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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 (갈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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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 (갈 4:4~7)
  

2008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먼저 세대가 참 어려운 세대이기에 교회가 편안하고 또 은혜로운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어려운 이때에, 지나간 한 해 동안 이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교회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로운 교회로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교회라고 하는 것은 어떤 소수의 사람으로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와 희생으로 어우러져 가는 것이 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한 해 동안 이 교회 속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며 희생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 흘림과 눈물이 있었기에 이 교회가 이렇게 마지막 주까지 은혜롭게 지나올 수 있게 되었음을 저는 압니다. 장로님들을 필두로 하여 이교회를 위해 한 해 동안 애쓰고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아울러 하나님의 갚으심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탄절을 지나고 26일 아침 이른시간 사무실에 제 책상에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저희 교회 어떤 남자 권사님이 하신 전화였습니다. 저도 함께 알고 있던 문제였는데, 아마 한 3개월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몹시 마음 아파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 ‘목사님 그 문제가 이렇게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이런 전화였습니다. 그 전화를 하시는 권사님의 마음도 참 가볍고 좋았겠지만, 그 문제를 함께 알고 기도해 왔던 목사인 제 마음도 참 기쁘고 그리고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일들이 없지 않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한 해를 지나고 새해를 맞기 전 바로 며칠 남은 이 시간에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여러분들의 삶의 복잡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내게 손 내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이 먼저 손 내밀어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얽혀 있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씩 둘씩 다 풀려서 가볍고 감사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하여서 여러분의 가슴 속에 여러분의 삶 속에 얽혀 있는 많은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인데, 사실은 이 갈라디아서 말씀이 좀 어렵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외부에 있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우리교회 교인이 아닌 외부에 있는 어떤 여자 권사님인데, 매주 저희 교회 홈피에 들어와서 설교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목사님 지난 주 설교는 좀 딱딱하고 어려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제가 ‘죄송합니다. 설교 중에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좀 어렵고 딱딱한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설교를 준비하는데, 이 갈라디아서도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교리의 말씀입니다. 그 분이 얼핏 생각이 나서 또 어렵게 설교하면 어떻게 하나 몹시 고심하다가 제가 준비한 원고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쉽게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하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원고를 버리고 이렇게 섰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시면서 계속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교회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교회력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늘 태양력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교회력과 태양력이 늘 어떻게 삐걱대는 것 같은 잘 맞는 것 같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여러분들도 느끼실 것이고, 또 설명을 하고 강조를 하는 저도 그런 느낌을 많이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 할수록 교회력이라고 하는 것과 태양력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력과 태양력이 절묘하게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가끔씩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과 같은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마지막 주에 섰을 때, 우리가 지난주에는 며칠 전에는 성탄절을 지났는데, 그 성탄절의 의미를 잘 음미하고 성탄절에 주시는 메시지를 잘 소화하게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게 되는 우리에게 아주 큰 힘과 용기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갈라디아서 4장 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성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4절에 보시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아들을 여자의 몸에 태어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두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짧은 4절의 한 말씀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성탄에 대한 의미를 모습을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때가 차매’라고 하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기한이 차매, 기한이 되었으므로 그런 뜻이지요. 먼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때가 차고 기한이 찼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 말씀의 앞 뒤의 흐름을 잘 생각해 보면,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앞에서 말하는 우리의 미성숙한 신앙이 성숙하여 졌을 때에, 그 때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목적과 그 결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도 그 속에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데, 여자의 몸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늘에서 ‘짠’하고 그냥 나타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무슨 말이냐,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났다는 성육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처럼 그가 나처럼 배고프고 병들고 아프고 죽고하는 나와 똑같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그 하나님께서 율법아래 두셨다. 우리가 율법에 매여있고 율법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며 아픔을 당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율법아래 있는 주님이 이땅에 오시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인간으로 그리고 율법아래 초법적인 인간 초법적인 어떤 모습이 아닌 율법아래 그를 오게 하셨는데, 그 마지막 표현에 보면,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말입니다. 그를 인간의 몸으로 그리고 율법아래 초법적인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율법아래 오게 하신 이유는 목적은 그리고 5절에 보시면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속량은 무엇을 위하여 내가 댓가를 치렀다. 댓가를 치르고 그를 건져내었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요즘은 잘 쓰는 단어가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 말씀을 주신 그 옛날 노예제도가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집에 내 맘에 쏙 드는 내가 꼭 자유를 주고 싶은 혹은 내 아들을 삼고 싶은 어떤 종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그를 그냥 데리고 올 수 없고 그 노예를 위한 값을 치르고 대신 값을 치르고 그를 데리고 와서 내가 그를 위하여 자유를 줄 수도 있고 내 아들을 삼을 수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죄값,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어떤 죄의 댓가, 내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할 그 십자가를 나 대신 지시고 나 대신 값을 치르시고 나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다. 이것은 때가 차매, 시간이 이르러 성숙하게 되면 이것이 마음 속에 믿음으로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첫 번째 목적은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량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지불하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로 말미암아 내가 다시 살게 되었고, 

두 번째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은 그러므로 그 일을 통하여서 우리로 아들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딸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종이었던 도저히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종의 자리에 율법의 종의 자리에 죄의 종의 자리에 있던 우리를 대신 값을 치러 나를 건져내시고 그리고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말하면, 우리를 양자삼으셔서 나를 양자삼으셔서 아들이 되게 하셨다. 나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이 되게 하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다. 6절의 하반절에 보시면 ‘우리로 아들이 되게 하셨으므로, 아들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주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종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값을 치르고 집에 데리고 가서 양자를 삼았는데, 그가 몸은 이제 종이 아니요. 몸은 이집의 아들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각하는 것이나 그 마음속에 종의 모습을 버릴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 속사람까지 종에서 벗어나 아들의 모습으로 품위있게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들을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속사람까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인 딸인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주셨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무엇입니까. 아들의 영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다르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제는 겉사람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까지도 우리의 생각까지도 우리의 mental까지도 우리의 가치관 까지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다운 모습으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셨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그리고 속량하여 우리를 아들과 딸로 삼으시고 아들과 딸로 삼으신 우리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그 결과가 바로 성경을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시간도 눈을 감거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보십시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내가 하나님을 언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렀나 생각해 보십시오. 잘 생각이 안 날것입니다. 교회 처음 나오면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가 차매 어느 순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저도 하나님을 언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렀는지 잘 모릅니다. 기억이 잘 안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일은 대단히 큰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 무슨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성경에 보면 아바 아버지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바 아버지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떤 이는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이다라고 표현하는데, 표준새번역에 보면 아빠 아버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 보다 더 친근감이 있는 단어가 아빠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빠 부른 사람 있어요. 하나님을 아빠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 그것은 큰 축복입니다. 위험한 일을 당하였을 때 급한 일을 당하였을 때 어떤 일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 아버지를 먼저 부를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굉장히 큰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분들이 여기 있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면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너희가 이제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종이었던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종이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아들이 된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 종은 매여 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된 딸이 된 우리들은 자유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자유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놀라운 복이 있는데, 7절의 말씀입니다. 

7절의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고로 하나님의 딸인고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속, 이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고 마음 든든한 단어입니다. 상속, 뭘 받는 다는 것 아닙니까. 제 친구 목사중에 재벌 아들은 아닙니다만, 아버지 어머니가 돈이 꽤 많이 있어서 상속을 많이 받게 될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내외가 다 상속을 많이 받게 될 지금부터 오래 전 젊었을 때 부부가 같이 가깝게 지낼 때, 상속을 많이 받게 될 그 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상속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해도 아주 의연한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어떤 일을 당해도 별로 초조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대단히 여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받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제게 말하기를 ‘조목사 나중에 나이들면(땅도 많이 받을 거에요.), 땅을 받으면 거기에 집을 나란히 지어서 같이 살자’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아직도 땅 준다는 소리는 아직도 없습니다만, 분명히 받았을텐데. 사람이 그렇게 받을 것이다. 받은 것도 아니에요.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만 가져도 여유를 보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받아 내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줄 수 있고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지 받아 내 것으로 간직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렵지만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7절까지 이런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 지난 몇 일 전에 우리가 받았던 성탄에 대한 의미와 목적과 그 열매를 우리에게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다면, 자 이제 성탄을 지나신 여러분 성탄을 지나신 여러분 성탄을 지나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성탄을 지나자마자 성탄을 지나면서 동시에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게 되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려 나를 속량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한 해를 돌아보면 먼저 우리가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허물, 우리의 부끄러움, 우리의 죄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에 눌러 있으면 우리는 일어설 수도 없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용기도 없지만, 오늘 우리는 성탄을 맞게 되며 성탄을 통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그 오신 목적이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나 대신 내가 치러야 할 값을 치르시며 나를 속량하시어 나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삼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들과 딸은 종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과거에 매였던 모든 종과 같은 종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아들이 자유로운 딸이 되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마음속에 영접한 자라면, 나를 얽어매여 놓고 있는 과거의 모든 것들, 죄의 노예, 죄의 종이었던 지난 날 나의 모습, 나를 얽어매고 있는 이런저런 많은 일들로부터 이제 자유하십시오.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하면, 2009년을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고, 힘들 것이고 그런 것들만 우리 머릿속에 꽉 차 있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새해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실까,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며 꿈꾸며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주실까. 새해에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실까 그것을 꿈꾸며 그것을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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