기로 삼아서 범죄한 유다를 징벌하실 것이나 그런 후에는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유다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믿음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인생길에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시련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6 25사변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고, 이북에 집과 재산을 다 〮두고 피난 내려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같은 국가적인 환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시련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과 같이 세계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개인으로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혹은 건강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자녀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신앙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가 중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돌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이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사사시대 말엽에 이스라엘 백성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였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자손은 궁여지책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적군에게 빼앗겼습니다. 그 얼마 후,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혼이 난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돌려보냈지만, 그 후로 이스라엘 자손은 20년이 넘도록 블레셋 사람들의 압제 아래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자 그를 대신하여 사사가 된 사무엘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던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지런히 하나님 섬기는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 같은 수고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점점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을 비롯해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신앙개혁을 완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쇠는 달았을 때 두들기라”는 말이 있듯이, 사무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진 영적 각성의 기회를 십분 선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지파에게 통지하여 미스바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정해진 날에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장정들이 미스바로 모여 왔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는다는 의미로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붓고 금식하고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이 대거 미스바에 모인 것을 알게 된 블레셋 사람들은 이는 필경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보고 쳐들어왔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에 대장간이란 대장간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무딘 농기구의 날을 벼리기 위해서도 블레셋 지역에 가서 돈을 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은 적과 싸울 만한 변변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자손은 전쟁을 하러 모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모인 것이었으므로 무장이 되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철로 된 무기와 병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본 이스라엘 자손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무엘에게 와서 호소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이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어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어지럽게 하시니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뒤쫓아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날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승리했듯이,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이 시점까지 이른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기 위해 마귀가 여러 방면으로 도전해 왔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우리의 영적 싸움을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이 위기와 도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하신 욥기 5:7 말씀과 같이, 인생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치고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생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고충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매번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승리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에벤에셀의 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2009년도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고백과 함께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도록 하십시다. 에벤에셀의 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대적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돌입니다. 일종의 전승비지만, 사람의 공로를 기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는 에벤에셀의 돌을 많이 세우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역경을 만나고, 핍박을 받게 될 때, 낙심 가운데 처하게 될 때, 지금까지 성도님들의 인생 여정에 세워 놓은 에벤에셀의 돌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걱정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샀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에서가 야곱을 죽일 기회를 엿보는지라 괴나리봇짐을 지고 에서 몰래 고향 집을 떠나 머나먼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걷다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습니다. 야곱은 벧엘 빈 들판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보금자리를 떠나 외롭고 힘든 길을 떠나게 된 야곱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하고 서글펐을까요? 또 앞으로 미지의 땅에서 당하게 될 고난을 생각하면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곤한 야곱은 이내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야곱은 꿈에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야곱에게도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계승자로 인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고향 집을 떠나 길을 걸으면서 줄곧 야곱은 ‘이제는 부모님을 떠나서 나 혼자가 되었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텐데 타국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것이 심히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곱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도 잠시 동안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마음 든든한 일입니까!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늘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그 때 야곱은 이와 같은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니 그가 하란에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목자로 지낸 20년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을 뿐 아니라 큰 축복을 주셔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외삼촌의 두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열 세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몰래 자기 가족과 가축 떼를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을 때, 라반이 이 사실을 알고 추격해 왔으나 하나님께서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선악 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말라“고 엄명하심으로 라반은 야곱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야곱의 삶을 살펴보면 정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말년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가족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바로를 알현하는데, 바로가 묻기를 “당신의 연세가 얼마입니까?” 하니, 야곱이 대답하기를 “저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입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야곱이 생사를 넘나드는 험악한 일생을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일생은 패배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승리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해서 선민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면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동일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세계적인 경제난의 영향을 우리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삶에 또 어떤 시험과 난관이 다가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성도님들께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아무리 엄청난 문제라도 능히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떠나 계시나 영으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님과 더불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우리 몸을 성전 삼아 거하시는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님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면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이레’란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이삭이 이십 세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시기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제 자식이 귀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그런 가운데도 이삭은 특별한 자식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독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아직 이삭이 장가도 들지 않은 때에 그를 죽여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삼 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 아래 이르렀습니다. 거기에 두 종을 머물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이삭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명하신 장소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려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빼들고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러자 사자가 말씀하기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뒤에 한 수양이 뿔이 수풀에 걸린 채로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금년 한 해 동안 여호와이레의 은총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길쌈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쪼이고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가 엄습하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양식 걱정, 옷 걱정, 신발 걱정, 마실 물 걱정, 더위와 추위에 대한 걱정 따위를 조금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으며,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옷이나 신발이 헤지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 백성을 보호해주었습니다. 신명기 1:33에 보니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한 아브라함과 같이, ‘나의 앞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시편 37:5-6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고 하였으며, 잠언 16:3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확실한 보장입니까? 그러니 성도님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여호와이레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정초가 되니 많은 사람들이 한 해의 운수를 알려고 점쟁이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마음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는 다 귀신에 속한 자들이요 죽은 자에게 묻는 자들입니다. 이사야서 8:19에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들을 지으신 하나님,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살아감으로 장래에 대한 불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늘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언제나 인생길을 강하고 담대하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또 한 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는 아직 우리의 사명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금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올해는 작년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주의 일에 힘쓰겠노라고 거룩한 다짐을 하십시다.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되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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