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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회헌신예배] 충성된 사람들 (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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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사람들 (딤후 2:1~7)


우리 당회원들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쉬어야 하는 주일에 교회를 나와 하루 종일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 가을에 항존직원을 선거하고, 내년 5월에 임직하게 될 것입니다.  장로님들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은퇴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휴무하시는 들이 있고, 시대가 변하면서 일할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충성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배우라고 하지 않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명예를 얻는다고 하면 좋을 것이지만, 멍에를 메어야 한다면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하는 소에게만 멍에를 메웁니다. 어린 송아지에게는 멍에를 메우지 않고, 아주 늙은 소에게도 멍에를 메게 못합니다. 그러나 한참 일할 수 있는 젊은 소에게는 멍에를 메우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멍에라는 말은 속박과 노예상태를 의미하며, 억압 통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멍에는 문자대로 짐승의 목에 씌우는 멍에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27-28에 보면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한참 일할 수 있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으면서, 뒷짐 지고 구경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두에서 멍에를 메고 일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요, 보람 있는 일이요, 자랑스러운 인생을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이 되고나서 되어가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었다고 하여 다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가야 합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성숙한 장로가 되어가야 합니다. 

목사안수 받고 보니, 아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관성의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고 보니, 세상적인 유혹과 탐욕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목사가 되고나서, 점점 목사가 되어갑니다.  

우리 장로님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장로가 되고 나서 장로님다워 가고, 장로가 되어갑니다.  선배장로님이 은퇴하면 다음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하지만, 선임그룹이 목회자를 잘 도우며, 후배들을 이끌어 왔는데, 다음에도 잘 이끌고 갑니다.  우리 교회는 선배장로님들이 좋은 전통을 세우고 물러나므로, 계속해서 교회를 화평한 가운데 잘 이끌고 가십니다.  교회는 평화를 깨드리면서 추진해야할 만큼 시급한 것도 없고, 평화를 해치면서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 일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을 하시고 있습니다.  마치 영적인 아버지로서 디모데를 자녀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사도바울은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나이도 차이가 날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고 길렀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였고,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1-2절입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여기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바울을 부르시고, 바울은 다시 디모데라는 믿음의 아들을 세우시고, 디모데는 다시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세우고, 또 사람을 세우는 교회인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교회는 계속하여 사람을 세우고 또 사람을 세워나가야 교회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충성된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멍에를 멜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더 이상 명예를 얻을 것이 없으니, 이제는 교회에서라도 명예를 얻어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생에 얼마나 남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주의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강력한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똑똑한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교회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충성된 사람이란 “피스토이스”라고 하여 믿음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 신실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이 상징적이고, 회화적인 언어로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1.  고난 받은 군인의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라는 그림입니다.  3-4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군대와 관련된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군인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군인 생활하는 사람이 호텔에서 묵는 것 같다면 그것은 군대 생활이 아닙니다. 고통이 따라야 군인 정신이 나고,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인이 정복을 갈아입고, 무기를 다 소지하였다고 하여 군인입니까?  고통을 통하여, 연단을 통하여, 훈련에 거듭되는 훈련을 통하여 비로소 군인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의 일을 하다보면 어떠한 핍박을 닥칠지 모르기에 고통을 받는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군인이 자기의 할 일 다 하면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동안에는 군복무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인이 되어가지고 절반은 집에서 다니고, 절반도 안 되게 내무반에서 산다고 하면, 산란해지고,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정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두 번째의 그림은 경기하는 사람입니다. 

5절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항상 법대로 경기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최후에 승리자의 관을 얻을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을 보면,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모든 경기는 규정이 있습니다.  룰이 있다는 말입니다.  축구는 두 팀이 11명식 들어와 경기를 합니다. 들어오고 싶다고 이쪽에서는 20명이 들어오고, 상대는 10명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고 월드컵에 나가면서 금지약물을 먹어 도핑테스트에 걸려 중도하차하고, 메달을 박탈당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설마 나야 걸리겠는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하겠다는 욕심은 좋습니다.  그러나 근육 강화제를 먹어서 잘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칙입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법을 잘 준수해야 합니다.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페어플레이 정신입니다.   깨끗하게 법대로 경기하여 이기면, 이기는 것이요, 지면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입니다.    승리자의 관을 받은 사람은 약자요, 패한 사람을 격려하고, 어루만지는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100m 세계기록을 수립하면서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는데, 도핑테스트에 걸려 불명예스럽게 2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월계관을 빼앗기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캐나다의 육상선수 B.존슨이 약물복용으로 금메달이 박탈되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 금메달을 박탈당하는 수모는 무슨 일입니까?   1994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에페드린 복용으로 실격한 바 있습니다.  그런 저런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3.  세 번째의 그림은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6절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는 농부라고 하면, 힘들여 고생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형제들을 보면 집안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뒷짐 지고 앉아 구경하다가 재산을 나누고 양식을 나눌 때에는 숟가락을 들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자식이라면 당연히 나누어주어야 하지만, 형제란 가장 힘들 때 짐을 나누어야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집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교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는데, 예배 시간에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사람은 잘 살펴야 합니다. 얼굴을 드러낼 때에는 앞에 잘 나서는데, 크게 짐을 져야 할 때는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가 수고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인 권면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말씀하는 것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내 말하는 것, 4-6절의 세 가지 비유, 그림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좋은 병사로 고난을 받는 사람, 법대로 경기하는 사람, 그리고 수고하는 농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1991년 이디오피아에 선교사들이 들어가 ‘완다로’라고 하는 한 남자를 예수 믿게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그가 사는 마을에 왔을 때에 완다로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완다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완다로는 자기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는 사탄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일자무식하였지만, 책을 읽을 수 있게 공부하면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갓난아기가 열병으로 앓아 죽게 되었는데, 심령마술사가 와서 마귀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마귀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아이는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관습대로 곡하는 의식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아이를 위하여 곡을 하면서 악마적인 격정으로 그들의 살을 베면서 울부짖으려고 하자, “멈추시오.  나도 나의 아이가 보고 싶소.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죽음에 대하여 평화를 주셨소. 나는 내 아이가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안전하다고 믿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완다로의 간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36년 이탈리아 군대가 이디오피아를 점령하고 몇 달 안에 선교사들을 다 추방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48명의 신자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정부에서는 이탈리아와 협력하면서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여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명의 신자라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배교를 강요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을 체포되었고, 무수한 매를 맞았습니다. 그들의 가옥은 불타고, 재산을 몰수 되었습니다.  

정부 관리 중에 ‘도게사’라는 독한 사람이 있었는데, 완다로라는 교인을 본보기가 잡아들이고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당을 파괴하고, 도게사는 완다로를 체포하여, 묶어 마을의 한 복판에 세우고 매질하였습니다. “이제 너는 기독교를 버릴 것이다”라고 도게사가 말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오.”라고 완다로는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도게사는 군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완다로의 말을 듣지 말라.  이 자의 묶인 것을 보는가?  그의 교회에도 가지 말라.  그 교회는 불태워버릴 것이다.” 그러나 도게사는 완다로를 잘못 보았습니다.  완다로는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 이 밧줄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오. 이것은 사람이 나를 묶은 것에 불과하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죄에서 해방될 것이오.”  

그 말에 정부 관리 도게사는 완다로를 심히 매질하게 하였습니다.  매질을 가하면서 완다로를 향하여 비꼬며 말했습니다.  

“외국인들은 모두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포기해”  그러나 그런 말도 완다로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선교사들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오. 그 분이 나에게 힘을 주실 것이오.” 

주님은 과연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남자 다섯이 세 시간 동안 완다로를 때렸습니다. 그를 꺾겠노라고 단단히 각오하고 때렸습니다. 완다로가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니, 그를 묶어서 대나무로 만든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완다로는 1년 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완다로 형제가 석방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데리고 가서 정부 관리인 악독한 사람, 도게사의 밭에 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사랑입니까?  

1942년에 선교사들이 이디오피아에 다시 입국할 수 있게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전도하였던 48명의 신자를 두고 떠났는데, 선교사들이 다시 입국하였을 때에, 그들 48명은 1만명의 성도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려 1만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완다로는 환한 얼굴로 옛날 선교사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이곳은 마치 천국 같군요.”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다시 보내어주셨습니다. 새신자들을 가르쳐 주셔야 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보이시지요. 하지만 아직 배우지를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워드 핸드릭스박사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를 하나님의 일류팀으로서 하나님의 중요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일종의 응원단원 쯤으로 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직자들의 사명은 최전선 나가서 북치고, 장구치고, 총 쏘고 칼싸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엡4:12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는 핵심적인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섬기는 일’이란 성도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역이란 목회자, 성직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온 성도들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직자들은 우리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준비시키는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셨습니다.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온 성도들은 온전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제자로 살아가면서, 봉사의 일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사라면 최전선에 나가서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고, 소총 쏘고, 칼싸움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성도들의 손발을 다 묶어놓는 것이 다름없습니다. 교회는 평신도들이 나서서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발휘하고, 좋은 생각을 모으고, 전략을 수립하고 주의 사역에 나서야 합니다. 

‘앨튼 트루블러드’라는 분은 이런 말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 다시 쥐어 주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 다시 쥐어 줄 두 번째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평신도들에게 쥐어주었다고 하면, 이제 두 번째 종교개혁에 가까운 사건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 사역을 평신들에게 이양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의 목회자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해야 하지만, 교우들과 지역사회를 돕고 섬기는 일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충성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사람, 믿음직한 사람, 확신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계속하여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도 좋은 교회이지만, 앞으로가 더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주님과 함께 고난 받고, 주의 종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법을 준수하면서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되십시오.  그리고 수고하는 농부가 되어 곡식을 먼저 받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모두 다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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