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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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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31)

  
철학자 칸트는 그의 '실천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새로워지고 높아지는 경탄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마음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 말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두 가지 질문, 즉 '우주만물의 존재'에 관한 질문과 '사람의 본성'에 관한 질문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어릴 때에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저 별들의 세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 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며, 오늘날 최고의 과학자라는 사람들 역시 '이 우주의 시공계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져 본,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풀지 못했으며 최고의 지성을 가진 자들 역시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하는 이 존재 세계의 원인과 시작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명료하게 대답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인간 생존의 기반이요 활동의 배경이 되는 이 우주와 만물이 과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유일한 정답을 지극히 명백하고도 위엄스럽게 선포해 주는 이 성경 말씀의 계시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경은 '누가 우주를 창조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대답해 줍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태초에"라는 말은 '영원 전에'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이 시작되는 첫 시점에'라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시간계,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물리적, 역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 태초 이전의 시간이라는 것은 오로지 영원의 시간계에 자존하고 계시는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그런 하나님께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하나님"은 복수 명사이지만 "창조하시니라"는 단수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존엄을 나타내는 복수'(plural majesty)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3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3절의 말씀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그 '말씀'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2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대로, 성령의 보호하시고 주장하시는 활동 또한 창조 사역에 동재하고 있었음이 명백합니다.
이처럼 창조 사역은 성부 하나님만이 하신 일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함께 행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천지"라는 말은 지구만을 한정한 뜻이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존재 세계에 속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창조"하셨는데, 여기서 '창조하다'(bara)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전 구약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을 주어로 할 때만' 사용되는 동사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무(無)로부터 유(有)의 창조'를 강조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영어 성경에서 이 단어를 'created'(창조하셨다) 대신에 'made'(만드셨다)라고 번역해 놓은 것은 아주 잘못된 오역이며 심각한 신학적 과오이기도 합니다. 

2절의 내용은 이어서 3절 이하에 나오는 엿새 동안의 천지창조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선 "땅" 즉 지구는 우주의 천문학적 중심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중심점이 된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첫 삼일 동안은 "혼돈"과 "흑암"으로부터 빛과 어두움, 창공과 지면, 뭍과 바다를 '모으고 가르는' 일, 즉 '섞여 있던 것을 분리해서 물리적 질서를 창조하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창조의 후반부에 가서는 "공허"와 "깊음" 즉 끝없이 비어 있던 공간에 동식물과 천체와 인간 등 '물체와 생명체들을 채우는' 창조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은 우주와 만물의 창조를 '누가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이'라고 명백하게 대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은하계는 시속 8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며 그런 속도로 한 바퀴를 도는 데 2억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계가 적어도 십억 개가 있다고 하며, 어떤 과학자는 우주의 별 숫자는 지구의 모래알 숫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광대하고도 복잡한 우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완벽한 질서와 신비한 조화를 유지하면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우주가 그저 '우연히 생겼다.'라든지 '별의 생성과 소멸에 따른 진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전히 '비논리적인 가정'이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Contact'(접촉)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우주 어딘가에 반드시 인간보다 더 문명이 발달된 외계인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과 '접촉'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천문학자입니다. 
그 영화의 제일 마지막에, 그녀가 자기 연구소에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학생들 중에 한 명이 "우주에는 정말 외계인이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하기를 "만약에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공간의 낭비'(a really big waste of space)가 되지 않겠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억 개의 은하계가 있는 우주라는 이 큰 공간(space)에 만약 지구에만 인간이라는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있고 다른 모든 별들에는 다 비어 있다면 그 엄청나게 큰 공간이 아깝게 낭비(waste)되고 있는 것이니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 놀랍게도 그 누구보다도 합리성을 따진다는 과학자들의 논리입니다.
이들은 우주에 다른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만약 안 산다면 그건 이 광대한 우주 공간을 생각해 볼 때 너무나 큰 낭비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어딘가 외계인이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논리로써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결국 이 우주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은 과학자들조차도 실제로는 어떤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막연한 믿음'을 통해서 제멋대로 대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가 만일 그 안에 인간 외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없다면 말이 안 될 정도로 광대하다.'라는 사실을 그토록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이, 그 광대한 우주가 어떻게 아무 원인도 없이 저절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주가 이처럼 인간의 지적 탐구의 영역 안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광대무한하니 반드시 그것을 창조하신 절대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고 옳은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증명조차 하려 하지 않고 이미 완벽한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진리'라는 것은 어떤 정보나 실험들을 바탕으로 해서 귀납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다른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연역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대전제(大前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90편 2절에서도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나님의 영원 자존하심은 아무 증명 따위가 아예 필요 없는 절대진리 그 자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만이 이 광대하고 놀라운, 그러면서도 그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유한 세계에 불과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지당하고 틀림없고 논리적이고 믿기 쉬운 대답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바로 이 계시의 선포 앞에서 '누가 이 우주를 창조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고 깨닫고 그대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경은 '어떻게 우주가 창조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라고 대답해 줍니다. 

3절 이하 5절에 기록하기를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은 이 1장에서 10회나 반복되는데, 그 창조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직접적이고도 유일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라사대'의 말씀이 "(무엇이) 있으라" 하시면 그것이 "있었고", "(어떻게) 하라" 하시면 "그대로 되니라"라는 결과가 즉시 따라왔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써 첫째 날에 창조하신 것은 "빛"이었는데, 이것은 어떤 추상적 개념의 빛이 아니라 분명히 물리적인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나 달 같은 발광체나 반사체에서 나오는 빛은 아니었으며 아마도 우주에 시간계와 공간계를 부여해 주는 '근본적인 에너지'로서의 빛이었을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물리학에서 시공계의 기본법칙으로 통하는 '속도 = 공간 / 시간'이나 '에너지 = 질량 X 광속도의 제곱' 같은 공식들이 바로 이 첫째 날에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6절부터 8절에 기록되어 있는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궁창" 즉 "하늘"이라 불리는 '창공'이 창조되어서 지표면과 구분되었으며, 또한 지구상의 수분은 "궁창 아래의 물" 즉 지표면에 있는 물과 지각 속에 있는 지하수, 그리고 "궁창 위의 물" 즉 대기 중에 포함된 수분으로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노아 홍수 시대 이전까지는 이 대기의 습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지구 전체는 식물이 아주 잘 자라는 온실과 같은 환경이 되었고 그것이 인간 장수와 공룡 생존을 가능케 해 주었을 것입니다. 

9절 이하 13절의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명하심으로써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식물계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말씀으로서, 나중에 나오는 동물계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식물계 역시 무슨 진화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돌연변이나 유전변환 등으로는 결코 넘어갈 수 없는 한계 내에서 여러 가지 종(種)들이 처음부터 나뉘어져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런 '풀과 채소와 과목'들은 나중에 창조될 동물의 식물(食物)이 되기 때문에 먼저 지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14절부터 19절에 나오는 넷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두 큰 광명" 즉 해와 달과 그리고 "별들"이 창조되었습니다.
  
본문에서 '해'와 '달'이라는 명칭을 굳이 피하고 그 대신에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이라고 칭한 이유는 이 창세기가 기록된 모세 시대에 일월성신은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대표적인 우상이었고 따라서 '해'와 '달'이라는 명칭 자체가 바로 '이방신들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천체들이 창조됨으로써 또한 "징조(표준)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 즉 사계절과 365일로 이루어지는 1년이라는 시간의 표준이 되었으며, "낮"과 "밤"이 구분되었습니다. 

20절부터 23절까지에 기록된 다섯째 날에는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말씀에 따라 어류와 조류가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21절의 "큰 물고기"라는 말은 사실 '큰 물짐승'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며 또한 그 뒤에도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래는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 동물인데, 그렇다면 어느 날에 창조되었나?'라는 따위의 질문으로 따져들 필요는 없으며, 두말할 필요 없이 바로 이 다섯째 날에 창조된 것입니다.

24절 이하 3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의 창조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역시 '가라사대'의 말씀으로써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고 각종 육지의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또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다른 모든 자연계부터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대자연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친히 조성해 주신 '완벽한 생존 환경'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食物)이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보아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신체 기관이나 생명 유지 방식이 동물과 유사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도 결코 진화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님께서 동물과 사람을 '지구라는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특별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축복과 사명을 내려주셨습니다.
  
즉 사람은 자연의 진화 과정을 통하여 우연히 나타나게 된 어떤 '산물'이 아니라, 원래부터 모든 자연계를 다스리면서 선용하고 그 자연을 통해서 얻게 되는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창조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그처럼 자연계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게 하신 이유는 이어지는 2장의 말씀을 나눌 때 더 자세히 살펴 볼 것입니다.
  
하여튼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창조 받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생존'까지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매일의 창조사역이 완성될 때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 번째 날이니라"는 말씀이 따라오는데, 이 '아침과 저녁'을 구분지어 주는 해와 달은 제4일에 가서야 창조된 것이므로 꼭 24시간의 하루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러면서 히브리어의 '날'이라는 단어는 '시대'의 뜻으로도 쓰이는 것이므로 이 천지창조의 하루하루는 어떤 '지질학적인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라는 창조설과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서로 조화되려 해야 될 수 없는, 서로 정반대편에 있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날'이라는 것이 24시간 주기의 하루를 의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는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증거하는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창세기의 '엿새'를 '장기간의 지질학적인 시대'로 본다면 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문맥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 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이유를 두고 "내가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만들고 제 칠일에는 안식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셨을 때에 그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그 '엿새'를 '수십억'년'으로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지키고 있던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패턴에 따라서 '엿새'라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바로 그런 '24시간 X 6일'이라는 뜻으로 이해했을 것임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내포하고 있는 결정적인 오류를 지적해 주는 '촛불의 비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방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 그 안에 이미 불이 붙어 타고 있던 촛불 하나를 보게 되었을 경우입니다.
  
그 사람은 그 양초의 이미 타버린 부분이 얼마나 길고 어떤 굵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그 촛불이 켜져 있었는지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들어간 그 순간부터 관찰할 수 있는 것들, 즉 현재 촛불이 타들어가고 있는 속도와 남아 있는 초의 길이만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용해서 그 촛불이 완전히 다 타버릴 때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것 외에는 다른 그 어떤 사실도 정확히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 양초의 타버린 부분의 모양이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의 모양과 똑같았을 것'이라고 아무 근거도 없는 가정을 하면서 그 이전의 시간과 상황을 제멋대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주의 창조를 관찰하지 못했으며 지구의 생성 과정을 볼 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자기 평생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는 사실, 그리고 역사상 과거의 과학자들이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관찰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기록만 참고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자기네들이 관찰할 수 있는 그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소위 '진화의 과정과 속도'라는 것이 지금은 아무도 관찰할 길이 없는 지극히 먼 과거에도 현재 관찰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과정과 속도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억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신자는 그런 불신 과학자들과 입을 맞추어 보겠다고 성경의 말씀을 공연히 복잡하게 해석해서는 아니 됩니다.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력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성경적으로 수정 보완된' 것이라 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창조력이 없다면 아무리 오랜 진화의 기간이 있다 해도 결국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창조력(0) X 진화력(수십억 년) = 무(0)'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창세기에 기록된 '어떻게'를 무슨 과학적인 해석으로써 진화론과 조화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우주만물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저 이 창세기 1장에서 구구절절이 증거해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다 창조하셨다'라고만 충분히 알고 확실히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리고 '어떻게'에 대해서는 '말씀으로' 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는 질문은 '왜 창조하셨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하나하나 창조하실 때마다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그 어떤 오차나 실수나 시행착오나 사후교정이 전혀 없이 이루어졌고, 천문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나 100퍼센트 완벽한 질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었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신' 결과가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타인의 필요'에 따라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서 창조하시기로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당신이 좋으셔서 창조하셨고, 그래서 창조해 놓으시니까 또 좋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완벽한 자연계를 우리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공간으로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가장 기본적으로 우선 이 우주만물을 '누가' 만들어 주셨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주인을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주택 무단침입자'가 될 뿐입니다.
  
이 천지와 그 가운데의 만물, 즉 우리의 생존의 환경과 배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것이며 그런 까닭에 지금도 여전히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이 '완벽하게 좋은 생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당연한 기본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자연계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그 안에서 충만해지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바로 그 창조주께서 이 자연계를 '어떻게' 창조하셨고 지금도 운영하고 계시는지를 또한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만드셨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그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셨던' 만물을 오용하며 파괴하며 정욕과 죄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요령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 이 한 가지뿐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과학으로'나 '이성으로'나 '경험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이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는 우리 기독신자들이 믿어야 할 대상 중에서 성경 말씀에 제일 첫 번째로 나타납니다.
'태초의 창조'를 믿어야 '역사의 중심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도 믿을 수 있으며 또한 '종말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생' 또한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질문은 다 해 보지만 대부분이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 '누가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깨닫고 믿음으로써 이 존재세계와 우리 생명의 주인을 알게 되고 만물의 영장에게 주어진 특권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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