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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부끄러움이 없는 소망 (시 1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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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없는 소망 (시 119:116)


우리는 또 다시 새 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새 해를 맞이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새 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일 것입니다. 또한 그 복이란 대개 우리 조상들이 추구해왔던 오복의 개념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복은 결코 세상적인 오복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을 궁극적인 복은 영생이요, 하늘나라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현세적인 복, 물질적인 복은 복이 아니라고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미국 발 금융위기로 불어 닥친 세계적인 경제 불황 한파는, 우리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게 하고, 그래서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제 불황의 어두운 구름이 언제쯤이나 걷히게 될는지 아무도 예단하지 못하는 불안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대 주재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이 경제 위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한 열 가지 주범 또는 요인 중에는 ‘월가의 탐욕’과 ‘리먼 브러더스사’의 파산 같은 이유도 있지만, 가장 첫 번째는 장기 호황이라는 것입니다. 1930년 대공황 이후 지속된 장기간의 호황으로 경제의 호시절이 이어지면서, 현재와 같은 위기가 닥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데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비록 그들의 돈에다가는 “IN GOD WE TRUST”라고 써 놓았지만, 그들은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황금 신과 쾌락의 신을 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청교도의 후예답지 않게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을 일으켜도, 경제가 잘 된다는 이유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9. 11 테러를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까, 이번에는 금융위기로 징계하신 것이 아니가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해보는 것입니다.

맘몬 신, 돈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어찌 미국 사람들뿐이겠습니까?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전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한도 끝도 없는 탐욕을 부립니다. 그리고 ‘포난사음’(飽暖邪淫)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배부르고 따뜻하면 반드시 음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 시대에 실로 많은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무색케 할 만큼, 쾌락을 추구하고 쾌락의 제단에 몸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사람에 따라서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것은 귀머거리에게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마음대로 사는 사람에게,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면 도무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통하여 정신 차리게 하며, 잠자는 자를 일깨워 주고, 죄악에 묻혀 있는 자를 돌이켜 회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1월 2일 자 국민일보 미션 난에,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의 신년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황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해집니다. 심령이 가난한 때에 피조물은 창조주를 찾게 됩니다.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동안 세상 가치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들도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황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은 작금의 이 경제 불황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곧 화가 변해서 복이 된다는 말인데,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저는 바둑을 배우지 못해서 잘 두지 못합니다. 대신 오목은 꽤 잘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둑과 오목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바둑에는 정석이란 것이 있는 줄 압니다. 

정석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1)사물의 처리에 정하여져 있는 일정한 방식 곧 수학 정석 같은 것을 의미하고 
2)바둑에서 역대의 명인 고수들이 다년간 연구 결과,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인정한 일정한 방식을 말합니다. 

정석하고 반대되는 말이 무엇일까요? 아마 꼼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학은 절대로 꼼수로 풀 수 없고, 바둑도 꼼수 같은 것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도 절대로 꼼수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인생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 정면 돌파 방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받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붙잡혀 살게 하소서!”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제목만 생각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 일생의 기도 제목으로 삼고 기도드려도 좋을 줄 믿습니다.

2009년 새 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 더 우리에게 미지의 해라고 아니 할 수없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이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경기가 얼마큼 회복될 것인지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2009년 한 해를 미리 살아본 사람이 없고, 누구 한 사람도 그 길을 지나본 사람이 없는 전혀 미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때, 방향도 모르고 나침반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다 세월에다 맡기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는 줄 압니다. 누구도 미리 살아본 적이 없고, 아무도 이전에 지나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여호수아 3장은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앞을 가로막아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당황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홍해를 마른 육지처럼 건너게 됩니다. 얼마 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한 시기는, 곡식을 거두는 시기로 그 때는 요단이 언덕에 넘쳐흐를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장애물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 장군이 이러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 뒤를 따르게 합니다. 그리고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2천 규빗 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법궤를 2천 규빗 앞서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2천 규빗은 900m 입니다. 그러니까 언약궤를 너무 가까이 따르게 되면, 언약궤가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바라보며, 언약궤의 인도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2천 규빗 쯤 떨어져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길을 갈 때에, 언약궤의 인도를 받았듯이, 새롭고 낯선 미지의 인생길을 가려는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언약궤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궤가 아닙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길을 걷고, 요단강을 또 기적같이 건너서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2009년 미지의 길을 걸어가려고 할 대에 말씀을 좇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빛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가 금년 한 해를 살아갈 때에, 내 수단과 방법만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캄캄한 밤중에 성냥불 하나 켜들고 길을 가려는 사람처럼 무모하고 무지몽매한 일임을 깨닫고, 내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금년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신. 구약 성경을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만, 만나와도 같은 축복이 있고, 생수와 같은 축복도 있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이란 어떤 것일까요? 특별히 경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할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오늘은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주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 힘써야 하지만, 또 하나님께서는 복주시마고 약속하신 날이므로, 이 날에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며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위하여 성별하신 날을 외면하면서, 하나님께 복 받기를 기대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 받기를 원하면 성수주일을 힘써야 합니다. 성수주일을 잘 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는 꼭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센다이에 있는 사토요베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꼭 문에다가 “주일에는 휴업합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 벽에는 “우리 집에서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글귀도 여지저기에 써 붙여 놓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장사에 큰 지장을 주었습니다.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사토요베 음식점은 정직과 성실을 인정받고, 질 좋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켜 일본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집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12개의 지점이 생겼고 현재 큰 목장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집 주인인 사토요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일은 제가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날이므로, 모든 일을 다 중지하고 영혼의 양식을 받으러 가는 일에 주력합니다.”

미국 텍사스 주 콜로라도 주립대 등 3개 대학의 공동연구진이 9년 동안 2만 2천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과 수명’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수명이 7년 정도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표에 대해 의사학회는 신앙생활에서 얻는 마음의 평화는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을 주고, 이것이 건강에 도움을 주므로 장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의 독이 빠집니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주일성수 잘하는 성도는 건강하고 장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자연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에도 축복의 법칙이 있습니다. 물질의 축복과 관계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곧 십일조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물질의 축복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마치 펌프의 마중물과 같고, 곡식의 종자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어리석고 가난한 농부라도 곡식의 종자까지 먹어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반드시 성도들에게 물질 축복의 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읽어 보면 3분의 1은 돈하고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진주 비유, 포도원 품꾼의 비유, 일만 달란트의 빚진 자의 비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 비유 등등... 그리고 이 비유 가운데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이란 돈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교훈해주셨습니다. 영성 운동으로 큰 영향을 끼친 ‘리차드 포스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척도를 알아보면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알아볼 수 있다. 돈은 영성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침례교의 신학자인 ‘헤롤드 피케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출발점은 바로 십일조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열여덟 살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인식을 마친 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고를 좀 해주시지요.” 노인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청년은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은 자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청년의 손을 잡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네 사업의 동업자로 모셔 들여라. 그리고 수입의 10분의 1은 반드시 동업자에게 드려라.” 청년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큰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콜게이트입니다. 

콜게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치약회사의 설립자입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십일조’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십일조는 이 다음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더 나아지면 그때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대부호 록펠러는 여덟 살부터 십일조를 시작하여 세계 만민을 도울 수 있는 큰 축복을 받았으며, 무려 미국의 전 재산의 1/3이 록펠러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회심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심령의 회심이고, 둘째는 그의 돈지갑의 회심이다.”고 했으며, 웨슬레는 “한 인간 중 회심해야 할 마지막 부분은 그의 돈지갑이다."고 하였습니다. 김재준 박사 같은 분도 말하기를 “구원의 확신을 맛본 사람이 최소한 십일조도 바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크리스웰 목사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고통을 주면서 다른 방법으로 거두어 가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을 금하여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나라와 영생의 축복을 믿을진대, 십일조에 관한 약속의 말씀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새 해에는 우리 모두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여서 병원에다 돈 갖다 주지 않는 평강한 가정의 복을 받으시고, 터진 웅덩이 파지 마시고 하는 일마다 번성하고 창대케 되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선교 헌금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두 유명한 호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갈릴리 호수요, 둘째가 사해입니다. 물 맑기가 명경 같은 갈릴리 호수는, 북쪽 헬몬 산의 눈 녹은 물을 요단강을 통해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물을 사해로 흘려 냅니다. 그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는 많은 고기들이 살고 있어서, 어부들이 노래하며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력 있는 물을 흘러내리는 갈릴리 바다 주변에는, 오곡백과 풍성하게 자라납니다. 그러나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는 사해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해는 물을 받기만 하고, 내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갈릴리 바다는 요단강 물을 받아들인 것만큼 자꾸 물을 내보내 주기 때문에 언제나 신선하고 생명력이 있지만,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할 뿐, 물을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죽은 바다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체험의 종교라고 합니다. 누가 남의 말만 듣고서 생명을 걸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예수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얻고, 평안을 맛보고, 혹은 병 고침을 받고, 또는 물질의 축복을 받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보고, 그래서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는 것 아닙니까? 저는 선교하는 일과 관련해서 우리 교회가 받은 축복의 체험을 확신 있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교를 조금 열심히 하니까, 십여 년 전 I M F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장막 터를 늘릴 수 있는 복을 주셨고, 결국은 오늘날 이처럼 널찍한 장소에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주신 것임을 저는 확신하고 또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 생사화복의 대주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반드시 개인이고 국가이고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선교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여러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한 분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선교사로 보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개인에게 복을 주시고, 선교하는 교회에 복을 주시고, 선교하는 나라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견실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는 지름길은, 열심히 선교하는 일일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성도 여러분 모두 선교 헌금에 힘껏 동참하여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뜻 깊은 신년 첫 주일입니다. 금년 한 동안 꼭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시기 바랍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반드시 신. 구약 성경을 꼭 일독 하시고, 성수 주일하시고,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시기 바라며, 선교 헌금에 동참하여, 여러분의 소망이 결코 부끄럽게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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