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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높은 뜻 정신(2)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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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뜻 정신(2) (고전 10:31)

오늘은 높은 뜻 
숭의교회의 이름으로 드리는 마지막 예배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오늘 설교를 준비해 왔습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설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유언 같은 설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유언 같은 설교의 문제는 할 말이 없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데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 중에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가를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동안 생각하고 기도하다가 이 말씀을 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설교에 너무 욕심이 많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제 진심을 받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70년 1월 2일 눈 덮힌 내설악에서 길을 잃어 죽을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담사에서 장수대로 넘어가는 코스였는데 꼭 한번 그 길을 가 보았던 친구를 따라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겁도 없이 산행을 나섰다가 산 중에서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길을 찾아 산을 내려왔을 때는 해가 져서 온 세상이 캄캄했었습니다. 만일 20분 정도만 더 늦어졌다면 아마 저는 그때 산에서 큰 변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 길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길을 잃으면 죽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사망에 빠지게 하기 위하여 하는 일은 그러므로 길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사방에 미끼와 같은 것들을 놓아 우리가 거기에 신경을 쓰고 정신을 팔게 하는것입니다. 엉뚱한데 신경을 쓰고 정신을 팔다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결국은 길을 잃게 되어 실패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되는 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입니다. 목적이 없으면 길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에 있어서 중요한 길이고 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목적입니다. 목적이 없으면 길이 없어지게 되고, 목적이 틀리게 되면 길도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70년 1월 2일 길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만일 20분만 늦었다면 아주 위험했었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길을 아는 것과 때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 알고 사는 사람은 우리들 중에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7년 동안의 높은 뜻 숭의교회 시대를 끝내고 다음 주일부터 새로운 분립교회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훗날 오늘 교회의 분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많은 교회들이 본을 삼을 모델이 되게 된다면 그것은 두 가지가 정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분립이라고 하는 길과 식이 맞았고 때가 맞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분립이 옳은 일이라고 하여도 때가 정확해야만 합니다. 너무 일러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됩니다. 저도 처음에 는 타이밍이 조금 빠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기가막히리만큼 정확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더 많습니다. 두고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일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 때 인생은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어 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모든 삶 즉 먹고, 마시고, 공부하고, 일하고, 돈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모든 목적은 다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되고, 공부하고 일하고 돈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자체가 의미 있어 집니다. 가치 있어 집니다. 아름다워 집니다. 훌륭해 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 출세하고 사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공부하고 일하고 돈 벌고 출세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가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공부합니다. 돈을 법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남과 자신을 차별하기 위하여 돈을 법니다. 돈을 벌어도 목적 즉 소명을 위하여 벌지 않고 자랑을 위하여 법니다. 욕심을 위하여 법니다. 다 쓰지도 못할 돈을 그냥 벌고, 벌고, 벌고, 또 법니다. 그러다가 죽습니다. 그냥 죽습니다.

사람에게 잡혀 장에 갇힌 다람쥐가 생각납니다. 다람쥐가 장에서 돌리는 쳇바퀴가 생각납니다. 돌리기는 열심히 돌리는데 그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쳇바퀴를 돌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람쥐의 쳇바퀴에 소형 발전기를 달아 놓으면 전기라도 생산해 내지 않을까?’

우리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도 마치 다람쥐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람은 다람쥐와 달라서 하는 일들이 엄청납니다. 공부해서 알아내는 것도 엄청나고, 일을 해서 버는 돈도 엄청납니다. 그것이 만일 본래의 목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대로 쓰여 진다면 세상은 정말 엄청나게 달라질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은 그냥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겁니다. 사람들은 다 행복해 지고, 사람들은 다 훌륭해 지고, 세상은 그냥 천국이 될 겁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업을 하고, 주를 위하여 쓰기 위하여 돈을 번다면 세상은 참 좋아 질 터인데 우리는 그냥 사업만 합니다. 우리는 그냥 돈만 법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재미있고 돈을 버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냥 일만 하다가 주를 위하여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죽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욕심이 많지만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너무나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욕심은 좀 줄이고 하나님께 대한 욕심을 좀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좋아질까요?

오늘은 높은 뜻 숭의교회 이름으로 드리는 마지막 예배입니다. 오늘 설교는 높은 뜻 숭의교회 이름으로 드리는 마지막 예배의 설교입니다. 제 상식으로 오늘 설교의 주제는 축복이어야합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던 모든 교인들을 칭찬해 드리고 앞으로 분립되는 네 교회를 축복하는 설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그 설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교회의 직원과 교역자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요청하여 만든 자리였습니다. 그 동안의 수고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네 교회로 보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자리는 그런 자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과 교역자들을 질책하고 책망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비상식적으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커지다보니 별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위하여 애를 쓰고 눈물을 흘리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다 쓰러지는 그런 일들이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목회자들에게는 그런 경험과 훈련이 필요한데 우리 교회 교역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결국 그 마지막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 모임을 마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찜찜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일 다시 그런 모임을 갖는다고 하여도 저는 또 후회할 그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게 지금 제 가슴에 맺혀 있는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쓰는 용어 중에 중직자(重職者)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거운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에는 그 중직자들이 있어서 큰 일을 할 때마다, 부담스러운 일을 할 때마다,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그 역할을 감당해 내곤 합니다. 

청량리중앙교회에도 있었습니다. 영락교회에도 있었습니다. 승동교회에도 있었습니다. 동안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버거운 일을 할 때마다 힘을 써주시는 것을 늘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교회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상식적으로 잘 계산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해 내곤 합니다.

출석교인이 천 명이 채 안되는 교회로 건축 중인 어느 교회 목사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2천 여평의 예배당을 건축 중이었는데 건축 예산이 100억 원 정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건축을 시작하고 건축 중에 예배 처소를 좀 옮겼더니 약 300명 가량의 교인들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700명 정도의 교인이 100억 원의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계산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퇴직금을 포기하고 1억 원을 작정하였더니 장로님 12분이 19억 원을 작정하여 오셨고, 권사님과 안수집사님들이 또 그 만큼 그리고 서리집사님들과 교인들이 또 그만큼을 작정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100억 원의 예산 중 60억 원 이상이 작정되면 그 공사는 만만치는 않지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교회 재정으로 몇 년에 걸쳐서 풀어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도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을 위하여 2년 전에 헌금을 작정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장년 출석이 4천 5백명이 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4천 5백명의 교인이 작정한 건축헌금이 100억이 안 됩니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퍽 많이 모자랍니다. 앞에 이야기한 교회 교인들이 우리만큼 되었다면 저들은 아마 400억 원을 헌금하였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유는 우리 교회에는 중직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담을 가지고 무거운 짐을 지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예산 중에 교인들이 조금 부담을 가지고 해야 하는 헌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절기 헌금입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가 비교적 강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이라고 까지 이야기하기는 좀 힘들지만 우리 교회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는 헌금입니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는 헌금이 강합니다.

그런데 절기 헌금은 다른 교회에 비교하면 예산이 많지도 않은데 거의 언제나 미달입니다. 절기 헌금을 분석해 보면 다른 중직자의 몫이 없습니다. 다른 교회의 경우 중직자들이 담당해 주는 만큼의 몫이 언제나 모자랍니다. 그래도 그것이 별 큰 영향은 끼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감당해 주는 몫이 크기 때문입니다. 재정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우리 교회는 중직자가 필요 없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안정적인 재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몫을 잘 감당해 주는 건강한 교인들도 있어야 하지만 교인 중에 몇 퍼센트는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몫을 감당하고 무거운 짐을 져 주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 면이 치명적으로 부족하고 약합니다.

무거운 짐을 져 주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치켜세워주고 헌금한 만큼의 권리와 권한도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은 보상을 해주거나 은근히 경쟁을 시키면 우리 교회도 아마 지금 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많이 헌금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권리와 권한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는 아무리 헌금을 많이해도 빛이 안 납니다. 저는 그래도 많이 헌금을 해야 할 사람들은 헌금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높은 뜻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인 사람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에 헌금하기 위하여 열심히 사업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러나 좀 부담스러운 일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써 주소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높은 뜻 교회에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립되는 네 교회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냥 하나님이 좋아서, 교회가 좋아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부담을 지는 것이 좋아서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좇아가는 중직자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남의 교회 교인이라면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마음껏 칭찬하여 보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는 교인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분들은 저에게 남의 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은 자기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기 위하여 때때로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려고 하는 중직자들에게 그 무거운 짐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복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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