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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하나님의 뜻대로 (삼하 2: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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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삼하 2:18~18)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가계가 부계(父系)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모계로 이어지는 가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루야는 이새의 10남매(아들 8명, 딸 2명) 중에 큰 딸의 이름이고 작은 딸의 이름이 아비가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루야는 다윗 왕의 누이가 됩니다(대상 2:16). 요압, 아비새, 아사헬이 스루야의 세 아들로 기록된 것에 대하여 몇 가지 추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① 스루야가 그 남편 보다 너무 유명해서인지 ② 혹은 일찍 남편이 죽었든지 ③ 아니면 다윗과의 친분관계를 드러내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스루야의 아들들 모두가 다윗 왕의 보좌에서 활약했고 다윗의 30인 용사 중에 속하였던 군대장관들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들을 부를 때마다 개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늘 불렀습니다. 

Ⅰ. 스루야의 아들들의 긍정적인 면입니다. 

1) 그들은 능력 있는 아들들입니다. 
본문 2장 18절에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라고 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중 요압은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아버지시라'입니다. 그는 다윗 왕조의 중심인물로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다윗을 추종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의 기초를 놓는데 크게 활약한 다윗의 충복이었습니다(삼하 12:26; 왕상11:15,16).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으로서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을 줄기차게 괴롭혀 왔던 블레셋을 정복했습니다(삼하 5:17-25;대상 14:10-16). 요압은 다윗을 도와 모압을 정복했습니다(삼하 8:2; 대상 18:2). 그는 다윗이 아람을 정복할 때 함께한 자였습니다.

역대상 18장 6절에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도와 시리아를 정복했습니다(삼하 10:6-14). 그는 다윗을 도와 암몬을 정복했습니다(삼하 11:1; 대상 20:1-3). 그는 일생동안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용사입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에 세우고자 결의에 찬 행보를 쉬지 않았던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서 수행 능력이 그 어떤 장군보다 탁월했습니다. 


2) 그들은 정의의 아들들입니다. 

(1) 요압입니다. 

사무엘하 24장 3-4절에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라고 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생질입니다(대상 2:16).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군대장관 요압을 불러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능히 칼을 뺄만한 자를 조사하라고 할 때 요압이 반대하여 한 말입니다. 요압의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인본주의임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하여서 하는 수 없이 9개월에 걸쳐 인구조사는 했으나 요압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인구조사로 인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2) 아비새입니다. 

사무엘하 16장 9절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아비새의 이름의 뜻은 '내 부친은 이새이시다'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갈 때 사울 왕가의 친족인 시므이가 저주를 하며 티끌을 날리고 돌을 던질 때 아비새가 한 말입니다. 
악신이 들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군대 삼천을 거느리고 쫓아다니고 있을 때입니다. 한번은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에 가보니 십 황무지에서 사울 왕과 아브넬 장군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으니 내가 이 창으로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기름 부은 자의 생명을 치면 죄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고 했습니다(삼상 26:1-10).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한편이 되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이 각각 12명씩 한편이 되어서 한판 죽음을 불사하는 싸움을 벌였습니다(삼하 2:12-16). 이 싸움에서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했습니다. 

(3) 아사헬입니다.
본문 2장 19절에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라고 했습니다. 

아사헬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스루야의 셋째 아들 아사헬은 발이 빠르기가 들노루 같았다고 했습니다(삼하 2:18). 그는 30인 용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삼하 23:24). 그는 끝까지 아브넬을 추적했습니다. 

사무엘하 2장 22절에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아사헬은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3) 그들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아들들입니다. 

이들 스루야의 아들들은 한결 같이 다윗 왕가의 호신장군으로 충성했고 아비새는 세 아들들 중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창으로 삼백 명의 적군을 무찔렀습니다. 한 혈통의 삼형제들이 개인적으로는 외삼촌과 생질 사이였다고 하지만 이 같은 충성은 역대 지략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다윗 왕의 경호와 왕조의 보국안민을 위하여 혼신을 다한 것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Ⅱ. 스루야의 아들들의 부정적인 면입니다. 

1) 요압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하여 잔인했던 아들입니다. 

역대상 22장 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윗에게 한 말이지만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피 흘리는 데 일선에서 지휘하고 무차별 살육을 자행했습니다. 그가 다윗 왕조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일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야망과 사사로운 감정으로 군대장관 일을 해 나가고 있었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함이 없었습니다. 

2) 요압은 왕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무례한 아들입니다. 

(1) 요압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5절에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14-15절에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고 했습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하여 애통해 하고 있을 때입니다. 

사무엘하 19장 4절에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라고 했습니다. 

비록 아비를 반역했던 압살롬이었지만 부성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입니다. 이때 요압은 국가의 반역자요 가문의 반역자인 불효자가 전사했다고 해서 백성들 앞에서 너무 울면 안되고 공과 사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왕의 가족을 구해준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는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왕은 압살롬이 살고 신복들이 죽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라고 하면서 "왕의 신복들을 속히 위로하시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면 오늘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 것이요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삼하 19:1-8). 

(2)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사무엘하 3장 27절에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고 했습니다. 요압은 자기의 동생이 아브넬에게 찔려 죽은데 대한 복수를 한 것입니다. 

(3) 요압은 유다의 군대장관 아마샤를 죽였습니다. 
열왕기상 2장 5절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라고 했습니다. 


3) 요압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영안이 어두운 아들입니다. 

열왕기상 1장 7절에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왕위를 이을 자가 솔로몬인데도 불구하고 요압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추대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장 6절에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명령하여 브나야가 아도니야를 죽였습니다(왕상 2:25). 그리고 요압도 죽였습니다. 열왕기상 2장 34절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스루야의 아들들의 종말이었습니다. 


Ⅲ. 스루야의 아들들은 긍정과 부정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시편 1편 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긍정과 부정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충족시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성도, 지혜로운 성도, 직무를 잘 감당하는 성도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스루야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지도자 다윗의 뜻에 반(反)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 요압, 아비새, 아사헬은 자신들의 의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했을 때 그 승리의 영광을 자신들이 독식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들이 범죄 했을 때 그 허물을 자신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참된 충성은 많이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망과 고집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루야의 아들들은 다윗의 군대장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명령을 받고 자신들의 뜻에 의해 행하므로 그 명령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윗사람을 협박까지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요압인데 요압은 다윗의 둘째 3인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이름이 다윗의 기록에 삭제되었습니다.
요압은 이른바 토사구팽(兎死拘烹) 당한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고 했습니다. 

내 뜻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 무익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누가복음 22장 42절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31절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종은 벌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의인입니다. 
스루야의 아들들 중에 요압은 차라리 장군이 아니고 일반군사였다면 좋을 뻔 했습니다. 이들은 삼형제가 똘똘 뭉쳐서 자신들의 원수를 갚는 일에 값싼 의를 나타냈습니다. 

요압은 동생들을 부추겨서 스스로 입법부가 되고 행정부가 되고 사법부가 된 것입니다. 순수 인간의 뜻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생각으로는 문둥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열왕기하 5장 11-12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은 문둥이 생각입니다. 2009년도에는 내 생각,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뜻(일)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나무둥치에 가지가 붙어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상 둥치에 붙어 있는 가지는 자기가 하는 일이 없습니다. 붙어 있는데 충실하면 그 나무의 풍성한 진액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다 이루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뜻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무익합니다.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목사를 익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사는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쟁은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잔인한 살육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무모한 살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혈육의 비참한 죽음 앞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도니야가 아니라 솔로몬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 적용의 성취입니다. 

사람을 회개시키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과정에서 무모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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