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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새사람으로 변화를 받으라 (엡 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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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변화를 받으라 (엡 4:20~24)


<산을 보려면 산에서 나와야> 

2008년도가 지났고 2009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지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들은 "또 나이 한 살 더 먹었구나." 아마 그런 생각만 하겠지요.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써야 할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무궁하지 않습니다. 80까지 산다고 하면 이제 나이 40이 되신 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꼭 절반의 40이 남았습니다. 하루가 중요하고 한 시간이 중요하고 일분일초가 중요한 때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고 소진해서 안 될 것입니다. 

작년 한 해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도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천 원짜리는 돈으로 치지도 않았던 세태가 변했습니다. 자장면 한 그릇을 2천원에 팔 정도로 경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 백 원짜리 동전 하나도 아끼는 시대가 되었지요. 금년 한 해도 작년 못지않게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겸손히 우리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들떠 있었습니다. 낭비가 너무 심했습니다. 식당에서 먹어대는 음식 중 태반은 못 먹고 버렸습니다. 물이나 종이도 꼭 알맞게 쓰지 못하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에너지도 아껴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치도 심했지요.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옷은 옷으로 치지도 않았고 언제부턴가 명품 의상만 찾았습니다. 근검절약, 알뜰한 저축의 정신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례허식과 과시용의 낭비와 사치가 온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변해야 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저축해야 합니다. 거품을 빼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산을 제대로 보려면 산에서 나와야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산을 볼 수 있습니까. 산에서 나와 멀리 떨어져 산을 보면 아름다운 숲과 나무로 가득 찬 산의 모습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이지요. 조금 우리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이 살아 온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중에 '전쟁을 위해 드리는 기도'(The War Prayer)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던 일요일에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설교자는 반드시 자기 나라가 승리하고 적군이 패배하게 해달라고 설교하고 기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하나님이 자기 나라의 편이 되셔서 승전하도록 도우시리라는 확신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중석에서 한 노인이 강단으로 올라가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주시길 원하신다면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실상은 이웃에게 저주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곡식이 잘 자라도록 비를 내려달라고 여러분이 기도드린다면, 비가 와서 안 될 사람들에게는 그 기도가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노인은 온 마을 사람들이 자기편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거꾸로 뒤집어 보면 상대방 군인들은 다 전사하고, 아내들은 홀몸이 되게 하고 아이들은 전쟁고아가 되게 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다 불에 타게 해달라는 기도와 같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설교자를 비롯해서 온 주민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원한 것이 이런 것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정신병자의 헛소리로 간주하고 비웃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이웃의 안녕과 행복을 먼저 구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말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입니다. 우리의 자아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의 진면목이 보입니다. 우리의 진면목이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중앙 형사재판소에 가면 아주 유명한 정의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여성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 동상은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눈은 천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저울은 공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지요. 그런데 눈이 가려져 있다는 사실은 재판 받으러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고소인, 피고소인, 증인 등의 신분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재판을 하라는 뜻이지요. 

오늘 우리가 변하기 위해서도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가 아닌 '내 자신의 양심이 알고 있는 나'와 무엇보다도 아무도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이 아시는 나'의 진정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때 새로운 변화가 가능합니다. 


<인생의 방어 운전이 필요할 때>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예전과 같은 삶의 태도로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뭔가 심령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졌습니까? 우리는 책임을 미국과 우리 정부와 남 탓으로 돌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큽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계 경제의 급격한 변화도 분명히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왔는가도 중요합니다. 

교통사고를 막으려면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예상해서 대처하며 운전하라는 말입니다. 예컨대 주거지역에서 운전할 때는 길거리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주시하면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찻길로 굴러가는 공을 잡으려고 무작정 찻길로 뛰어들면 어떡하지? 내 차 앞으로 갑자기 뛰어들면 어떡하지? 미리 예상하고 충분히 준비해서 방어 운전을 할 경우 천 번 가운데 999번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사 전체가 마찬가지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항상 준비하고 방어하며 인생을 살 때 우리는 어떤 환난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가다가는 반드시 낭패를 당하고야 맙니다. 우리나라에 왜 IMF 사태가 터졌습니까? 방어운전을 안 했기 때문이지요. 아무 대책 없이 과소비를 했기 때문에 찾아온 비극이었지요. 지금의 경제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지도자들이 이와 같은 사태를 미리 내다보고 충분히 방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미래의 환난을 미리고 보고 대비하는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금년은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라고 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는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매서운 눈과 소의 신중한 걸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호랑이의 눈은 정확합니다. 사냥감을 포착할 때 한 점 빈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호랑이 눈으로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뚜벅뚜벅 소가 걷듯이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중단하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벗어야 할 옷, 입어야 할 옷> 

이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요.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잘생긴 탤런트라고 할지라도 초라한 옷을 입으면 초라하게 보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시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멋진 옷을 입으면 멋지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다릅니다. 결혼식에 갈 때 입는 옷과 장례식에 갈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극장에 갈 때 입는 옷과 교회에 올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수영장에 갈 때 입는 옷과 등산 갈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회사에 출근할 때 입는 옷과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그런가 하면 직업에 따라서도 옷이 다르지요. 군인이 입는 옷과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입는 옷은 서로 다릅니다. 법관이 입는 옷과 의사가 입는 옷이 다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서도 그 사람의 직업을 알아맞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할과 직업이 변하면 제일 먼저 의상에서부터 변화가 옵니다. 군에서 제대한 사람은 군복을 벗고 민간복을 입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는 죄수복을 벗고 자유로운 사복을 입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세상적인 삶을 살다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것을 옷을 바꿔 입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살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세상의 옷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이가 사면이 됐습니다. 석방됐습니다. 죄수에서 자유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옷에서부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오늘 봉독한 엡 4: 22-2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은 '철저한 변화'(radical change)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 인간 편에서 '회심'(conversion)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우리를 '재창조'(recreation)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우리의 부패하고 타락한 옛사람의 본성이 고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은 마치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옛 사람은 벗어던지고 새  사람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벗어야 할 옛 사람의 옷은 도대체 어떤 옷입니까? 22절에 보면 이 옷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의 옷'입니다. 도무지 절제할 수 없는 욕심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옛날의 나쁜 습관으로 빠져드는 옷이지요. 이 편지의 수신자인 에베소 교인들은 그 어느 곳보다 악한 세상 풍조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횡행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도시가 에베소였던 것이지요. 

게다가 에베소에는 수많은 극장들이 있어서 온갖 도덕적 부패와 타락을 부추겼습니다. 이런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온갖 저질스러운 공연과 폭력적인 투기, 음란한 쇼 등이 판을 쳤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살다보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또 다시 옛날의 습관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복을 벗어 던지고 자유복을 입듯이 바로 이런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던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에도 모든 나쁜 습관의 옷을 다 벗어던지시길 바랍니다. 나쁜 습관, 세상에 대한 유혹, 투기와 향락에 대한 유혹, 과소비와 낭비, 사치의 유혹 등을 다 떨쳐내 벗어던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구습의 옷들은 결국 썩어 없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신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무엇입니까? 24절 말씀에 나와 있지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기 보세요.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22절의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던지고 24절의 새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두 대조되는 구절 사이의 23절 말씀이지요.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옛날과 똑같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서는 절대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다 변화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십시오. 심령 속에 변화되어야 하겠다는 굳센 소원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의 변화 없이 새 사람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심령을 새롭게 하십시오! 

이렇게 여러분의 심령을 새롭게 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옷은 우리의 자발적인 힘으로 주어진 옷이 아닙니다. 인격의 변화, 심령의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라 새롭게 창조될 뿐입니다. 새 사람의 옷은 하나님을 따라 새롭게 창조된 옷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우리의 인격이 재창조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내 욕심과 내 유혹에 이끌려 무작정 살아왔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성품에 걸맞은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난날에는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높아지고 더 유명해지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옷을 입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하심에 합당한 길을 따라 사는 생활로 바뀝니다. 

2009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예전의 삶대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심령의 변화를 받아 옛 사람의 옷은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금년에도 많은 도전과 숱한 장애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새 사람의 옷을 입는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바락 오바마가 외친 캐치프레이즈가 무엇이었습니까? "We need a change!" 변화입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고서는 경제도 정치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나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심령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으십시오! 

이제 저는 루디야드 키플링의 '만일'이라는 시를 읽어드리면서 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 번 쯤은 네가 쌓아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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