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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새 일을 행하라 (사 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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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사 60 : 1 - 9
제 목 : 일어나 새 일을 행하라 

해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됩니까?  
뭔가 새로운 일들이, 이번 한 해 동안에는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지요?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면 어떻습니까?  그냥 생각에 그칠 뿐, 실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날들과 똑같습니다.  작년의 연장선에서의 올해이고, 또 어제의 연장선에서의, 오늘일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우리의 감정과 달리, 실제는 이렇게 변함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분,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또 신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지 않았습니까?   소망이 있지 않았습니까? 
올 한해는 정말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기를 소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20일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또 앞으로도 왠지 달라질 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예전과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신앙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이나 동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남산에 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지만, 그 태양이 어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까?   그냥 소원을 비는 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아닌 줄 알지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가 위로하기 위해서,   그냥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한번 해 보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신앙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 힘으로서는 변화시킬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서는,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 43 : 19 - 21절에,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하지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올 한 해 동안, 새로운 신앙의 다짐과 실천을 통해,  하나님이 새롭게 행하실 이 은혜와 축복을, 다 누리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의 메시지, 이 은혜의 메시지, 이 소망의 메시지를, 오늘도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서 듣게 되는데, 이 말씀들이 내 삶 가운데 역사함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여러분의 신앙이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꿈이 되어지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롭게 신앙으로 일어서며, 날마다 신앙으로 살아가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축복의 은혜가, 실제적으로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말씀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그 말씀에 반응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말씀에 내가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가나안 땅을 주셨고,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었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도전할 때만이, 그 땅을 소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도전하는 성도들에게, 이 복된 세계를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본문 말씀은, 재차 우리에게 이런 신앙의 도전을 촉구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세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오늘 우리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이 빛은, 우리의 사명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거하는 세상 속에서  성도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를 않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겁니까?  아니지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셨다는 겁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우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주님 명하신 빛의 사명을 세상에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 영광은 곧 성령인 줄 믿습니다.  

행 1 : 8절을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먼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증인된 사명 주시기 먼저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주님이 주시는 성령을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받았습니다.  언제 받았습니까?  사도행전 1 장에,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성령을, 바로 앞 장인 2장에서 가서, 다 받았다는 겁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120 명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행 2 - 4절 말씀을 보세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할렐루야!!

그들이 뭐할 때 성령 받았습니까?   기도할 때...   뭐 할 때요?   기도할 때.  그렇다면 물어봅시다.   여러분은 기도하십니까?   다 기도하지요?  
오늘 이 자리에게 계신 여러분들은, 각 자가 나름대로 기도의 골방을 가지고 기도에 힘쓰시는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또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직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르겠습니까?  저는 확신하기로, 저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가 성령을 다 받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눅 11장에 보세요.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11 : 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할렐루야!!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까?   왜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잠자는 신앙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고 있는데,   영이 깨어 기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셔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성령의 능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령의 능력이 내게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쓸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전히 무능력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이러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로마서에서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육신적으로 깨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영안이 닫힌 채 일방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 말세 때에 구원을 선포하며, 세상에 큰 능력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천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다 깨어있어서, 세상 속에서 언제나  성령의 능력을 행하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러면 또, 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성령의 능력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앉은뱅이의 신앙에 머물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행 3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사람들이게 바라던 것이 무엇입니까?  
구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남이 주는 물질의 도움을 통해 살고자 한 것이, 앉은뱅이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시쯤 기도하러 성전으로 향해 나아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앉은 뱅이가 무엇을 요구합니까?  다른 사람들에게서와 똑같이 물질을 구했다는   겁니다.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을 하지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그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그 앉은뱅이가 다리에 힘을 얻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성전을 향해 뛰어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앉은뱅이는 더 이상 앉은뱅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 베드로와 요한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나타난 그 능력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영광 돌리고, 세상에서는 그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며,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로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성전에서 구할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성전을 향해 기도하러 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을 때에, 아마 이 앉은뱅이는 그들에게 큰 물질이 있었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도였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의 사도들은 제법 능력을 행할 때였습니다.  주님과 같이 많은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앉은뱅이는 생각하기를, 그 능력으로 제법 돈을 많이 벌었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과하게 은이나 금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요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을 한 것을 보면, 그러한 내용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무슨 물질의 부요함이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가난했습니다.  주님이 친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지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제자들이나 사도들은 주님이 주신 능력과 권세를 가졌지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의 부요함과 같은, 세속적인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가진 권세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예수의 권세인 줄 믿습니다.  
세속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영적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왜 성전에 나와 있으면서도, 성전 안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성전 밖 미문에서 앉은뱅이로 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세속적인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질   못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행하는 인간으로서의 목회자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이 아닌, 목회자들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얻으려고 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원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교회는 오히려 썰렁합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데, 기도원에서 가서는 기도를 잘 합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는 예배를 잘 드리지 않는데, 기도원에서 하는 집회에는 잘 참석합니다.  

여러분, 제가 기도원에 가는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교회를 소홀히 하는 가운데 치우치는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담임목사님 말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기도원의 잘 모르는 목사님의 말은 맹종합니다.  왜입니까?  그래야 복 받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축복이 능력있는 목사님에게 나오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밝히고 있지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지금 네가 원하는 은이나 금은 내게 없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너에게 주고자 하니 그 능력을 받으라.  그 능력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인 줄 믿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능력의 주체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곧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앙이 앉은뱅이의 신앙에서 이제 일어서는 신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노력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도와 같은 권세를 주시고, 교회마다 세워 주신 주의 종들의 전하는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매 주일마다 전해 주시는 그 말씀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혀 뜻밖의 말씀이지요.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이 때 사도들이 전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사도들이 내민 손을 누구의 손으로 믿고 붙잡았습니까?  예수의 손으로 믿고 붙잡았다는 겁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그 이름이 능력인 줄 믿고, 그 이름 의지하여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성천교회 성도들은, 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이 전한 예수의 복음을, 믿음으로 아멘하며 순종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 1 : 12절에서 말씀하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이 예배 시간이, 바로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시간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이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 속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신앙의 다짐과 결심을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일어서는 신앙으로, 어떤 새 일을 행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특별히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천교회 성도들에게, 아니 이 땅의 모든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소원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전도하는 사명인 줄 믿습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나님의 전인, 이 성전을 채우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행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을 보세요.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  오리라.”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힘입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에 나가 복음 전할 때 어떤 역사가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우리의 손에 이끌려 열방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권세 앞에 열왕이 무릎 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4절 말씀,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여러분 마음에 흥분이 되질 않습니까?   어찌 이런 말씀을 그렇게 감정 없이 읽을 수 있습니까?  

다시 읽어 봅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이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성천교회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는 결코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몇 몇 성도들이 힘을 모아 일으켜 세운, 막 시작된 개척교회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조그만 초대 교회가 어떤 역사를 일으켰습니까?  로마를 복음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이 땅에 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는, 대형교회들이 아닙니다.  우리 성천교회와 같은 소형 교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5만여 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성도 수가 300명이 안 되는 교회가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명이 안 되는 교회들까지 합치면, 85%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 땅에 복음화를 위해 힘쓰는 교회들은 어떤 교회들입니까?  대형교회들이 아닌, 천 명 미만의 중소형 교회들이라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들은 많은 성도들이 모이지만, 실제로는 다 수평 이동으로 인한  성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중소형 교회들은, 그야말로 전도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전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결국 이 땅의 복음화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천명이 안 되는 우리 성천교회의 입장에서, 우리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전도를 위해, 우리는 다시금 신앙으로 일어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을 보세요.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 성천교회 성도들이, 새롭게 믿음으로 일어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되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게 되면, 분명 우리 성천교회에도, 하나님이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원근각지에서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구름 떼와 같이,   벌 떼와 같이, 우리 성천교회를 향해 몰려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시스가 무릎 꿇고, 로마가 무릎을 꿇었듯이, 이 서울 땅에, 이 나라 전체가 우리 성천교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행 1 : 8절에서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은 120 명의 제자들은 꼼짝 않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지만, 세상이 아직도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이 개입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행 8 : 1절을 보세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하나님이 흩어 버리셨습니다.  
움직이지를 않고 있는 제자들을 이런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결국 땅 끝까지 가도록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성천교회는 기회를 주셨을 때,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자원하여 이 복음 전하는 전도의 사명 감당함으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역사와 같이,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열방이 돌아오고, 열 왕이 무릎 꿇게 되는 놀라운 일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또 우리가 일어서는 신앙으로, 어떤 새 일을 행하여야 하겠습니까?  
둘째로는, 축복의 증인으로서의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구원 할 사명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에 나타내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부러워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사명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잘 되어야 합니다. 아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 영광의 빛은,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찬란한 축복의 빛인 줄 믿습니다.  그 축복의 빛이, 오늘 우리 가운데도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세상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16편에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내가 속한 직장과, 내가 현재 경영하는    이 사업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의 분깃인 줄 알고, 내가 속한 직장과 사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함께 하시는 줄 알고, 요셉과 같이 최선을 다하고,  야곱과 같이 최선을 다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감당하는 모든 일들에 귀한  축복의 열매가 맺혀지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두 달란트 남긴 자와 같이, 아니 이왕이면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셔서, 남긴 대로 우리의 소유가 되게 해 주시고, 세상의 소유를 빼앗아 덤으로 우리의 소유를 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삭과 같이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5절 말씀을 보세요.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할 때, 우리의 마음이   놀라고, 기분이 째지는, 화창하다는 말이 그런 뜻 아닙니까?  이런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왜 마음이 놀랍니까?  왜 기분이 째집니까?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바다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 바다의 풍부가   내게로 오기 때문입니다.  열방의 재물, 가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감당할 수 없는 재물의 축복이 내게로 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절과 7절 말씀을 보세요.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이런 귀한 축복을 받을 때,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할 줄로 압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권세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런 권세와 능력이 없이는,  복음도 그들에게, 귀한 능력으로 복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복음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증거의   방편으로, 복음의 증인되기 전에, 먼저 축복의 증인 되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축복, 올 한해를 시작으로, 남은 평생의 생애 가운데, 우리 성천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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