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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엡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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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엡 2:20~22)


[루멜 하우스]라는 사람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고독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사람이 고독하게 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나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를 그 누구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데 충실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나의 생, 내 얼굴, 내 지식, 내 능력을 소중하게 여겨야 됩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람은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남자 분들 부인을 보면서 잘났건 못났건 저 여자를 사랑하고야 내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자분들 남편을 보면서 저 남자를 사랑하고야 내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고독이라고 하는 무서움으로부터 자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어도 세 개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치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인가 혹은 나를 저들이 요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뢰감입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가 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기에 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면 소외감에 빠지고 열등의식에 빠지기도 하고 피해망상증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쉽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절망은 정신적인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몸은 움직이고 있지만 정신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이 몸뚱아리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독이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깊이 고독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고독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만난 많은 사람 중에 환자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 중에 누가복음8장에 보면 12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혈루증으로 보냈던 절박한 고독에 지친 여자를 만나주신 적이 있습니다. 무려 12년을 앓고 있었더니 주변에 사람들이 없습니다. 혼자서 고독하게 마지못해 살고 있던 여자입니다. 여러분,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 말처럼 가족도 혹은 자식도 나 몰라라 하는데 남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병든 지 오래되면 친구도 없어집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우선이 가족이라면 그 다음은 친구입니다. 목숨을 걸고 함께 해줄 친구가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일 텐데 이게 쉽지 않은 겁니다. 

<런던 타임즈>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친구란 무엇인가?>어떤 걸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응모를 받아 깊이 조사해서 그 가운데서 가장 잘 됐다고 하는 친구의 정의를 내 놓았습니다. 

그 첫째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그때에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 친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면 그건 행복입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더욱 행복일 것입니다. 내 곁에서 나의 침묵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습니다. 말이 필요 없어도,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고 합니다. 다 아는데 무슨 긴말이 필요합니까?“나는 너를 안다. 네 억울함을 안다. 네 고통을 안다. 네가 바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네 진실을 안다.”고 침묵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친구라고 했고, 

또 하나는 나의 기쁨은 곱해 주고 나의 슬픔을 쪼개 주는 자가 친구라고 했습니다. 내 기쁨이 친구를 만나면 배나 커집니다. 함께 있을수록 제곱으로 커집니다. 반면에 슬픈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면 슬픈 마음이 반으로 감해집니다. 함께 있을수록 자꾸만 작아집니다. 그런 관계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해석이며 친구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나셨던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그 여자는 이런 친구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들면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더 문제는 이러한 가운데 소속감도, 가치관도, 신뢰감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버려졌지만 자신도 자기를 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에는 혼자 말없이 주님을 찾아오는 믿음이 있었고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 여자를 고쳐 주시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반면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이라는 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중풍병에 걸려서 꼼짝 못하는 병자를 친구 넷이서 침대를 메고 와서 고침을 받게 하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2장에 나옵니다. 이 중풍 병자에게는 마음이 열려있는 친구가 넷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큰 재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없는데 빨리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도 모자랄 판에 먼저 이웃을 향하여, 친구를 향하여 먼저 마음을 연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데 하나가 되었던 친구들입니다. 결국 성경 마가복음2장5절을 보면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펜클러]라는 역사학자가 역사를 구분하면서 생성기, 성장기, 번영기, 쇠퇴기의 네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쇠퇴기에 일어나는 일차적인 현상으로 이기주의가 팽창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이기주의가 세상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정말 말세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한 이기주의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버클리 대학]에서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혼자서 먹이를 먹으면 얼마를 사느냐를 봤더니 600일을 살더랍니다. 다섯 마리를 함께 먹도록 했더니 700일을 살더랍니다. 세 번째 실험은 사람이 돌보면서 키웠답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더 먹고 싶어 할 때는 더 주고, 먹기 싫어할 때는 다른 것을 주면서 지켜보았더니 무려 950일을 살았답니다. 미물도 더불어 살면서 사랑의 힘을 느낄 때는 행복한 마음으로 오래 산다는 사실입니다. 

2009년도 새해 표어를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자>라는 오늘 본문 엡2:22의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더 무슨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서 세워주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만났고 교제를 나누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함께 지어져 가는 일입니다. 나 한사람만 잘되겠다고 혼자서만 지어지면 다른 한 모퉁이는 기울어져 무너져 내립니다. 교회 공동체란 은혜를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며 서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2009년도에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고 우리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남편을 함께 세워가고, 가족을 세워가고, 동료와 어깨동무하며 무엇보다도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의 험담은 그만하고 이제 칭찬만 합시다. 어려움을 모른 척 하지 말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신앙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말고 동반자가 되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소설가[이철환]이 이웃들의 실제 이야기를 단편으로 구성해서 베스트셀러가 된<연탄길>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속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한 가족이 차를 몰고 서울 근교에 유원지를 다녀오다가 어두운 골목길에 검은 물체가 길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감이 심상치 않아서 차를 멈추고 내려 보니 한 남자청년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뺑소니 사고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는 관여하지 말고 가자는 아내를 설득해서 골목에 애들과 함께 좀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한 후 남편은 신음하는 사람을 태우고 인근병원에 갔는데 너무 중상인지라 작은 병원에서 볼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그를 차에 태워서 큰 병원으로 가서 입원수속을 하는 동안에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일을 끝내고 아내와 아이들이 서있어야 할 그 골목에 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너무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편으로 집에 갔나보다 생각을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자기 집 쪽으로 불자동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갑니다. 놀라서 빨리 가봤더니 자신의 집 조그만 빌라에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고 차에서 내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밖에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윗집에 살고 있던 처제 식구들도 나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골목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처제에게 전화를 했고 처제가 식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와서 언니네 집 식구들을 태워서 가는 사이에 가스폭발로 불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는데 102호에 사는 내외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뒤에 경찰 조사에 의하면 바로 102호에 사는 그 사람이 골목에서 청년을 치고 뺑소니를 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보고 구하려고 나섰다가 이 남자는 자기 집안 식구를 다 살릴 수 있었고 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자기만 살겠다고 뺑소니를 쳤던 사람은 죽었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누군가를 향해서 닫힌 마음이 있다면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1등이 제일인지 몰라도 신앙 안에서는 나 혼자 잘해서 1등 하는 것보다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때로는 허리를 숙이고 때로는 발걸음을 늦추어서라도 조회를 맞춰보십시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치 하나하나의 벽돌이 적재적소에 균형 있게 쌓아져서 건물이 완성 되어 가듯이 우리들의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 돕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먼저 손 내밀고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해 줄줄 아는 신앙으로 올 해에는<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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